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린 기술자들]30년 경력 제화공 "최저시급도 못 번다"..한켤레당 7천원 받아

박미주 2018. 8. 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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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계기로 수년간 동결된 임금에 박탈감
31일 코오롱FnC 제화공 100여명 집회 "노동자로 인정해달라"
소사장제 폐지…공임비 인상·4대보험 적용·퇴직금 지급 등 요구
텐디·세라제화·고세제화 등서도 권리 찾기 나서…업계 전반 확산

지난 24일 서울 성수동에서 제화공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하루 14~16시간 일하고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도 안 되는 평균 7000원밖에 못 법니다. 월 200만원 정도 법니다. 이게 경력 30년 이상의 구두 장인들의 월급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10시30분~11시까지 일한다는 제화공 최경호(55)씨는 이렇게 한탄했다. 구두 한 켤레당 공임비를 받는 구조라 빨리 일을 마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점심도 20분 안쪽으로 해치운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의 하청업체 우리수제화에서 일감을 받는 그는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7000원 정도를 받는다. 난이도가 높은 구두를 만들 때는 2시간씩 걸리기도 하지만 1000~2000원만 더 받을 뿐이다. 개인사업자인 '소사장제'로 돼 있어 4대보험이나 퇴직금도 없다. 작업하다 다쳐도 병원비는 개인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최씨는 "20년 전 업주들이 편법을 써서 이렇게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며 "본사에서 인건비를 책정하고 해달라는 대로 작업하는데 내가 사장이라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수년간 동결된 임금을 받은 제화공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임금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고 4대보험에 가입시켜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소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기술자들이지만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00여명의 제화 노동자들이 오는 3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코오롱FnC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코오롱FnC 측에 2012년 이후 동결된 공임비 인상, 4대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소사장제라는 제도를 폐기하고 본인들을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는 것.

제화공들이 이렇게 모인 데는 최저임금 인상이 시발점이 됐다. 최씨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랐는데 우리는 수년째 임금이 동결되면서 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며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제화공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읍소했다. 실제 제화공들은 올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화지부에 가입하기 시작해 총 600여명이 모이게 됐다.

코오롱FnC 하청업체 로씨오에서 일감을 받는 염명호(66)씨도 "경력이 40년 정도 된 기능공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통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고 일하는데 근로시간을 줄여 12시간만 일한다고 했을 때 8500원이 돼야 현재 수준을 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코오롱FnC 측은 "이미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공임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제화공들에게 1000원 인상을 제안했으나 아직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제화공들과 직접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에 임금을 올려주라고 하기 어렵지만 원만히 합의하고 해결하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화공들은 코오롱FnC에서 돈을 지급해야 하청업체에서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문제는 제화 업계 전반에 걸쳐 있다. 지난 4월 텐티 제화공들로부터 권리 찾기 움직임이 촉발돼 성수동으로 번졌고 이후 텐디는 1300원, 세라제화는 1400원, 고세제화는 1500원의 공임비를 각각 인상하기로 했다. 세라제화는 4대보험과 퇴직금을 보장하기로 했고 고세제화는 퇴직연금을 다음 달부터 시행하며 내년 3월 4대보험 관련 단체교섭을 열기로 했다. 금강제화는 사내 고용된 제화공들의 임금을 5.6% 올렸다. 다만 민주노총 소속 600여명의 제화공 중 400여명은 아직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다.

제화공들은 9월7일 미소페(비경통상)와도 단체교섭을 벌일 예정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미소페가 자체적으로 공임비를 기존 5500원에서 1300원 인상한 6800원으로 올렸지만 다시 저렴한 아웃렛용 신발이라는 명목으로 공임비를 500원 깎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김종민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조직차장은 "제화공들은 특수고용직으로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어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대법원에서 제화공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노동자로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체들은 적정한 임금과 4대보험 적용, 퇴직금 보장 등으로 제화공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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