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소득주도 성장은 마중물 붓기, 그런데 정부는 펌프질도 안 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마중물을 붓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것만 부어서는 안 된다. 펌프질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최근 ‘경제 위기설’이 도는 한국경제와 관련,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졸업생 대상 강연에서 “지금 정부는 20여 년간 과거 정부가 얘기했던 안이한 일들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교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이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해 “비교적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소득에서) 소비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이) 말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어 “소득주도 성장은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물에 불과하다”며 “이후 더 많은 물이 나오게 만드는 펌프질을 혁신성장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규제만 완화하면 기업들이 혁신성장을 할 것처럼 (정부가) 얘기하는데 이는 핵심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선 “규제 완화를 하면 기업·경제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제를 단거리 달리기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규제만 풀어서 성장이 잘되면 세상에 성장을 못 할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규제 총량제 같은 (어리석은) 접근을 한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부나 지방정부가 지급하는 일부 계층에 대한 보조금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장 교수는 혁신성장의 핵심을 산업생태계 조성이라고 조언했다. “우리 산업 생태계는 모두 이어져 있고 공생의 관계를 띤다”며 “어느 한 쪽에 치우치기보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노동자와 산업현장에 필요한 실질적 연구 결과물을 내놓는 대학, 이를 연결하는 정부의 역할 등이 모두 필요하다. 혁신정책을 잘 써야 독일이나 스웨덴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촘촘한 그물망을 마련하는 복지 확충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장교수는 “(한국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깰 수 있는 게 복지국가의 획기적 확대”라고 규정했다.
“복지국가를 만들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면 낮은 생산성의 기업이 존재 할 필요가 없다”며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는 복지국가(시스템)를 갖추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가성비 좋은 서비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복지예산을) 20%를 더 쓰려면 세금으로 20%를 그만큼 더 걷어야 한다. 과세율이 55~56%에 달하지만 만족하는 덴마크나 스웨덴 국민 대다수는 정부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이 낮은 파라과이나 마케도니아에 이주민과 기업이 몰리지 않는 이유를 바로 이 가성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도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복지를 늘리자고 하면 다같이 많이 내고 다같이 많이 받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경제 위기의 궁극적 해법으로 복지 확충과 함께 ‘국가 주도적 산업정책’도 꼽았다.
‘자동화와 로봇의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장 교수는 속도조절론도 꺼냈다. 그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혁신적인 (정책이나) 도구의 급속한 도입보다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이는 최근 논란을 불러온 정부의 최저임금 도입을 겨냥한 발언으로도 풀이된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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