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만난 윤봉길, 내 아들과 같은 스물다섯 청년이었다

홍미옥 2019. 4.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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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25)
어김없이 오늘도 시작이다. 엄마! 제 휴대폰 못 봤어요? 교통카드는요? 오 분만 더 자면 안 돼요? 이어폰이 안 보여요 등등. 우리 나이로 스물넷, 대학생 아들의 아침은 늘 이렇게 분주하다. 뭔가를 끊임없이 찾고 또 난 그걸 같이 찾아 헤매고. 그렇게 스물넷이라는 나이는 내게 있어선 아직도 뭔가를 챙겨줘야 하는 품 안의 자식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번 이야기와 그림은 또래의 아들을 둔 엄마의 시선으로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스물다섯 그 남자의 길을 따라 걸어 보는 여정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윤봉길과 그의 아내, 어머니, 두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렸다. by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사용. [그림 홍미옥]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사람, 교과서에서 방송에서 기념일 행사에서 늘 접하던 사람,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그는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1908~1932)이다! 난 언제부턴가 ‘스물다섯'이라는 숫자에 한참을 머무르곤 했다. 아이가 열 살 되던 해, 중국 상해 홍구 공원의 윤봉길 기념관을 방문했었다. 그때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두말할 것 없는 위인 윤봉길 의사였고 여전히 위인전 속 위대한 독립운동가였다.

이젠 내 아이가 자라고 그와 또래가 되었다. 범접할 수 없던 위인을 바라보던 시선이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멈춰진다. 여러 감정이 드나든다. 내가 그린 상상 속 그림에서는 떠나는 남편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 업은 아내가 있다. 그 옆엔 어머니의 안타까운 뒷모습도 있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귀한 아들로 고국의 독립을 위해 강을 건넜을 젊은 청년,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아직도 끊임없이 엄마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나의 스물넷 아들이 떠오를 수밖에.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지만, 그의 젊음과 결기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여전히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 모성본능이 뇌리를 치고 들어온다.

오사카 성 앞 토요토미 신사 뒤편에 있는 일본의 반전 시인 쓰루 아키라의 추모비(위). 1932년 11월 윤봉길 의사가 수감되었던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의 터를 알려주는 비석(아래). [사진 홍미옥]

벚꽃이 흐드러지던 사월의 오사카. 그중에서도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몰려드는 곳은 오사카 성이다. 중년에 접어들고부터는 눈물도 많아지고 없던(?) 애국심도 생겨나는가 보다. 여행 중 틈틈이 항일독립 사적지나 선조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일정을 계획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엔 오사카에서 만나는 윤봉길이다. 봄꽃놀이가 한창이던 오사카 성을 마주 보고 있는 곳, 그곳엔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떠받드는 신사가 있어 인파로 북적였다.

신사 뒤편으로 가면 작은 터가 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진동호회에서 나온듯한 일본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한편에는 29세에 요절한 일본의 반전 작가인 쓰루 아키라(鶴彬1909~1938)의 추모 시비가 있다. 그 시비의 뒤편엔 이곳이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가 있던 자리라는 안내가 쓰여 있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의거 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가나자와로 이송되기 전인 11월에 한 달 동안 수감되어 있던 그 장소다. 아! 바로 이곳이었구나.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수감 터인 육군위수형무소가 있던 오사카 성 공원. [사진 홍미옥]

다행인 건 시인 쓰루 아키라가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까닭에 이곳에 추모비가 세워져 그 터가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던 양국의 청년이 반전과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잠시나마 함께 숨 쉬었던 곳이다. 젊고 젊었던 그들이….

