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일녀 수다 ④-일본인은 왜 그리 고양이를 사랑한다냥?

정현목 2018. 11.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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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양이 역장 타마 죽자 신사 세워 기려
고양이가 창출하는 경제효과 2조3000억엔
독신·맞벌이 가구 증가와 고령화 때문에
손 덜 가는 고양이 선호, 사육수 개보다 많아

한일 관계를 설명할 때, 진부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이상의 표현은 없는 듯 합니다. 공감할 부분도, 갈등할 부분도 많다는 뜻이겠지요. 1년간 일본 도쿄에서 연수를 한 중앙일보 정현목 기자,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의기투합했습니다. 국적은 물론, 성별도 연령대도 다른 둘이 양국 사이의 이런저런 이슈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크를 진행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AKB 48, 마스고미(기레기)에 이어 이번에는 고양이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습니다. 일본인에게 고양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정현목(이하 정): 일본연수 중 많은 곳을 여행했는데,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가 와카야마 현의 작은 기차역인 기시(貴志)역이에요. 왠지 아시죠?

나리카와(이하 나): 고양이 역장!

정: 빙고! 거기서 고양이 역장을 만나고 왔지요. 2007년 초대 고양이 역장에 취임한 '타마'에 이은 두번째 고양이 역장 '니타마'.

나: 만나보니 어땠나요?

정: 귀엽기도 하고, 유리방에 갇혀있는 게 불쌍하기도 하고... 아무튼 고양이를 역장으로 세우는 발상이 기발해요.

와카야마현 기시역의 제2대 고양이역장 니타마 [정현목 기자]
나: 저도 예전에 갔었는데, 그 때는 일본 관광객이 많았거든요.

정: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이 훨씬 많아요. 한 해에 고양이 역장 보러 기시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0만명이래요. 고양이 한 마리가 문닫을 뻔 했던 기차역과 지역경제를 살려낸 거죠. 더 대단한 건 뭔지 아세요?

초대 고양이역장 타마의 캐릭터 [정현목 기자]
나: ???

정: 2015년 죽은 타마 역장을 기리는 신사가 역내에 세워졌다는 거.

나: 정말요? 대단하다. 고양이가 신이 됐네. ㅎㅎ

정: 고양이를 역장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죽은 뒤 신사까지 세우다니... 일본인들의 발상이란! 고양이가 일본인이 유독 좋아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와카야마현 기시역의 초대 고양이역장 타마 [정현목 기자]
초대 고양이역장 타마를 기리는 신사가 기시역 내에 세워져 있다. [정현목 기자]
나: 일본인이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타마 역장 때문에 본격적으로 고양이 붐이 일어난 것 같아요. 작년에 처음으로 사육하는 고양이수(953만 마리)가 개(892만 마리)를 넘어섰거든요.

정: 그 정도에요? 한국에선 고양이는 재수없는 동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남아있는데...

나: 한국에 와서 그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특히 그렇게 생각하는 노인들이 많더라고요.

정: 고양이가 흉물이라는 건 미신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선 고양이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대접받던데... 유명한 마네키네코도 있고.

일본에서 행운의 상징인 마네키네코 [중앙포토]
나: 에도시대 사냥을 다녀오던 한 번주가 고양이가 손짓하는 걸 보고 그 절에 들러 휴식을 취했는데 덕분에 폭풍우를 면할 수 있었대요. 감동한 번주가 그 절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고 그 고양이가 죽자 절에서 고양이 사당을 만들어줬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는데, 그게 마네키네코의 유래에요.

정: 일본의 식당이나 가게에 가면 어디에나 마네키네코가 놓여져 있잖아요. 부(富)와 번창의 상징이죠.

나: 헤이안 시대(794~1185년)부터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키웠다네요. 천황도 고양이를 키웠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그만큼 고양이는 일본인에게 친숙한 동물이에요.

정: 그런 전통이 도라에몽, 헬로키티로 이어지고 있군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고양이를 500마리 이상 키웠다는 문학가 오사라기 지로 등 일본문학계에서도 고양이는 많이 사랑받았죠. 고양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고.

지난 7월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 패밀리가든에서 고객들이 도라에몽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 요즘은 고양이용 가구도 나왔어요. 고양이 침대, 고양이 소파가 100만원인데 잘 팔린대요. 펫샵 가면 이 외에도 엄청 고급스러운 상품이 많아요. 고양이 장례식 치르는 사람들이 늘면서 고양이 장례업도 번창하고 있죠. 고양이와 관련된 경제효과가 엄청 크니까, 네코노믹스(고양이란 뜻의 네코ねこ와 Economics의 합성어)란 말도 생겨났잖아요.
헬로키티 인형 [중앙포토]

정: 네코노믹스, 고양이가 창출하는 경제효과가 2조3000억엔 이상이라는 기사를 봤어요. 한국 돈으로는 약 23조 이상이라는 건데,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한국에서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어요. 고양이 붐이 일고 있는 건, 독신자·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고령화 때문이라는 분석이에요.

나: 키울 때 개보다는 손이 덜 가니까. 개처럼 매일 산책시킬 필요가 없고, 따로 교육시키지 않아도 혼자 잘 있으니까 독신자나 맞벌이 부부에게는 체력적·시간적 부담이 개보다 덜해요.

정: 키우는 비용도 개보다 덜 들어요. 그래서 연금으로 생활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노인들에게도 고양이가 부담이 없죠. 일본에 있을 때 일본의 대표 견종인 아키타(秋田)견이 버려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개가 워낙 크니까, 나이 들어 체력적으로 버거운 주인들이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사례가 많다는 거에요.

나: 안타깝네요. 그래서 반려동물로 고양이가 더 선호되는 측면도 있겠네요.

