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혈통 자랑은 그만, 유전병 많고 수명도 짧아요

신남식 2019. 6.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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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신남식의 반려동물 세상보기(27)
국내에서 열린 그레이하운드 경기에서 경주견들이 트랙을 돌고 있는 모습. 그레이하운드 종은 몸이 가늘고 다리가 길쭉해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시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사냥견과 경주견으로 많이 길들였다. [중앙포토]

동물 중에서 인간이 맨 처음 길들인 동물은 개다. 육종기술의 발달은 그의 운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냥의 목표물을 추적하기 위해 다리를 길게 그리고 빨리 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굴속의 사냥감을 잡도록 다리를 짧게 만들기도 했다. 투견을 위해 강한 턱을 가진 대형 품종을 만들었고, 귀엽게 보이기 위해 몸은 작게 머리는 크게 하기도 했다. 체력이 강하고 교육을 잘 견디는 품종도 개발했고, 주인에게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품종도 만들었다.

이렇게 인간의 욕구와 취향에 따라 육종된 견종은 품성과 체형이 다양하게 분화됐다. 지금은 약 400여 품종에 이른다. 그러나 특유의 품종을 만들기 위해 번식과정에서는 근친관계가 일어난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떨어뜨려 여러 가지 유전성 질환에 시달리게 한다. 또한 품종에 따라 독특한 외형과 해부학적 특징에서 유발되는 질병도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수가 많은 견종으로, 독일이 자랑하는 저먼 셰퍼드는 19세기 말에 육종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견으로 맹활약했다. 현재까지 군견, 경찰견, 탐지견, 구조견 등으로 널리 활동하고 있다. ‘버디’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 최초의 시각 장애인 안내견도 저먼 셰퍼드 종이다.

그러나 수려한 외모와 신사적 성품과는 달리 다양한 유전적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대퇴부와 팔꿈치 관절의 형성장애가 흔히 발생한다. 이는 운동량이 많은 품종 고유의 용도에 큰 걸림돌이 된다. 퇴행성 척수증, 심근병증, 백내장, 췌장의 분비 장애의 발생률이 높은 편이며 활동 중에 위가 꼬이는 현상도 종종 일어날 수 있다.

최초의 시각 장애인 안내견이자 저먼 셰퍼드 품종인 '버디(Buddy)'는 주인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를 도왔다(위). 저먼 셰퍼드는 안내견, 군견, 경찰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할 정도로 의젓하지만, 대퇴부 형성 장애가 흔히 발생하는 품종이다(아래). [사진 유튜브 캡처, pixabay]

영국을 대표하는 품종인 불도그는 17세기 초부터 유래됐다. 대형 종의 투견으로 시작했으나 19세기 초 투견이 불법으로 규제되면서 체구가 작아져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머리가 크고 안면부의 폭이 넓어 새끼는 자연분만이 어려워 대부분 제왕절개술에 의존한다.

주둥이가 매우 짧고 코가 위로 벌어져 있어 코를 심하게 골고 호흡기에 문제가 많다. 주름진 피부는 피부병의 온상이 된다. 또한 대퇴부 관절 형성장애, 선천성 심장결함, 척추뼈갈림증, 요로결석증 등이 많이 발생한다. 비정상적인 것 같은 특이한 외모로 육종된 불도그는 수명도 짧아 평균 6년이 조금 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닥스훈트나 웰시코기와 같이 상대적으로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품종은 허리디스크의 발생빈도가 높다. 계단이나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시츄나 페키니즈 퍼그 등 눈이 크며 튀어나오고 얼굴이 납작한 품종은 안구가 취약하다. 각막염이나 안구건조증에 쉽게 노출될 수 있으며 호흡기 질병도 조심해야 한다.

불도그(왼쪽)는 코골이가 심하고 호흡기에 문제가 많다. 주둥이가 너무 짧고 코가 위로 벌어진 탓이다. 식빵처럼 빵실한 엉덩이로 귀여움을 받는 웰시코기(오른쪽)도 관리가 필요하다.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어 허리디스크 발병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unsplash]

활발한 성격에 털이 빠지지 않아 인기가 있는 토이푸들은 망막질환이 많다. 테리어 종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요크셔테리어는 무릎관절탈구가 흔히 발생한다. 작은 체구에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치와와는 녹내장의 위험성이 높다.

시각 장애인 안내견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대퇴부 관절 형성장애, 백내장과 망막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인 골든 리트리버는 갑상선 기능 저하나 악성 종양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양몰이 개로 사랑받는 보더콜리는 망막위축증과 청각장애가 많이 발생하고 차우차우는 대퇴부와 무릎관절에 탈구가 흔하다.

한때 만화영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달마티안은 청각장애로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고 관리가 쉽지 않다. 영화제작 당시 영국의 켄넬클럽에서는 영화 상영 직후 달마티안의 일시적인 입양 증가와 이후 청각장애 등으로 인한 상호 소통의 부조화로 유기나 파양될 것을 우려하여 영화사 측에 제작 중단을 요청한 바 있었으며,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렇듯 대부분의 순수혈통의 견종들은 여러 가지 유전적 질환과 특이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 병치레도 많이 해 더욱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그 때문에 특정 품종의 번식전문가나 전람회 출진 목적이 아니라면 일반 보호자는 굳이 순수혈통의 반려견 소유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반려견의 가치는 특정 품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에서 보호자와 좋은 유대관계를 가질 때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신남식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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