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JP의 121자 묘비명

박정호 2018. 6. 29.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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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묘비명 미리 써놓는 건 동양의 오랜 전통
'자기 허물을 돌아보라'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해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흔히 공자님 말씀이라고 한다. 너무 당연해 듣기에 거북하지만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 그런 공자가 이상형으로 꼽은 이가 있다. 거백옥(蘧伯玉)이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보다 20~30년 앞서 살다가 갔다. 군자의 뜻을 이룬 선생님이라는 뜻에서 후세 사람들이 ‘성자(成子)’라는 별칭도 붙였다. 중국 고전 중 하나인 『회남자(淮南子)』에 거백옥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거백옥은) 나이 50을 살았지만, 지난 49년이 헛된 것 같았다’(年五十, 而有四十九年非)고 썼다. 요즘 나이 쉰은 팔팔한 청춘이지만 2500여 년 전에는 파파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갑자기 거백옥을 꺼내 든 건 그제 영면에 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때문이다. JP는 알려진 대로 미리 죽음에 대비했다. 아내 박영숙 여사가 세상을 떠난 3년 전에 자신의 묘비명 121자를 써두었다. 그 중 ‘아흔 살을 살았지만 지난 89년이 헛됨을 알았다’(年九十, 而知八十九非)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거백옥을 패러디한 말이다. 동서양 고전에 해박한 JP의 면모를 보여준다. 평생을 2인자로 살아간 거물 정치인의 회한일 수도 있겠다.

JP의 묘비명은 동양고전 모음집 같다. 첫머리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공자가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고, 이어지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은 『맹자』의 핵심 가르침이요, 마지막 ‘소이부답’(笑而不答·웃으며 답하지 않는다)은 술과 달의 시인 이태백의 시구에 나온다. 한문학자 심경호 고려대 교수는 “공자나 맹자는 기본 중 기본이지만 JP가 거백옥까지 인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자기 묘비명을 준비하는 건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옛 선비들은 죽음에 대처하는 한 방식으로 지난 행적을 돌아보는 글을 심심찮게 남겼다. 이른바 자찬(自撰)묘비명이다. 서양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처럼 생과 사를 동전의 앞뒷면으로 여겼고, 후학들에게 경계의 대상으로 삼게 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열도 자연스럽게 내비쳤다.

일례로 다산(茶山) 정약용은 두 가지 버전의 자찬묘비명을 남겼다. 묘 안에 넣으려고 쓴 ‘광중본’(壙中本)과 문집에 실을 요량으로 보다 길게 적은 ‘집중본’(集中本)이다. 18년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 마재(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돌아온 다산은 1822년 회갑을 맞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가 기세를 폈지만 하늘은 그로써 너를 곱게 다듬었다’라고 적었다. 주변 정상배(政商輩)의 공격마저 스스로를 가다듬는 채찍으로 삼은 다산의 품격이 드러난다.

다산도 젊어서 거백옥을 흠모한 모양이다. ‘거백옥은 49세에 잘못을 알았지만 나는 10년 더 젊으니 더욱 바랄 수가 있네. 이제부터 힘써 큰 허물을 없게 하리’라는 시를 남겼다. 자기반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실천하는 유학자의 진면목이다. 자찬묘비명에서도 ‘죄를 짓고 후회하면서 보낸 세월이다. 모든 잘못을 거두어 매듭짓겠다’고 했다. 다산은 묘비명을 써놓고도 14년을 더 살았으니 그간의 얼마나 많은 자성(自省)을 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심경호 교수가 올봄에 낸 『내면기행』에는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옛사람들의 자찬묘비명 58편이 소개된다. 결국 남는 것은 흙일 뿐이라도 자신의 본모습, 조화로운 세상에 다가서려는 선인의 뜻이 담겨 있다. JP의 묘비명도 그런 오랜 전통에서 나왔을 것이다. 문자향(文字香)이 사라진 이 시대 정치와 대비된다. 그렇다고 이를 슬퍼할 생각은 없다. ‘공자왈 맹자왈’ 고전 취향이 그리운 건 더욱 아니다. 단 하나, 자기 과오를 늘 헤아리는 마음가짐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요즘 나락에 빠진 보수도, 기세등등한 진보만의 문제가 아닐 터다. 산업화·민주화 시대의 공과를 두루 남긴 JP를 넘어서는 길도 그곳에 있을 게 분명하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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