[반려견문록] 가짜 인간이 되기는 싫다

2019. 9. 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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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려견이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가족들이라면, 반려견에게 틈틈이 책을 읽어주면 된다.

사람의 언어와 역사, 철학 정도는 이번 생에서 선행학습을 해볼 수 있으니까.

사람과 함께 살다 보니 반려견의 삶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반려견이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가족들이라면, 반려견에게 자주 뉴스를 들려주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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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려견이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가족들이라면, 반려견에게 틈틈이 책을 읽어주면 된다. 사람의 언어와 역사, 철학 정도는 이번 생에서 선행학습을 해볼 수 있으니까. 하루는 우리 누나가 영국 출생의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이 인간의 역사를 바꾼 동물들에 관해 쓴 책 ‘위대한 공존’ 중에 개와 관계된 내용을 읽어주었다. 기억나는 건 딱 한 줄이다. ‘늑대는 인간을 만나 개가 되었다.’

이 문장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개는 인간을 만나 반려견이 되었다.’ 반려견은 개가 아니라 인간 쪽에 가깝다. 아직까지 동물분류학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현대 가족관계학으로 볼 때는 인간과 가장 밀접하고 유사한 종. 사람과 함께 살다 보니 반려견의 삶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인간의 사고 패턴과 감정을 닮아간다. 성격이나 얼굴, 라이프스타일도 닮는다. 생태계의 진화 과정에는 없는 ‘인간화 과정’이다. 내가 까치발을 하고 TV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전보다 자주 뉴스에 귀 기울이게 된 것도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화 과정 때문일 거다.

사람들 세계에서 뉴스가 끊이지 않는 건 대개 두 가지 이유에서다. 그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도 별반 이롭지 않은데, 오직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려고 소란을 떨어 세상을 번잡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뉴스는 한동안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끓는다.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히고 사라진다. 허무할 정도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몇 년 만에 처음이라거나 어디에서 유일하다거나 하는 별난 기준을 만들기 때문이다. ‘최초’ ‘마지막’ ‘유일’과 같은 말들은 사는 내내 다른 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미끼다. 카피라이터인 우리 누나도 이런 말들을 자주 이용하는데, 누나가 내게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했을 때 진짜 마지막인 적은 거의 없었다.

가장 나쁜 것은 이 두 개의 뉴스거리가 결합했을 때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거나 누군가 자신이 유일하게 무언가를 밝혀냈다고 나설 때, 인간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편을 나누어 싸우고, 심지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믿거나, 믿지 않으면서도 우긴다. 사실인 줄 알면서도 굳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기 싫어지기도 한다. 반려견들이 진짜 간식과 가짜 간식을 구별해내려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사람들이 진짜 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분해내기 위해서는 타고난 감각만으로는 안 된다. 오랜 공부와 관심,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훼손되지 않은 양심이 필요하다.

동물 세계에서 뉴스란 며칠 뒤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감지한 몇몇 날짐승과 물짐승들이 지구 내부의 전조 현상을 널리 퍼트려 뭇 생명을 구제하고자 할 때뿐이다. 그런 뉴스는 설령 현실이 되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이롭다. 자신의 반려견이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가족들이라면, 반려견에게 자주 뉴스를 들려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와 가짜 정보들을 선행학습하는 것은 온전한 생명으로 태어나는데 해를 끼친다. 진짜 인간으로 태어나고 평생토록 진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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