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스토리] PX에서 달팽이 크림 사고, 군대에서 화장 배우고..'군스메틱'을 아시나요

서지영 2019. 6.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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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서지영]

대한민국 군대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대중의 머리속에 군대는 국방의 의무 외에도 '뽀글이(봉지에 끓인 라면)' 조리법이나, 침낭을 잘 접는 방법 등을 숙달하는 곳이라는 '짠한'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생 신세대들이 군 입대를 하면서 확 달라졌다. 요즘 군인들은 군대에서 피부 관리의 중요성을 배우고, PX에서 준수한 품질의 크림을 사 얼굴에 펴 바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외선 차단은 물론 미백 성분이 함유된 위장크림을 바르며 서로 뷰티 팁을 공유한다. 업계는 군대에서부터 화장에 친숙해지는 한국 특유의 분위기가 향후 남성 뷰티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군대에서 화장품에 눈뜨는 한국 남자들

지난해 8월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군대에 부는 뷰티 열풍을 조명했다.

WSJ는 최전방 비무장지대 관측소(OP)에서 복무한 예비역 남성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많은 남성이 군에 징집돼 보내는 기간에 각종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며 피부 관리 요령을 익힌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입대 전까지만 해도 비누 하나로 피부 관리를 끝냈던 이 예비역은 입대 이후 각종 마스크팩과 스킨·로션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경계 근무에 노출되면서 햇빛에 그을고 거칠어진 얼굴 피부를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인터뷰를 통해 "군복무 때 근무가 비는 자유 시간에는 미용·화장 등을 다룬 각종 잡지를 숙독하면서 보냈다"고 말했다.

WSJ는 "징집제를 택한 한국은 21∼24개월인 병역 기간에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태양을 피할 수 없는 상태로 훈련받게 된다. 이 때문에 피부 관리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병 군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출연했던 송중기도 변화한 한국 군대 문화를 전하기도 했다. 송중기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피부 관리에 가장 열심인 게 군인이다. 보통 남자들은 스킨 하나 정도 바르거나 아예 아무것도 쓰지 않지만 군인들은 3~4가지 이상 쓴다"고 전해 관심을 받았다.

야외 훈련으로 자외선과 혹한, 다소 거친 위생 환경이 이어지는 군복무 기간에는 피부노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많다. 강한 햇빛은 피부 속 콜라겐·엘라스틴 등을 파괴해 피부를 건조하고 주름지게 만든다. 무엇보다 제대로 씻기 힘든 환경은 피부 트러블의 주범으로 꼽힌다. 제아무리 '얼굴에 바르는 건 로션 하나가 끝'이라는 한국 남자 특유의 강한 피부도 이런 고단한 환경 속에서는 버텨 낼 재간이 없다.

지난 5월 공군을 만기 제대한 이모씨는 "군대에서 피부 관리를 챙기는 후임이나 선임이 상당히 많았다. 휴가 때는 자꾸 늘어나는 여드름이 고민돼 피부과를 찾는 동기들도 있었다. 남자들만 모여 있다고 해서, 피부 관리를 안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화장품 정보는 군대에서 더 많이 얻은 것 같다"고 했다.

면회 오는 여자 친구나 가족을 통해 받은 화장품을 돌려쓰며 일종의 부대 안 유행이 돌기도 한다. 과거에는 먹을거리를 사 오는 면회객이 인기 있었지만, 최근에는 화장품이나 각종 클렌징 용품이 이에 포함된다는 후문이다.

이씨는 "휴가나 면회로 화장품을 들고 왔는데 얻어서 써 보다가 좋다고 느끼면 다들 비슷한 걸 구해 올 때도 있었다. 휴가 때 사 오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5년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 주경기장에서 진행된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에 마련된 이동식 PX에서 쇼핑하는 소비자들. 인기 군스메틱인 달팽이 크림·수분 크림 등이 인기였다.]
PX 화장품의 '화려한 세계'…'군스메틱'

군대 내 매점인 PX도 군인들의 화장품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창구가 됐다.

PX에서 '가격 대비 성능'이 준수한 각종 화장품과 크림을 판매하면서 이를 구매하는 군인이 늘어난 것이다. PX 화장품 코너에는 스킨·로션 등 기초군 외에도 선크림·클렌징 오일·각종 마스크팩과 수분·마유·스네일 등을 주성분으로 한 프리미엄 크림 등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여군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수분 크림·아이 크림 등 여성용 기능성 화장품도 있다. 부대 개방 행사나 휴가철 귀향 때를 맞춰 화장품 세트도 구비돼 있다.

인기가 있다. PX 화장품 매대 위에는 '균등한 복지 수혜가 갈 수 있도록 적정량만 구입해 달라' '구매 이후 시중 재판매는 불가하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품목별로 차이는 있으나 PX 화장품은 정가보다 절반 이상 저렴하다.

이씨는 "내가 있던 부대의 PX는 물건이 금방 동났다. 한꺼번에 여러 개씩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장교가 유난히 많이 사 갔다더라'는 소문도 돌 지경이었다"고 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달팽이 크림'이라는 별칭이 붙은 스네일 크림이다. 국방일보가 지난해 '현역 장병이 뽑은 PX 최고 상품'을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장병들이 꼽은 1위 품목이 닥터지의 '블랙 스네일 크림'과 '레드블레미쉬 클리어 크림'이었다.