정: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이웃과 트러블이 생기는 집들도 많잖아요. 일본이나 한국이나 아파트 같은 단체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고양이 선호의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죠. 저도 몇년 전에 짖는 소리 때문에 강아지 입양을 포기했던,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답니다.

나: 아이구, 저런...

정: 나중에 짖는 소리 신경 안써도 되는 집에 살게 되면 댕댕이(강아지)들을 많이 키우고 싶어요. ㅎ 그나저나 고양이 카페(네코카페)도 일본에 많던데요. 2005년엔 4군데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500개 이상으로 늘었다네요. 한국에도 고양이 카페가 늘고 있는 추세에요.

나: 기자생활 할 때 네코카페 붐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 가면 언제나 고양이들이 있으니까,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죠.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금고양이 카페 [중앙포토]

정: 근본적인 질문인데, 일본사람은 왜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요?

나: 일본사람 기질에 맞는 동물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일본사람은 간섭하는 거 별로 안좋아해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어느 정도 거리감을 지키려 하죠. 서로 부담스러워서 너무 친하게 지내는 거 별로 안좋아해요. 고양이도 그렇잖아요. 개와 달리 자기 내키는 대로 주인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고, 개처럼 애교 떨지도 않고, 그런 독립적인 모습이 일본사람의 성정(性情)에 맞는 것 같아요.

정: 한마디로 일본사람들은 고양이네요. 고양이. ㅎㅎ 대체로 한국사람들은 충성심 많은 개를 좋아하잖아요. 호불호가 상대적으로 분명한 한국인과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 일본인의 성격 차이가 선호하는 반려동물에서도 나타나는 걸까요?

나: 그러네요. ㅎㅎ 일본에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정: 한국 속담에는 개가 많이 등장하는데 반해, 일본 말에는 고양이가 자주 나와요. 그것도 재미있어요.

나: 예를 들면?

정: 협소한 곳을 말할 때 '猫の額(네코노 히타이, 고양이 이마)'라는 표현을 쓰고, 몹시 바쁠 때 '猫の手も借りたい(네코노테모카리타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라고 하잖아요.

나: 개가 나오는 한국속담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 등등... 저, 잘 알죠? ㅎ 아, 개고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일본사람들도 예전에 개고기를 먹었어요.

정: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나: 일본에서도 개고기를 먹었었는데, 에도 막부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1646~1709)가 이를 금지시켰답니다. 개를 너무 사랑해서 '이누쇼군'(犬將軍)이라 불렸는데, 100마리의 개를 키우기도 했대요. 심지어 백성들에게도 개 사랑을 강요, 악명 높은 '동물 살생금지법'을 만들어 개를 먹는 행위는 물론 괴롭히는 것도 처벌했어요. 닭·거북이·조개와 어류 및 조류(鳥類)도 못먹게 해서 원성이 자자했죠.
개를 워낙 사랑해 '이누쇼군'으로도 불렸던 에도시대 제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

정: 시대를 너무 앞서간 거 아닌가 싶네요. ㅎ 적어도 일본사람들은 우리 보고 개고기 먹는 민족이라고 손가락질 하면 안되겠네요. 일본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느낀 건데, 일본의 길냥이(길고양이)들이 한국 길냥이들에 비해 사람들을 덜 피해다니는 것 같아요.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가만히 있고, 사람들에게 다가와 애교를 떠는 녀석들도 있어요. 미움과 학대를 덜 받아 그런 게 아닐까요?
도쿄 근교의 유명 관광지 에노시마에서 만난 길고양이 [정현목 기자]

나: 한국에서 길냥이 학대 뉴스를 가끔 접하는데, 고양이가 흉물이라는 미신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길냥이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나요.

정: 맞아요.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태어나 기껏해야 3~5년 힘들게 살다가 길 위에서 죽어가는 길냥이들을 동정하거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괴롭히고 학대하는 건 정말 비인간적이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한국의 길고양이 [김하연 사진작가 제공]
나: 일본에서는 이누하(犬派·개파), 네코하(猫派·고양이파)란 말을 자주 쓰거든요. 개를 좋아하느냐, 강아지를 좋아하느냐로 그 사람의 성향까지 분류하는 거죠.

정: 한국에선 그런 말을 잘 쓰지 않아요. 네코하 사람은 고양이랑 성향이 비슷한가요?

나: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네코하는 고독을 좋아하는 거 같긴 해요. 덜 사회적이랄까. ㅎㅎ

정: 나리카와 상은 워낙 사교적인 성격인 걸 보니, 당연히 이누하겠네요. ㅎ

나: ㅎㅎ 저는 확실히 이누하에요. 사람들과 친하게, 살갑게 지내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다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정 상도 아까 얘기하는 걸 보니, 이누하 같은데요?

정: 원래 이누하인데, 언젠가부터 길냥이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어요. 정기적으로 사료를 주는 캣대디는 아니지만, 집 주변 길냥이들이 날씨가 궂은 날 어떻게 지내는지, 끼니는 굶지 않는지 가끔 걱정하는 정도랄까요.

나: 그러다 캣대디가 되는 게 아닐까요? ㅎ

정: 음...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본 문학가 오사라기 지로의 고양이 예찬으로 마무리합시다.
'고양이는 냉담하고 정이 없는 동물로 여겨진다. 그건 고양이의 성질이 너무 정직하기 때문이다. 결단코 고양이는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고독하게 지내면서 강하게 자신을 지켜낸다. 이유없이 아양 떨지도 않으며, 제 멋대로 침묵하기도 한다. 이만큼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동물은 없다. 냉담하면 할수록 아름답다. 지분거리지 않고 그냥 놔두면,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아름다워지고 무언의 애착을 주인에게 보여준다. 이런 침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냥~'(오사라기 지로는 이런 접미어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임의로 붙인 겁니다냥)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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