그다지 넓지 않은 형무소 터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꽃비가 휘날렸다. 이곳에서 보이는 건너편 오사카 성의 벚꽃은 왜 그리 아름다운지, 그야말로 잔인한 4월이다. 그가 꽃다운 스물다섯의 마지막 가을을 보냈던 이곳에 준비해간 소주를 뿌리고 돌아섰다.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이 남아있는 가나자와의 노다야마(野田山)
가나자와 근교에 있는 노다야마 묘원, 이곳은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가 있는 곳이다. [사진 홍미옥]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 가나자와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제과점도 있고 소문 난 미술관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12월 19일 일본군에 의해 총살당해 순국했던 곳이기도 하다. 2017년, 우리가 시립 노다야마 묘원을 찾아가던 날은 마침 상해의거가 있었던 4월 29일이었다. 가나자와역 앞에서 버스로 30여분을 달려가니 묘원 정류장이 나왔다. 버스정류장 주변엔 오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4월 하순의 햇살은 뜨거웠고 윤봉길 의사를 찾아가는 마음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전해지는 소식으론 윤 의사의 유해는 묘원에서도 가장 후미지고 좁은 길목에 버려지다시피 있다고 했다. 묘원 앞의 꽃집도 문을 닫고 가게도 눈에 띄지 않아 빈손으로 터덜터덜 가게 됐다. 넓은 시립 묘원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윤봉길암장지적'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행여 누가 찾을까 봐 일부러 꼭꼭 숨겨 놓은 것처럼. 좁은 오솔길이 외롭게 이어지는 길가에 그가 있었다.

잘 정비되고 꾸며져 있던 여타의 묘지와는 다른 이곳은 인적조차 찾기 힘든 외진 곳이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작은 관리소가 있는데 한때는 쓰레기 소각장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오가던 길목 계단 옆에 외롭게 자리한 윤 의사의 암장지엔 서늘한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처음엔 힘들게 찾았다는 안도감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던 듯했다. 식은땀을 봄바람에 내맡기고 있자니 이내 마음이 아팠다.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위). 1992년 12월 19일 그의 기일에 맞춰 조성됐다. 가나자와의 교포와 시민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이곳엔 작은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아래). [사진 홍미옥]

그 누구도 아닌 윤봉길! 그가 이런 곳에 아무렇게나 묻혀 있었다니 울컥하고 목 울음이 올라왔다. 어제쯤 다녀갔을까? 누군가 두고 간 꽃다발이 아직도 물을 머금고 있다. 아침에 컨디션 난조로 방문을 망설였던 게 부끄러웠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비석을 닦고 또 닦고 향불을 피우고 묵념을 올렸다. 한참을 앉아서 분노의 감정도 쏟아내고 또래의 아들을 둔 어미의 심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풀어놓기도 했다. 발굴 당시 나무뿌리에 엉키어 찾아내지 못한 유해 7점은 아직 이곳에 있다고 한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됐는데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주변에 핀 들꽃, 나무, 바람들은 그의 친구가 되어 줬을까? 쉽게 찾기 힘든 곳에 이렇게 외롭게 누워있는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 그가 굳게 다문 입만큼이나 단단한 비석 위엔 그가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비치된 방명록을 보니 다행히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마지막 길이 더는 외롭지 않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있기를 희망하며 한참을 머무르다 길을 나섰다.


2019년 봄, 효창공원에도 봄은 찾아오고
2019년 4월 효창공원. 윤봉길 의사의 유해와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삼의사 묘역, 아울러 안중근 의사의 허묘도 함께 있다. [사진 홍미옥]

다시 봄이 오고 여기는 효창공원이다.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와 함께 윤봉길 의사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삼의사 묘역이다. 햇살은 빛나고 바람마저 상쾌한 이곳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세상이다. 스물다섯에 멈춰버린 그의 봄날은 이곳에서 찬란한 봄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상해에서 오사카 형무소로 그리고 가나자와의 암장지에서 이곳까지! 아들을 보내는 어미의 마음으로, 남편을 보내는 어린 아내의 심정으로, 든든한 아빠를 보내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함께 한 여정이었다. 오늘, 찬 바람을 뚫고 세상에 향기를 내뿜는다는 호(號) 매헌(梅軒)처럼 뚜벅뚜벅 조국을 위해 걸어갔던 그를 다시 생각해본다.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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