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아이 엠 쏘리(I a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냐"
소녀상은 2017년 7월 홍콩의 한 시민단체가 설치한 것이다. 한복 차림의 소녀 곁엔 옷차림이 조금 다른 두 소녀가 함께 앉아있다. 한국과 홍콩(중국), 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한 세 소녀는 홍콩 최고 번화가인 센트럴에서 국제금융센터로 이어지는 육교 위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 명동쯤 되는 곳이다. 인근엔 주홍콩 일본총영사관이 있다.
구릿빛의 소녀들은 한결같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보는 이에겐 슬픔만 묻어났다. 이들 곁엔 메모판이 설치돼 있다. 세계 각국 언어로 적힌 메시지가 한가득하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일본 정부의 사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자가 떠난 다음 날인 3‧1절 당일엔 홍콩과 선전, 광저우 교민들이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앞에서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며 1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날 일본의 응답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과 요구에 침묵하는 일본의 모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최근엔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문 의장은 지난달 8일 공개된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한 마디면 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혹은 나로서는 곧 퇴위하는 일왕이 (사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의 발언에 일본 정부는 벌떼처럼 일어나 반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심각하게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상당히 유감”이란 입장을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에 사죄와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고 말했고 고노 외무상은 “발언을 조심해야 한다” “무례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되레 사과를 요구하는 비극이 또다시 이어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만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 나옥분(나문희 분) 할머니는 조롱을 일삼는 일본인들에게 “아이 엠 쏘리(I a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냐”고 일갈한다. 일본 정부의 사과가 늦어질수록 평생 상처로 얼룩진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길은 요원해질 뿐이다.
홍콩의 소녀들은 모두 노란 국화를 들고 있었다. 노란 국화의 꽃말은 ‘실망’이라고 한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에 소녀들이 실망을 거둬들일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소녀들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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