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드리븐 경영 성공 조건-양질 데이터·전문인력·자금 3박자 필수 BD(Big Data)는 요술상자?..인사이트 있어야 보배

노승욱 2019. 8. 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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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월말 호텔 객실 판매량을 알고 싶다며 빅데이터를 분석해 예상치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호텔이 문을 연 지 2년이 채 안 됐는데 말이죠. 이 정도면 빅데이터 분석보다는 현장 직원 감에 의존하는 게 더 잘 맞을 것입니다.”

데이터 드리븐 경영 전문가 A씨의 말이다. 국내 모 특급호텔에 빅데이터팀장으로 입사한 그는 얼마 전 사장으로부터 이 같은 요구를 받고 당황했다. 데이터 드리븐 경영으로 월말 객실 판매량을 예측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숙박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A씨는 “월매출 예상치 분석 모델을 구축하는 데에만 3개월이 걸린다.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도 가용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지 않으면 당연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만 분석하면 별다른 투자 없이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요술상자’라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적잖다”며 고개를 저었다.

데이터 드리븐 경영이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활용도는 낮은 수준이다. 데이터에 관한 경영진의 낮은 이해도, 보안·규제로 인한 가용 데이터와 전문인력 태부족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린다. 그만큼 디지털 시대의 핵심 자원이다. 그럼에도 이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데이터 드리븐 경영을 시도하는 경우가 적잖다.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가 지난해 비즈니스 모델을 ‘콘텐츠별 크라우드펀딩’에서 ‘월정액 구독’으로 변경한 이유 중 하나도 고객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특정 콘텐츠에 대한 소비 데이터만 집계되는 전자에 비해 후자가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구독 방식으로 바꾼 후 고객 데이터가 확 늘어났다. 한 달간 퍼블리에 접속해서 한 모든 활동이 데이터로 남기 때문이다. 콘텐츠별 선호도·체류시간은 물론, 구독 해지 전 어떤 콘텐츠를 마지막으로 열람했는지도 알 수 있다. 데이터가 부족하면 직관이나 감에만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정확한 경영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는 이를 활용해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까다로운 규제나 기업 내 보안 정책에 부딪혀 좌절되는 경우가 적잖다. 상당수 대기업은 정보 보안을 이유로 사내 전산망의 정보나 자료를 PC에 내려받지 못하고 클라우드상에서만 작업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클라우드상에서는 빅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없다. 호환이 되게 하려면 추가 투자가 필요한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 이를 승인하는 경영자가 많지 않다.

B전문가는 “L기업이 전사적인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구축, 클라우드상에서도 분석툴을 활용할 수 있게 했는데 무려 300억원이 들었다. L사 CEO가 빅데이터 세미나를 매월 진행하는 등 데이터 드리븐 경영에 조예가 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 기업은 수십억원의 투자도 비용 문제로 꺼린다. 이 때문에 분석툴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전문인력도 태부족하다. 데이터 드리븐 경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태동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학문이다 보니 실무자는 꽤 있어도 관리자급에서는 전공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A빅데이터 전문가는 “기업에 빅데이터팀이 많지 않을뿐더러, 팀장급도 데이터 분석만으로 3년 이상 경력을 쌓은 이들이 거의 없다. 보통은 IT 개발자나 회계, 전략 부문 출신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 드리븐 경영을 전공한 젊은 실무진이 최신 이론을 적용해보려 해도 팀장급에서 보수적인 태도로 투자를 꺼리거나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머신러닝은커녕 기존 데이터를 1·2차 가공하는 선에서 그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데이터가 왜곡되는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음원이나 출판업계에서는 자사 제품 홍보를 위해 사재기로 순위를 조작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례로 멜론은 지난 5월 한 무명 가수의 노래가 방탄소년단 등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음원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팬들이 특정 가수의 신곡을 차트 1~10위까지 차례대로 ‘줄 세우기’ 하기 위해 일부러 음원을 사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자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주요 음원 서비스업자들과 협력해서 (음원 사재기 문제를) 자체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데이터 오남용도 경계해야 한다. 데이터 드리븐 경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인 테드 사란도스는 “데이터가 콘텐츠 제작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빅데이터가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쇼러너(showrunner·제작 총책임자)가 집필할 다음 작품의 계획을 미리 알고 설득하는 일에 데이터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콘텐츠 창작의 영역에서 데이터가 차지하는 부분은 20%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80%는 단연코 예술적 감각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맹신하면 비슷한 콘텐츠만 만들게 된다. 데이터는 과거를 알려줄 뿐, 미래를 예측하지는 않는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빅데이터학회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데이터에는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가령 20~30대 여성이 커피전문점 주 고객층인데, 20대에서는 결제 데이터가 꽤 많다가도 30대가 되면 확 줄어든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보고 30대가 돼서 커피 소비가 줄어든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30대에 취직한 후 상사가 사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데이터만 보고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인터뷰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저자 함유근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

위치 데이터 활용 태부족…데이터 거래 활성화해야

Q.국내 기업의 데이터 드리븐 경영 수준은 어떤가.

A 고객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는 인터넷 기업은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다. 문제는 오프라인 기반 기업이다. 이들은 개인정보보호법 규제 때문에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 금융회사는 고객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어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특히 신한카드, 삼성카드 등 일부 카드 회사들은 이용 데이터에 따라 고객군을 나눠서 다양한 맞춤형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금융지주 내 계열사 간에 데이터 공유가 잘 안 되는 점은 아쉽다. 법적으로는 계열사 간 데이터 공유가 가능하지만, 고객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여론 탓에 정부가 법이 아닌 행정지도로 못 하게 한 때문이다. 신용평가 등 관리 용도로는 공유하지만, 영업이나 마케팅 용도로는 사용이 제한된다. 보다 나은 서비스 개발을 위해서는 이런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

Q.해외에 비해 국내 기업들이 분발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A 위치 데이터 활용이 무척 중요한데 이 부분이 약하다. 구글은 자체 지도 서비스가 있으니 위치 데이터를 확보해 다양하게 활용한다. 페이스북은 팩추얼(Factual) 등 데이터 거래 전문업체를 통해 위치 데이터를 사들인다. 반면 우리나라는 위치 데이터도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규제돼 기업 간 사고파는 것이 제한돼 있다. 신용카드사나 이동통신사 정도 외에는 데이터 거래가 어렵다.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이 활성화되려면 용도에 따른 다양한 데이터를 사고파는 시장이 먼저 형성돼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이 마케팅에 활용할 만한 양질의 데이터가 부족하다. 정부도 이런 의견을 수렴해 데이터 판매를 허용하는 정책을 준비 중이다.

Q.데이터 드리븐 경영 활성화를 위한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

A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미국은 ‘이것만 빼고 다 해도 된다’는 식의 네거티브(nagative) 규제 방식이다. 중국은 아예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관한) 규제가 없다. 이 때문에 데이터 드리븐 경영은 중국이 가장 활발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것은 다 안 되고 이것만 해야 된다’는 식의 포지티브(positive) 규제다. 가령 개인신용정보를 수집할 때 금융거래 내역 데이터는 쓸 수 있지만 SNS 등에 남긴 비정형 데이터는 활용할 수 없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는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마케팅을 위해서는 익명 정보 또는 가명 정보로 수집해도 된다. 가령 ‘어느 지역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돈을 쓰는가’ 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굳이 개인의 신원을 알 필요는 없다. 마케팅에 활용되는 정보는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는 일단 활용 가능한 정보의 종류와 양이 부족해 이를 늘려야 한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9호 (2019.07.31~2019.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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