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주택 공시가격 오류 논란-산정과정 불투명..감정원 비전문성 도마에

강승태 2019. 4. 29. 1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A구 B동 △△-△△번지 일대 개별주택은 용도지역(잠깐용어 참조)이 1종 일반주거지역이었다가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됐다. 2종 일반주거지역은 1종보다 용적률이 높아 주택을 더 높게 지을 수 있다. 개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땅값도 비싸게 반영된다. 하지만 올해 개별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종상향이 적용되지 않고 공시가격이 산정됐다. 용도지역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개별주택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당연히 주변 주택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공시됐다.

서울 용산과 마포, 강남구 등 개별주택 공시가격 산정 검증 과정에서 오류로 추정되는 사안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지역의 개별단독주택 공시가격 인상률은 표준단독주택보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개별단독주택 공시가격을 검증한 결과, 456채의 공시가격 산정 오류를 발견해 시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전권을 가진 개별주택 공시가격에 대해 중앙정부가 정밀조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1~2건도 아닌 수백 건의 오류가 발견되면서 일각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시가 급등에 반발한 민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단순 기준 설정이나 계산 실수에 따른 것으로 보고 고의성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서울 일부 자치구에서 개별주택 가격이 잘못 산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단독주택 밀집 지역. <사진 : 최영재 기자>

▶공시가격 오류 논란 확산

▷지자체 실수라고 하지만…

국토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서울 용산구의 표준주택 공시가격 인상률은 35.4%다. 하지만 개별주택 가격 인상률은 27.7%로 7%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마포구(6.81%포인트), 강남구(6.11%포인트), 성동구(5.55%포인트), 중구(5.39%포인트), 서대문구(3.62%포인트), 동작구(3.52%포인트), 종로구(3.03%포인트) 등도 차이가 컸다. 예년만 해도 1~2%포인트 차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이 같은 배경에는 올해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 작업을 하면서 표준주택별로 공시가 상승률을 제각각 적용했기 때문이다. 기존 공시가격 자체가 주택별로 들쭉날쭉 제멋대로 매겨져 있었던 탓에 이를 바로잡으려다 보니 인상률이 차등 적용된 것이라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8개 구 약 9만가구를 대상으로 지자체 개별주택 공시가 산정 과정과 감정원의 검증 과정·결과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개별주택 456가구의 공시가격 산정 오류가 발견됐다. 오류율은 0.5%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주택은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는 고가 주택이었다.

오류 유형은 비교 표준주택 선정을 잘못한 사례가 전체 90%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개별주택 공시가격은 특성이 비슷한 표준주택 C(올해 공시가격 18억1000만원)를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200m 더 멀고 시세도 다른 표준주택 D(올해 공시가격 15억9000만원)를 기준으로 매겨졌다. 당연히 해당 개별주택 공시가격은 다른 주택과 비교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국토부는 발견된 오류를 감정원과 지자체 간 협의를 거쳐 재검토하고, 각 구에 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를 통해 공시가격을 바로잡도록 요청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한국감정원 책임론 솔솔 대두

공시가격은 정부 재원의 기초다. 양도소득세·상속세·증여세·토지초과이득세, 개발부담금(착수 시점), 택지초과소유부담금 등 각종 토지 관련 세금의 과세 기준이 된다. 중요성은 매우 강조할 만하다. 이렇게 중요한 작업인데 서울에서만 수백 건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많은 시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본적으로 ‘깜깜이 부동산 공시제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리겠다며 전국 표준주택 공시가격을 지난해 대비 평균 9% 이상 올렸다. 하지만 산정 과정이나 절차 등은 밝히지 않았다. 공시가격을 발표할 때 조사 과정 전반을 담은 보고서나 세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현재 공시가격 시스템 산정 방식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 공시법)’에 따르면 매년 새롭게 공시하는 공시가격은 총 8가지다.

토지에 대해서는 표준지공시지가와 개별공시지가가 있다. 일반 단독주택은 표준단독주택과 개별단독주택으로 분류된다. 아파트를 대상으로는 공동주택 가격을 별도 공시한다. 이외에도 비주거용 표준 부동산과 개별 부동산, 집합 부동산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표준지공시지가다. 표준지공시지가는 각종 공시가격에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3000만필지가 넘는 땅이 있다. 이 중 표준지는 약 50만필지다. 표준지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가격을 산정한다. 약 1200명이 넘는 감정평가사가 표준지공시지가 산정에 투입된다. 개별공시지가는 표준지 가격을 바탕으로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담당한다.

주택은 다소 다르다. 국토교통부는 표준주택(약 22만채) 가격 산정을 한국감정원에 맡긴다. 표준주택을 바탕으로 전국 개별주택(약 396만채)은 지자체 공무원이 맡고 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역시 감정원이 조사하고 있다.

,u>문제는 감정원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감정평가사는 약 4000명 수준. 반면 한국감정원에 있는 감정평가사는 약 200명에 불과하다. 감정원 전체 직원 중 약 60%는 감정평가사가 아닌 일반 직원이다. 이들은 감정원 내 감정평가사와 함께 표준주택 가격을 매기고 개별주택 가격을 검증한다. 감정원의 전문성 논란이 매년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다.

김남성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감정평가사사무소협의회장은 “현재 한국감정원의 주택 공시가격 산정 업무에 투입되는 인원 500여명 중 감정평가사 20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은 해당 업무를 할 자격이 없다”며 “법에서 자격을 부여받은 감정평가사만 공시가를 산정할 수 있는데, 감정원의 비전문가들이 이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정원은 지자체가 공시가격을 산정하면 가격의 적정성을 검증해야 한다. 지자체 공무원 실수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고 견제하는 것이 감정원 역할이다. 하지만 감정원 역시 구조적 문제로 비전문가가 공시가격 작업에 투입되다 보니 수백 건의 ‘개별주택 공시가격 오류’라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감정원 측은 오히려 ‘감정원 업무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다. 최근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한 간담회에서 “공시제도 선진화를 위해 조사·산정기관을 감정원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정평가업계는 “조사기관 일원화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신뢰성 있는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개별주택 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은 비교 대상이 되는 표준주택을 선정하는 작업”이라며 “가까운 표준주택 대신 멀리 있는 표준주택을 적용하거나 용도지역을 잘못 적용하는 오류는 검증 과정에서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것임에도 그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토부는 감정원에 대해 개별주택 가격 검증 과정에서 왜 오류를 걸러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잠깐용어*용도지역 토지의 이용과 건축물의 용도·건폐율·용적률·높이 등을 제한함으로써 토지를 경제적·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책. 전 국토는 도시지역, 관리지역,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 등 4종류로 구분. 이 중 도시지역은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으로 분류한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6호 (2019.05.01~2019.05.0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