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휩싸인 이해찬-홍준표, 두 사람이 꼭 봐야할 장면

김준모 2019. 1. 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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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라이프 필스 굿> 편견과 동정 대신 소통을 말하다

[오마이뉴스 김준모 기자]

 영화 <라이프 필스 굿> 포스터.
ⓒ 노바엔터테인먼트
지난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정치권에서 말하는 걸 보면 저게 정상인처럼 비쳐도 정신 장애인들이 많다"며 "이 사람들까지 포용하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고 말해 '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31일 "제가 부적절한 표현을 해서 장애인들에게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역시 같은달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해찬 대표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 글 역시 '장애인 비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홍 전 대표는 "정치권에 정신 장애인이 많다고 말한다"며 "국민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정신 장애인이라고 말한다"고 썼다. 결국 홍 전 대표의 글은 이해찬 대표의 '비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지난 10월에는 서울 강서구의 장애인 특수학교 교남학교 교사 12명이 장애 학생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는 일도 있었다. 최근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과거에 비해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이나 교육자의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6월 국내 개봉한 영화 <라이프 필스 굿>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지닌 이들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폴란드 영화는 마테우스라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남자가 소통을 통해 한 송이 '꽃'이 되는 과정을 잔잔하지만 뜨겁게 담아낸다.

의사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마테우스(데이비드 가드너 분)의 상태를 식물인간에 비유한다. 살아는 있되 행동도 소통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가족은 마테우스가 아무것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짐처럼 여기며 방치한다.
  
 영화 <라이프 필스 굿> 스틸 컷.
ⓒ 노바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마테우스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공부를 한다. 식탁에서의 모습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며 소포를 통해 지리를 배운다. 이때 마테우스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내레이션은 근사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다. 마테우스는 생각하고 느낄 줄 안다. 그리고 소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테우스에게 '다르게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소통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식물인간은 뇌손상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사용되는 말이다. 즉, 생명은 붙어있으나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환자를 의미한다. 의사가 마테우스에게 식물인간과 같다는 딱지를 붙인 순간 마테우스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시설에서는 마테우스와 같은 지적장애 환자들을 아무 생각이 없는 존재로 여긴다. 그들의 육체적인 반응은 발작처럼 취급되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치나 욕구도 고려되지 않는다. 그들은 쉽게 발가벗겨지고 쉽게 추위나 아픔에 노출된다.
 
이는 '소통을 할 수 있는 대상'을 정해놓는 데서 오는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자원봉사자 마그다(카타르지나 자와츠카 분)는 '마테우스가 내 말에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지만 남자 직원은 시니컬하게 "그들이 보이는 반사적인 신체 반응일 뿐"이라고 무시한다. 이들은 시설의 환자들은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로 정의한다. 심리정신학 용어 중 '라포르(rapport)'라는 용어가 있다. 영어로 관계를 의미하는 이 용어는 서로 친밀하게 여기는 감정을 말하며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라이프 필스 굿> 스틸 컷.
ⓒ 노바엔터테인먼트
 
사람은 보통 모든 이들을 '라포르'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과 국적, 인종, 생활수준, 연령대 등 동등한 존재라 여기는 이들을 소통의 범위에 넣는다. 범위에서 벗어나는 이들과는 '라포르'를 맺기 거부하기도 하고 혐오 또는 동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경우도 많다. 마테우스 역시 오직 동정의 시선으로만 대해졌을 뿐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테우스가 온몸을 비틀어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소통을 위한 몸부림, 자신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애절한 외침이라 할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가 이름을 불러주자 옆으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어쩌면 이 시의 이 마지막 연이 <라이프 필스 굿>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마테우스는 한 번도 다른 이에게 꽃이었던 적이 없다.
 
가족들은 의사의 말처럼 식물이라 여겼고 시설 사람들은 잘 간수해야 하는 짐처럼 여겼다. 사랑이라 여겼던 마그다 역시 그에게 품었던 감정은 동정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마테우스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그는 하나의 꽃이 되었다. 그 더디지만 찬란한 과정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지닌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꼬집으며 동정이 아닌 소통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 달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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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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