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테러단체 소녀의 사랑, 비극적 결말 궁금하다면
[오마이뉴스 구건우 기자]
▲ 애니메이션 영화 <인랑> 포스터 |
ⓒ 일신픽처스/반다이 비주얼 |
이 영화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실사 영화 <붉은 안경>(1986), <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견>(1991)의 뒤를 잇는 '케르베로스' 3부작 중 세 번째에 해당된다. 1998년 10월에 완성된 이 작품은 세계 유수영화제에서 공개됐으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평가상, 포르투갈영화제에서 최우수애니메이션상과 심사위원특별대상을 수상했다.
반정부세력과 경찰조직의 전쟁, 그 속의 개인들
▲ 애니메이션 영화 <인랑>의 스틸 컷. |
ⓒ 일신픽처스/반다이 비주얼 |
영화에서 일본 정부는 도쿄를 중심으로 수도권 지역의 독자적인 권한과 군사력을 보유한 수도권 치안 경찰기구 '수도경'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뛰어난 기동력과 전투력으로 수도권 치안을 독점한 수도경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자치 경찰'은 내부의 첩자를 이용해 수도경의 해체를 꾀한다. 그렇게 조직의 생존을 위한 암투가 펼쳐지고 반정부세력 '섹트'와의 무장 충돌이 극에 달한다.
수도경의 핵심인 특기대 소속 후세 카즈키는 섹트의 폭탄 운반책인 소녀의 자폭을 막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빠지고 만다. 어느날 죽은 소녀의 납골당을 찾은 후세는 소녀의 언니 아마미아 케이와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영화 <인랑>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 작품이지만 각본을 맡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세계관이 뚜렷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권력 집단간의 암투와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정체성 고민을 매 작품마다 심어놓는다. <인랑> 또한 예외가 아니다.
비극적인 결말 암시하는 '빨간 망토' 내레이션까지
▲ 애니메이션 영화 <인랑> 스틸 컷. |
ⓒ 일신픽처스/반다이 비주얼 |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이런 오시이 감독의 세계관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축해 나간다. 빠른 템포와 실감나는 액션 그리고 음모와 반전의 스토리를 수려하게 전개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 보다 눈에 띄는 건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본질일지도 모르는 러브스토리다.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직접 오시이 마모루에게 각본에 러브 스토리를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인랑>은 동화 '빨간 망토'의 잔혹한 버전을 원용해 변주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를 증명하듯, 극중에서 아마미아는 직접 후세에게 '빨간 망토' 동화책을 선물하고 그 내용을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조직을 위해 '늑대'로 길러진 후세와 조직에 이용 당하고 있는 '빨간 망토' 아마미아는 두 사람 모두 본인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이다. 아마미아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이들의 안타까운 운명을 암시하며 잊을 수 없는 결말로 안내한다.
영화의 또 하나의 무기는 훌륭하게 구현된 시각적, 심리적 리얼리티다. 영화의 프레임은 실사 영화 카메라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른다. 클로즈업과 시점샷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미 영화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었던 촬영 기법이 고스란히 녹여 실사 영화의 표현력에 근접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애니메이션만 구사할 수 있는 색조와 작화를 통해 실사 영화 이상의 시각적 리얼리티를 구현하기도 한다. 특히 어두운 지하 공간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에서 총탄이 물살을 가르고 상대의 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장면은 실사 이상의 사실감을 전달하고 있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시각적인 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색적인 대사, 절제된 표정과 동작을 통해 심리적 리얼리티를 극대화 하며 실사 영화와 다른 사실감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고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아픈 영혼들의 심정을 세밀하게 표현나가며 긴 여운을 남긴다. 당신이 아직 애니메이션 <인랑>을 보지 못했다면, 실사 영화 <인랑> 개봉 이전에 볼 것을 추천한다. 원작과 비교해보는 것도 김지운 판 <인랑>을 더 재밌게 즐기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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