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로 말할 것 같으면

2019. 1. 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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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AND DESTINY

새해를 맞아 신년 운세를 보고 있다면. <엘르>가 사주명리학의 세계에 파고들었으니, 이 기사를 참고할 것

‘기가 막힌다’는 추천을 받고 찾아간 어느 사주 상담가의 사무실에는 부동산 개발업자처럼 생긴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유물 같은 데스크톱에 내 생년월일시를 입력하자 가로 넷, 세로 둘씩 총 여덟 글자의 한자가 검은 화면 속에 떠올랐다. 그는 3단 봉을 쭉 뽑아 한 자 한 자 가리키며 한참 설명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년부터 ‘대운’이 바뀝니다.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겠어요. ‘지살’도 들어왔네요. 지금까지는 캐리어를 끌고 왔다 갔다 했다면 이번에는 이부자리를 들고 이동하게 됩니다.” 여기서 일단 대운이라 하면 좋은 운이 들어왔다고 잘못 이해하기 쉬운데 전혀 아니다. 대운은 10년마다 작용하는 운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마다 다르게 진행된다. 내 경우에는 9, 19, 29, 39, 49세 순으로 진행되고 있고 마침 대운이 바뀌기 1년 전인 38세에 사주를 보러 간 것이다. 비슷한 오해로 ‘삼재’라는 것도 사주에서는 사실상 없는 개념이다. 아무튼 그가 지살이 들었다고 말한 바로 그 달에 뻔질나게 출장 다니던 나는 남편과 남쪽 도시로 이사했다. 몇 달 후 직장도 관뒀다. 그 용한 점쟁이가 누구냐고?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내 운명을.

사주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순간, 천체에 떠 있는 별 중에서 어느 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지를 통해 운명의 이치를 논한다. 서양의 점성술과 같은 원리다. 명리학은 숙명론이 아니다. 주체를 둘러싼 우주 변화의 기운, 거기에 대응하는 주체의 기운 변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리거나 어긋나면서 흘러가는 메커니즘이다. 사주에 내 미래가 보인다 해서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맞닥뜨릴 파도는 피해갈 방법이 없으니 서핑하듯 올라타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대비하는 거다. 또 다음 파도를 예측하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내 운과 명을 두고 전략을 짜는 거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붙들려 있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별자리, 사주, 타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사주명리학에 깊이 파고들었고, 언젠가는 이것으로 운명의 카운슬러 같은 걸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고, 사주는 나와 타인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됐다.

누구나 자신의 사주팔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앱 스토어에서 ‘점신’ ‘강헌의 좌파명리학’ ‘원광만세력’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생년월일시를 입력하면 된다. 이는 앞으로 100년 동안의 천문과 절기를 추산하여 밝힌 만세력 프로그램들이다. 나이 지긋한 상담가에게 사주를 보러 가면 손때 묻은 만세력 책을 훌렁훌렁 넘기며 사주팔자를 뽑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요즘엔 컴퓨터가 그 수고를 대신해 준다. 여하간 그 사람의 기질을 결정하는 4개의 시간 기둥이 바로 사주팔자인 것이다[사(四)는 숫자 4, 주(柱)는 기둥 주]. 사주에 불이 많다, 물이 많다, 이런 얘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지난 2~3년간 주위 사람들의 명식을 살펴본 결과, 잡지 에디터였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한 내 친구들(여자)은 대부분 양간 일생이고(‘옛날에 태어났으면 장군이 되었을 사주’ ‘겉보기엔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속은 완전 남자’), 하나의 글자가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 잘 만든 만세력 애플리케이션은 오행을 보기 좋게 컬러로 표시한다. 목(木)은 녹색, 화(火)는 빨간색, 토(土)는 노란색, 금(金)은 흰색, 수(水)는 검은색. ‘이 선배 성격 좀 센데…’ 하면서 명식을 열어보면 여지없이 새빨갛거나 시커멓거나 그렇다. 재미 삼아 간략하게 오행별 성격을 얘기해 보면 우선 ‘화’가 많은 사람은 매사 사리분별이 정확하고 말도, 일도 잘한다. 이런 사람은 잘해서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려는 욕망으로 살아간다. 무슨 일을 하든 몰입도 최강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불 내며 일하다가 어느 순간 방전돼 우울해진다. ‘목’은 봄에 언 땅을 뚫고 나와 쭉쭉 자라는 나무를 떠올리면 된다. 기획력이 뛰어나고 어진 마음을 갖고 있지만 언제나 시작만 있을 뿐이다. ‘금’은 코어가 단단하다. 규칙적이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며 의지력이 강하다. 직언직설하고 솔직한데 이상하게 그 말은 듣기가 싫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팩폭’해 놓고 개운한 얼굴로 “왜? 내가 틀린 말 했어?”라는 자들이다. ‘토’는 중립적이고 완충 작용, 가교 역할을 한다. 매사 신중하지만 보수적이고 결정 장애자들이며 우유부단하다. ‘수’는 어느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어떤 모양이든 변할 수 있는 물의 특성처럼 유연하고 융통성 있고 예지력과 직관력이 뛰어나지만 감정 기복으로 인한 심리적 질병에 유의해야 한다.

명리학의 뼈대인 음양오행은 다섯 개고, 우리의 명식은 팔자다. 짝이 맞지 않는다. 애초에 완벽한 조화, 완성이란 없는 거다. 바야흐로 밝아오는 기해(己亥)년, 내 운세를 본다. 내 사주 여덟 글자 중에서 두 글자에 해당하는 해(亥)가 또 들어온다. 나에게 해는 ‘식신(食神)’이라는 걸 의미한다. 일생 밥 굶을 일은 없지만 특유의 게으름과 낙천성으로 허허실실, 인생을 즐겁게 왔다 가는 것으로 여긴다. 무료 토정비결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니 이런 점괘가 나온다. “본인의 경우 게으르고 안일한 생활을 탈피하고 항상 미래를 생각하고 이를 대비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내년도 잘 놀고 조금 일하며 신나게 먹어보려 했더니 이젠 좀 각 잡고 살라고 내 사주가 보내는 경고일 터.

글 안동선

에디터 김영재

사진 gettyimageskorea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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