달팽이 점유액 성분을 함유한 이 크림은 피부 재생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잘 팔린다. 온라인상에서 50ml짜리 한 개에 3만원 안팎에 판매되지만, PX에서는 70%가량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부대 개방 행사 때나 면회 등을 통해 사용해 본 뒤 한 번에 여러 개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 군인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씨는 "이른바 '군스메틱'이 싸고 좋으니까 블로그나 오픈마켓에서 되파는 사례도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뷰티 브랜드 닥터지가 출시한 달팽이 크림인 `블랙 스네일 크림`은 지난해 `현역 장병이 뽑은 PX 최고 상품`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블랙 스네일 크림을 입력하면 각종 사이트에서 "온라인 쇼핑몰 최저가보다 저렴하게 올렸다"면서 판매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닥터지 블랙 스네일 크림, 토너, 폼클렌징 필요하신 분 계신가. 군대 PX에서 사다 드리겠다"면서 대놓고 '군스메틱'을 판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 정가보다 훨씬 싼 1만원 안팎에서 거래된다.

화장품 업계 '군대 납품' 선호

화장품은 생활용품 중에서도 비교적 충성도가 높은 품목이다. 군대에서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제대 이후 사회에 복귀한 뒤에도 같은 제품을 찾게 마련이다.

이런 패턴은 실제 구매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국내 최대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올리브영이 올해 1분기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PX 입점 화장품으로 입소문을 탄 레드블레미쉬 클리어 크림은 입점 직후인 2018년 4~6월 대비 남성 구매 매출이 무려 118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크림 카테고리의 남성 매출 신장률 46%와 비교했을 때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군스메틱이 화제가 되자 국내 뷰티 업계에서 입지가 단단한 중견 기업도 진출했다. 코리아나 화장품은 2016년 11월부터 '위네이지 스네일 매직 크림'을 PX에 납품하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다. 만 3년이 채 되지 않은 지난 5월까지 누적 판매 개수가 225만 개를 돌파했다. 6000원이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코리아나 화장품이라는 브랜드의 역사가 깊어 빠른 시일 내에 국군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이다.
[코리아나 화장품이 2016년부터 국군 PX에 납품하고 있는 `위네이지 스네일 매직 크림`은 군부대 내 인기 화장품으로 손꼽힌다.]
코리아나 화장품 관계자는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께서 우연히 PX를 방문했다가 '어려운 환경과 여건에 있는 국군 장병이야말로 제대로된 화장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납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여자 친구가 군대 간 남자 친구에서 선물했지만, 최근 수년 사이 군인이 여자 친구나 어머니·누나에게 PX 화장품을 선물하는 시대가 열렸다. 위네이지 스네일 매직 크림 인기가 많은 비결"이라고 했다.

듀이트리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는 "최근 남성들의 뷰티 관심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 PX에 듀이트리 제품 또한 입점되어 있어 남성 고객 매출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는 군인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속속 출시 중이다.

남성 화장품 스타트업 웬아이그룸은 지난해 피부 문제를 겪는 군 장병들을 위한 밀리터리 그루밍 키트를 출시했다. 훈련소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신병 휴가 때까지 3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제공된다.

훈련소에서 반송될 경우를 대비해 100% 환불 정책을 고수한다. 4000원을 추가로 지불하면 위장크림까지 얹어 준다.

아모레퍼시픽은 7년 전 피부에 자극을 덜 주는 위장크림 제품을 내놨다. 녹차와 숯 등으로 만든 이 크림은 6개월간 5만 개 이상이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화장하는 남자의 전성시대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1년 8784억원에서 지난해 1조20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이면 1조4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반영해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은 최근 한국의 그루밍(Grooming·외모를 치장하는 남성)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했디.

이 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핫한 남성 화장품 시장으로 분류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다른 나라 남성보다 피부 관리에 2배 이상의 비용을 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뷰티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샤넬은 남성 메이크업 라인인 ‘보이 드 샤넬’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였다. 샤넬 최초의 남성 색조 화장품으로 파운데이션과 립밤, 아이브로펜슬로 제품 라인을 구성했다. 명품 샤넬이 전 세계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론칭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샤넬은 지난해 연말 서울 여의도 IFC몰에 '뷰티 부티크'를 오픈해 남성을 위한 독립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곳에선 남성 고객들이 직접 제품을 경험하고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애경산업은 최근 18~24세 젊은 남성들을 겨냥한 화장품 브랜드 ‘스니키’를 선보였다. 스니키는 요즘 젊은 남성들이 메이크업에 대한 니즈가 있음에도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사용법이 서툴다는 점에 착안해 발라도 티 나지 않고 사용이 간편하도록 개발됐다. 제품군도 젊은 남성들에게 수요가 높은 선크림·컨실러·립밤·아이브로·클렌징으로 구성했고, 8000원부터 1만원 초반의 합리적인 가격 책정으로 경제적 부담도 줄였다.

스니키 측은 "남자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집단 심층 조사를 통해 이제는 남자가 화장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세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비비크림·컬러 립밤 등의 화장품은 피부 결점을 보완해 본인을 보다 잘 가꾸고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인지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화장품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뷰티 업계가 남성 화장품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삼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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