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3세대 소통병법'] 의자혁명을 통한 의식개혁 '자율좌석제'

2019. 8. 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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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가구가 아닙니다’.

조직에서 의자는 각별한 상징이다. 의자를 넘어 권력 서열이고 존재감이다. ‘의자를 뺀다’는 ‘조직에서 잘린다’이고 ‘새 의자’란 언론에서 ‘인사동정’이란 말과 동의어로 쓰인다. chairman은 의장을 의미한다. 그만큼 ‘의자와 자리’는 불가분의 관계다. 의자의 사양과 배열 위치는 존재감과 위상의 자타공인 상징이다.

이런 ‘의자’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각 기업에 불고 있는 자율좌석제가 그 진앙지다.

자율좌석제는 사무실에서 개인별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크게 집중 업무(1인 칸막이), 협업, 커뮤니케이션 구역 등 구역별로 나눠 선택해 일한다. 단순한 사무실 환경 변화를 넘어 구성원이 자신이 일할 공간을 선택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임원부터 직원까지 계급장 떼고 평등하게 키오스크에서 그날그날 좌석을 선택하고 고정석은 없다. 의자는 서열도 사양도 모두 평등하다. 서열 간 위계와 보고의 체계, 부서 간 경계가 없이 평평해지는 셈이다.

‘바꿔 바꿔 다 바꿔’의 도입기인 만큼 의식과 형식의 차이로 인한 부작용도 없지 않다. 기대만큼 능률이 높지 않아 다시 원래 사무실 형태로 돌아갔다는 현장 소리도 종종 들린다. 연공서열에 따른 자리 선점 스트레스, 일 시작하기까지 워밍업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 환경을 위계와 경계를 없애고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데서는 방향을 같이한다.

경영코치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근무 환경을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21세기 기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시대별 사무실의 변화

사무실 환경과 배치를 보면 당대의 조직문화가 보인다. 과연 사무실은 어떻게 시대정신을 담아왔을까.

▷1970~1990년대의 사무실 : 같이의 지향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 진출해 경험한 사무실은 말 그대로 일을 하는 작업 공간이었다. 가구 배치도 철저히 리더 중심, 서열 위주였다. 사무실 자리 배치는 처음 방문한 사람도 권력 서열과 조직 내 평가·위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구조였다. 이때 많이 쓰인 사무실 레이아웃은 대향식(마주 보는 방식), 혹은 배향식(앞사람 등을 보고 일하는 방식이다. 사무실 입구 기준으로 첫 줄에는 사원, 둘째 줄에 대리, 과장 자리를 뒤쪽에 배치)이 많았다. 대향식은 업무 소통이 원활한 반면 구성원 간 상호 노출이, 배향식은 뒷줄의 상사 감시 체제가 부담이 됐다.

▷1990~2010년대 : 사무공간, 프라이버시 개념 등장

X세대가 사회에 진출한 1990년대부터 사무실에 PC와 칸막이가 등장했다. 칸막이와 PC는 서로 긴밀한 연계를 갖고 있다. 모니터를 놓고 일하는 환경에서는 구성원이 무엇을 하는지 옆쪽, 혹은 뒤쪽에서 모두 보이는 문제가 생겼다. 칸막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나름의 도구였던 셈이다. 칸막이로 자기의 3면 벽이 생기며 가족 사진 등 ‘사(私)적 인테리어’를 하는 풍속이 생겼다. 처음 등장한 CRT 모니터는 크기가 크고 두꺼워 책상 공간을 많이 차지해 뒷부분이 튀어나온 모니터를 효율적으로 놓기 위한 L자형 책상이 유행하기도 했다. 2005년 무렵부터 얇은 형태의 LCD 모니터가 상용화되며 다시 직선형 책상이 부활했다. 사무실 의자 배치가 팀장석과 팀원석으로 단순하게 이분화된 구조가 일반화됐다. 더불어 인체공학에 기반한 사무용 의자가 등장했다. 커피를 타주고 문서를 작성해주는 여직원은 사라졌다.

