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초등학교 '혁신학교 전환' 논란..제2의 헬리오시티 사태 되나

전민희 2019. 5. 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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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곡초 앞에서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전환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전민희 기자
“학부모 싫다는데 혁신초 웬말이냐.”

16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건너편 대곡초 교문 앞에는 학부모 100여명이 모였다. 학교 측의 혁신학교 전환 추진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학부모들은 얼굴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썼고, 손에는 검은색·하얀색 바탕에 빨간 글씨로 써진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에는 “학교주인 누구인가 학부모는 바보인가” “학부모 공감 없는 혁신학교 절대 반대”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대곡초는 이날 오전 시청각실에서 혁신학교 관련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교문 앞을 점거하고, 참석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자 설명회를 취소했다. 설명회 참여 예정이었던 일부 학부모들도 설명회 진행이 불가능해지자 발길을 돌렸다.

대곡초 혁신학교 전환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추진 과정과 절차를 문제 삼았다. 학교 측이 혁신학교 설명회 참여 학부모의 수를 늘리기 위해 겉으로는 독서 관련 학부모 연수를 진행하는 척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실제 대곡초에서는 이날 10~12시에 진행하려던 행사는 ‘왜 지금 독서가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 학부모 연수다. 하지만 가정통신문을 살펴보면 ‘학교 교육활동 및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 안내’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있는 대곡초의 혁신학교 전환을 반대하는 학부모 모습. 전민희 기자
학부모들은 “학교가 학부모들에게 혁신학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날치기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 측이 혁신학교 관련 설명회에 학부모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내세우기 위해 겉으로는 학부모연수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혁신학교 전환을 심사할 때 학교 구성원의 운영 의지 등을 평가하는데 여기에 학부모들의 참여도 등도 포함돼 있다. 대곡초 3학년 자녀를 둔 김모(40·서울 강남구)씨는 “혁신학교 설명회라고 하면 학부모들이 참여율이 저조할 게 불 보듯 뻔하니 겉으로는 학부모연수로 포장해 학부모들 참여를 유도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혁신학교 전환 결정도 학부모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학교 측이 지난 7일 학급대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학부모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교원들이 결정하면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학부모들의 반대의사 표명까지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집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학부모들에게 혁신학교의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한 후 의사결정을 하게 해야 하는데, 학교 측은 이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예산이 들어온다’ ‘학력저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현재 논의 중인 상황이라 얘기할 게 없다”면서도 “학교가 일방적으로 혁신학교 전환을 추진한다는 것은 학부모들의 오해다”고 말했다.

이달 29일부터 시작하는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 공모를 앞두고 일부 강남 초등학교와 학부모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보통 혁신학교 지정은 학교 측이 신청서 제출 후 서류심사와 현장 평가를 거쳐 이뤄진다. 공모에 신청하려면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현재 운영 중인 학교는 학부모나 교원의 50% 이상이 동의해야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교 측이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현재 대곡초는 교원의 동의를 90% 얻은 상태라 학운위 안건 상정은 가능한 상태다. 대곡초 외에 개일초도 혁신학교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비 학부모들이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예비혁신학교 지정 반대와 조희연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에서 혁신학교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3월 송파 헬리오시티에 문을 연 가락초, 해누리초·중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임의로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하다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예비혁신학교로 개교했다. 앞서 강남 중산고와 송파 송례중도 학부모들 반대로 혁신학교 철회하고 일반학교로 전환했다. 특히 중산고는 2014년 공모를 통해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이 무산됐다. 학부모들이 학력저하를 우려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입시와 지식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과 활동 등 학생 중심 교육이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우수한 진학실적으로 내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특히 학력저하 논란 등이 끊이지 않아 교육열이 높은 강남지역에서는 특히 꺼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기준 서울시에는 혁신학교가 전체 213곳 있는데, 그중 강남 3구에는 17곳밖에 없다. 대곡초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이모(36·서울 강남구)씨는 “좋은 환경에서 자녀 교육시키고 싶어서 빚까지 내가며 대치동에 입성하는 사람이 많은데 혁신학교가 웬말이냐”며 “혁신학교 지정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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