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의 스타트업 스토리]국민소득 7만불 노르웨이의 '스타트업 익스트림'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에도 스타트업이 있을까. 답은 "있다"다. 이노베이션노르웨이의 초청으로 지난달 중순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Bergen)에서 열린 '스타트업 익스트림(Startup Extreme) 2018'에 다녀왔다. 노르웨이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 2015년 시작된 민간 콘퍼런스다.
스타트업 익스트림은 이런 배경에서 2015년 처음 열렸다. 노르웨이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민간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유럽에는 이미 유명한 스타트업 축제가 많이 있다. 핀란드에서 열리는 '슬러쉬'나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 등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익스트림이 다른 행사와 차별화한 부분은 '익스트림’이다.
콘퍼런스는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에서 하루만 열고 나머지 1.5일은 베르겐으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도시 보스(Voss)에서 진행된다. 이곳에선 텐트에서 스타트업들이 발표하는 데모 데이(demo day)를 하고, 반나절 동안 스카이 다이빙·패러글라이딩·마운틴 바이크·스탠드업 패들(SUP)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며 친목을 다진다. 약 300명 규모의 작은 콘퍼런스라 서로 스포츠를 즐기며 다른 어느 행사보다 참가자들과 더 친숙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도 로프에 매달려서 나무 사이와 계곡을 누비는 집 라이닝을 즐기며 다양한 참가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행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스웨덴처럼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스타트업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누구나 알만큼 성장한 스타트업이 많지는 않다는 뜻이다. 다만, 전 세계 7000만 명이 넘는 학생과 교사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Q&A 교육 도구인 카후트(Kahoot)를 많이 언급했다.
그런데 이번 콘퍼런스 행사를 통해 접한 노르웨이 스타트업들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노르웨이 현지 환경에 맞는 창업과 젊은이들 못지않게 장년층 창업자들이 많은 점도 인상적이었다. 세계 최대의 연어 산업과 석유 시추 산업이 발달한 베르겐은 인구 25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의외로 좋은 스타트업이 많이 있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해양기술 전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해치(Hatch)'도 있었다. 콘퍼런스 피칭 대회에서 우승한 팀은 '시푸드 포털'로 수산물회사 출신 40~50대 중년 남성들이 창업한 회사였다.
'씽크아웃사이드(Think Outside)'라는 팀은 석유시추기술을 응용해 산에서 눈사태 예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스키어들의 스키에 사물인터넷 센서를 장착해서 날씨 데이터와 연동해 눈이 약하게 쌓인 지대를 일찍 감지해 경보를 보내준다는 것이다.
내가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 화상 회의를 할 때 애용하는 어피어인(Appear.in)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이 서비스를 만든 스타트업 창업자를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나 놀라기도 했다. 이 좋은 제품을 노르웨이 회사가 만든 줄은 몰랐었다.
한편 노르웨이 북쪽에 위치한 제3의 도시 트론헤임 출신의 뛰어난 하드웨어 스타트업들도 많았다. 알고 보니 트론헤임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명문 과학기술대 NTNU가 위치한 영향이었다. 드론을 자율비행 시켜서 석유 시추선의 내부 검사를 자동으로 수행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버서(Versor)', 고화질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헤드셋을 만든 '무비마스크(Moviemask)', 액션카메라를 줄에 매달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와이랄(Wiral)' 같은 회사들이 NTNU 출신들이 창업한 인상적인 회사들이었다.
또 어떤 투자자는 "노르웨이에서는 아직도 돈을 벌려면 아파트·빌딩 등 부동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스타트업에 큰돈을 투자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운영자 션은 "노르웨이 창업자에게는 워낙 정부 지원이 많고 또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성공하겠다는 '절실함’이 떨어진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인건비가 워낙 비싸서 현지에서 개발자를 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많은 노르웨이 스타트업들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서 개발자를 원격으로 아웃소싱해서 이용한다.
어쨌든 노르웨이가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신성장 산업을 지원·육성하는 정부 기관인 '이노베이션 노르웨이'의 초기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은 한국 정부의 창업 지원 못지않게 파격적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있어서 놀랐을 정도다. 노르웨이는 부국이긴 하지만 인구수로 보면 한국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시장이다. 게다가 다른 노르딕국가 인구를 다 합쳐도 3000만명이 안 되기 때문에 스케일업을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 절실하다.
스타트업 익스트림에서 내가 만난 스타트업 중 과연 5년 안에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는 곳이 얼마나 나올지, 노르웨이가 스웨덴처럼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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