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대학별곡] "졸업가운에 운동화" 45년 이대 구두방 탄식

박해리 2019. 6.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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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터줏대감들이 말하는 달라진 대학가
① 이화여대 구두수선집 허완회씨

캠퍼스에는 '터줏대감'들이 있습니다. 매해 새 입학생이 오고 졸업생이 사회로 나갈 때도 그들만은 언제나 캠퍼스 한켠을 지켜왔습니다. 어쩌면 교수님보다 더 학생과 가까이서 숨 쉬어온 그들을 만나 달라진 캠퍼스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45년간 이대생들의 구두를 고쳐온 교내 구두수선집 사장 허완회(61)씨. 박해리 기자
“요즘 캠퍼스에 걸어 다니는 사람 10명 중 11명이 운동화나 단화를 신어요. 패션이 달라지니까 학교 안에 있는 구두수선집에 한 번도 안 오고 졸업하는 학생도 부지기수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45년간 이대생들의 구두를 고쳐온 교내 구두수선집 사장 허완회(61)씨는 요즘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며 하소연했다. 지난달 21일 찾은 구두수선집에는 손님 한명 없이 허씨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학기 중에는 구두를 수선하러 오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던 곳이다.

허씨는 1974년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이대 앞 구두수선집에서 기술을 배웠다. 이후 5년 만에 자신의 가게를 차렸으며 1990년부터는 이대 교내에 자리를 잡았다. 중앙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 옆 귀퉁이의 약 6.6㎡(2평) 규모 가게가 그의 오랜 터전이다.


졸업 가운에도 운동화 신는 요즘 학생들
허씨는 1974년 처음 이대 앞 구두수선집에서 일을 시작한 허씨는 1990년부터는 이화여대 간호대학교 건물인 헬렌관 1층, 중앙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 옆 한 귀퉁이의 약 6.6㎡(2평)정도 규모 가게에서 구두를 고쳐왔다. 박해리 기자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허씨와 달리 학생들의 패션은 달라졌다. 과거에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이 많았다. 언덕이 많은 학교 특성상 구두 굽도 쉽게 닳기 때문에 가게는 언제나 학생들로 가득했다. “교수님보다 더 돈 잘 버는 사람은 구두방 아저씨”라는 우스개 소문까지 퍼질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에 학생 손님이 뚝 끊겼다. 허씨는 “어느 날 졸업식에 졸업 가운을 입은 학생을 봤는데 신발이 운동화였다”며 “70·80년대 때만 해도 졸업가운에 검은 구두를 신어야 하는 학교 규정도 있었지만 세월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는 너무 몰려오는 손님 때문에 허씨는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였다. 허씨 부인은 끼니를 챙기기 힘든 허씨를 위해 매일 점심을 싸서 날랐다. 어떤 날에는 일감이 너무 많아 하루종일 부인이 싸 온 음식을 먹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손님이 끊긴 3~4년 전부터 허씨 부인도 도시락 배달을 멈췄다. 허씨는 “아무리 부부지간이라도 일이 없으면 같이 앉아있기 민망하다”며 “맨날 유튜브만 보고 있으니까 이제 더는 오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한 시간 남짓 동안 총 3명의 손님이 방문했다. 낮은 샌들의 밑창을 갈아 달라는 손님, 구두를 닦아 달라는 손님, 카메라 줄이 깨졌다며 수선이 되냐고 묻는 손님이었다. 모두 재학생은 아니었다. 허씨는 “어떤 날은 2~3시간 동안 아무도 안 올 때도 있다”며 “몇십년 자리 지켰던 서울대 교내 구두수선집도 몇 년 전에 문을 닫았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인터뷰 하는 한시간 남짓 찾아온 손님은 세명 뿐이었지만 신발장에는 졸업생들이 맡긴 신발로 가득했다. 박해리 기자


졸업생들은 지방에서 택배로 보내오기도
학생 손님 발길은 뚝 끊겼지만 졸업생은 여전히 그를 찾는다. 요즘에는 손님의 80~90%는 졸업생이다. 워낙 솜씨가 좋아 그의 손을 거친 신발은 새것이 되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멀리서도 그를 찾아온다.

허씨는 “어제도 오후 5시 반쯤 퇴근했다가 휴대전화를 두고 와 다시 돌아와 보니 남편 구두를 들고 온 졸업생이 가게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놓인 구두를 하나씩 가리키며 “이건 졸업생 신랑구두, 이건 다른 졸업생 동서 구두, 이건 이모 구두라고 한다”며 “자신의 구두만 뿐 아니라 가족 구두까지 가져온다”고 소개했다.

그의 휴대전화 연락처에는 졸업이라고 적힌 번호가 가득했다. 졸업 마산, 졸업 부산 등 지역 이름이 함께 저장된 것도 있으며 졸업 77, 졸업 엄마 등도 있었다. 허씨는 “졸업생은 이름 대신 그냥 졸업이라고 저장해놓는다”며 “졸업생은 언제 문 여는지 전화를 먼저 하고 찾아오기도 하고 멀리 지방에서는 택배로 구두를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허씨의 휴대폰 연락처에는 졸업이라고 적힌 번호가 가득했다. 뒤에 지역이름이 붙은 경우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졸업생이다. 멀리사는 졸업생들은 구두를 택배로 보내온다. 허씨는 ’졸업생들 번호는 이름 대신 그냥 졸업이라고 저장해놓는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기억나는 졸업생이 있냐는 질문에 허씨는 “한번은 외국에서 사는 졸업생이 인천공항에서 케리어 끌고 와서 구두를 한가득 맡기고 간 적도 있다”며 “근처에 왔다가도 내가 아직 있나 들러보고 가는 졸업생도 있어 그들 때문에 힘들어도 자리를 지킨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감소한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허씨는 열쇠 일도 시작했다. 허씨는 “예전에는 열쇠 일은 돈이 안 돼서 안 한 게 아니라 다른 곳에 눈 돌릴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기 때문에 못했던 것”이라며 “이제는 학생들만 바라보다가는 문 닫아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니 시작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날 찾아오는 졸업생들도 있는데 무책임하게 내가 사라질 수 없다”며 “돈보다 책임감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힘닿는 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것이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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