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토종 주주행동주의 닻 올린 '강성부' KCGI 대표

임정수 2019. 1. 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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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대기업 지배구조 집중
한진에 신뢰회복 계획 제안
여론 지지 업고 승기 잡아
재계 "과도한 경영권 공격 우려"

[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지난해 12월 초 쯤이다. 강성부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국내 최대 항공 그룹이 차입금을 늘려 감사 선임을 무력화하는 교모한 방법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당시 그는 모리타 나오유키 전 일본항공(JAL) 부사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가 있었다. 모리타 부사장은 부실 기업이던 JAL을 세계 최고의 항공사 반열에 올려 놓은 아메바 경영의 선구자다. 한진칼 경영진을 도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데 한진그룹이 꼼수로 대응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패를 당하는 듯 했던 강 대표는 1개월여 만에 한진그룹 물류 계열사 한진의 지분을 취득하는 우회 전략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는 한진칼과 같은 방법으로 KCGI측의 감사 선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하면서 토종 주주행동주의 사모펀드(PEF)의 활약이라는 강 대표의 숙원이 눈 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20년 동안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에 집중해 온 강 대표의 전략들이 예사롭지 않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일탈 여파로 여론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 약력

크레딧 애널리스트, 지배구조에 매진하다

강 대표는 PEF 수장으로 변신하기 전까지 기업의 신용도를 분석하는 크레딧 애널리스트였다. 1세대 크레딧 애널리스트로 통하는 윤영환 전 신한금융투자 상무, 길기모 전 메리츠종금증권 전무, 동양증권 재직 시절 사수였던 류승화 현 메리츠종금증권 상무 등과 함께 2000년대 초반부터 증권사에 생소했던 기업 신용분석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다른 크레딧 애널리스트들과는 결이 달랐다. 대부분의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이 기업과 투자 본연의 신용 위험에 집중했다면 강 대표는 기업 지배구조에 매달렸다.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서 기업 신용분석을 맡고 있던 초년병 시절부터 기업 지배구조가 기업을 파악하는 핵심 도구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그는 2004년 동양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이듬해인 2005년 국내 최초로 100대 기업의 지배구조를 완성한 보고서를 발간해 유명세를 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아니라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요지의 보고서는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각종 연기금과 투자기관, 언론에서 그를 찾기 시작했다.

지배구조 분석력과 기업 탐방 등 본질과 현장을 중시하는 기업 분석은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이 투자은행(IB) 부문 대표 증권사로 성장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강 대표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당시 동양증권 IB를 이끌었던 김병철 현 신한금융투자 대표를 보좌해 회사채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몸담고 있던 동양그룹이 부실해지면서 2012년 김상훈 연구원 등 후배들과 함께 신한금융투자로 둥지를 옮겼다. 회사를 옮겨서도 관심을 놓지 않고 지배구조에 대한 분석을 지속해 나갔다.

토종 사모펀드 개척자로 변신…주주 행동주의 시험대

뼛속까지 크레딧 애널리스트로 보였던 강 대표는 2015년 LIG그룹의 PEF 운용사인 LK파트너스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투자를 실행하는 일을 하고 싶어했던 그의 바람과 노력은 새 도전으로 이어졌다.

투자 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같은 해 55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요진건설 지분 45%를 취득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2년여만에 인수한 지분을 팔아 대규모 차익을 남겨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투자는 오너의 가업 승계를 도우면서 이익을 실현한 것으로 본격적인 주주행동주의 펀드로 보기 어려웠다. 현대시멘트, 대원, 풀잎채, 극동유화 등에도 투자를 집행해 성과를 거뒀다.

그러던 강 대표는 지난해 8월 대기업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 운용사 KCGI를 설립했다.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지분을 확보한 뒤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추구한다. 크레딧 애널리스트 초년병 시절부터 꿈꿔온 일이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초 각각 한진칼 지분 10.81%와 한진 지분 8.03%를 보유하며 본격적으로 토종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또 지난 21일에는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담은 주주 제안서를 내놨다. 한진그룹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공개해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주주 제안에는 일본에 건너가 모리타 부사장으로부터 들은 JAL의 회생 방안 중 대한항공에 적용 가능한 전략이 녹아 있다.

강 대표가 승기를 잡은 듯 보이지만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계 입장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그룹 경영에 대한 과도한 공격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었던 재계로서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진그룹에 대한 KCGI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재계 전체와 KCGI의 대결 구도가 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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