▷2010년대~ : 사무환경, 따로 또 같이

자율형 좌석제란 개념이 2010년대 초반 등장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과 일치한다. 외근직이 많은 조직 등에서 시작돼 최근에는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율좌석제를 기반으로 한 개방형 사무실이 소통과 몰입, 협업,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웃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돼 이해도가 높아지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향상된다는 보고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일찍부터 학교에서 과목별로, 수준별로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키오스크를 이용해 도서관 좌석을 선택하고 사물함을 사용해본 세대다. 이들 세대에게 워라밸 사무실의 판단 지표는 ‘탕비실’과 1인용 쿠션 비치 여부다. 원두커피를 즉석에서 내려주는 바리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을 기대한다. 목받이가 달린 임원용 의자에 앉은 미래의 나를 꿈꾸기보다 당장 사원 때부터 푹 파묻혀 쉴 수 있는 1인용 쿠션의자가 비치된 회사에 다니고 싶어 한다. 요컨대 이들에게 공간이란 심리적 온라인과 물리적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또 의자란 서열이라기보다 휴식 개념에 가깝다.

▶자율좌석제에 대한 시대 유감, 세대 소감

상하관계가 분명한 한국 특유의 직장문화 속에서 자율좌석제는 아직 낯설고 불편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개인 임원실을 ‘졸지에’ 잃은 한 임원은 “자기희생을 통한 혁신”이라 말하면서도 쓰라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구성원들은 “여전히 연공서열에 따른 자리 맡기가 있다” “임원이나 팀장이 바로 옆에 앉으면 불편해서 하루 종일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좋은 자리 맡으려고 점점 일찍 출근하게 된다”고 불평을 표하기도 한다. 구성원의 민원(?) 때문에 임원만 분리, 전체 임원실을 별도로 만든 곳에서는 중간관리자들이 “수평문화는커녕 팀장급만 리더층에서 컷오프돼 강등된 것 같다”며 지위 격하의 상실감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자율좌석제 시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리더여, 당신 마음속의 대원군을 몰아내라.” 자율좌석제는 체감도 면에서 리더들에게 현실적으로 부담이 큰 변화다. 이때 내가 불리하고 익숙하지 않아 폐쇄적인 마음이 드는 것인지, 정말 성과 향상에 좋지 않기 때문인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 쇄국정책을 고수한 흥선대원군처럼 개방화를 거부하면 도태될 수 있다.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자. 동물의 세계에서는 어떻게든 권력과 권위를 표시하고 싶어 한다. 이는 조직논리에도 적용된다. 자율좌석제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고정석을 만들 때 문제가 된다. 예컨대 ▲창가 쪽 좌석, 칸막이 있는 집중근무 좌석 등 선호 좌석을 며칠씩 사용해 구역을 표시하거나 ▲퇴근 후 사물을 치우지 않는 반칙을 범하는 식으로 권력 몽니를 부리는 것 등이 그 예다. 일부 회사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한 사람이 동일 자리에 이틀 연속 앉지 못하도록 하거나, 컴퓨터가 자리를 강제 배정하는 시스템을 실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리더부터 솔선수범하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자율좌석제의 협업과 소통의 취지는 살아날 수 있다. 직원은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리더를 통해 배운다.

▷온라인 텍스트 소통방법을 익히자. 비대면 방식 업무가 보편화되는 만큼 리더가 온라인 텍스트로 공식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구성원을 둘러보며 안색을 관찰하고 장악하는 시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일의 성과와 프로세스를 파악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신같이 일을 파악할 수 있는 업무력이 필수다. 텍스트로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더라도 ‘부처님 손바닥 안’처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했지만 이제는 눈에서 멀어져도 손발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프로토콜을 만들자. 자율형 좌석제에서 리더와 구성원 간 부딪치는 문제는 개방성과 노출성의 충돌이다. 부서원이 흩어져 근무하더라도 정기회의는 어떻게 진행할지 등등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 서로 흩어져 있되 연결돼 있고, 개방돼 있되 노출당하지 않는 이중성을 조화시키려면 프로토콜, 즉 Do와 Don't등 규범을 만들어 사전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요소가 충돌했을 때 어떤 절차를 취할지, 프로토콜을 위반했을 때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단 그 근거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편리한 도구를 활용하자. 자율좌석제를 실시하는 개방형 사무실은 얼핏 넓어 보이지만 협업공간인 공동 테이블에서 1인당 사무면적은 예전보다 좁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옆 사람의 통화소음 고충이나 보안 업무가 필요한 업무를 오픈된 장소에서 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다. 1인 업무공간이 별도로 있더라도 부족해 선착순 배정이나 자리 맡기 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음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모니터 보안은 보안필름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근무 중 이어폰 사용은 조직문화에 따라 찬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이 역시 프로토콜을 통해 정하는 것이 좋다. 일정 시간 내 이용, 이어폰을 끼면 소음에 대한 상대 경고 혹은 집중 근무하고 싶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서로 존중해주기 등으로 대화를 통하면 문제를 보다 쉽게 풀 수 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2호 (2019.08.21~2019.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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