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조이지만 돌아가도 또 할 것" 채용 비리 내부고발 그 후

최은경 2018. 5.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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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시설관리공단 사건 제보자 김씨
노조 만들고 비리 제보 후 해고 당해
정신과 약 먹으며 강원도에서 막노동
같은 직장서 일하던 부인도 위협 느껴
"진실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
공단, "김씨 해고는 합당하다"

울주군시설관리공단 채용 비리는 어떻게 밝혀졌나
울산 울주군시설관리공단에서 노조를 만들고 채용 비리 관련 제보를 한 뒤 해고된 김모씨. 최은경 기자
“그냥 남들처럼 눈 감고 넘어갈 걸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비굴하게 살고 싶진 않으니까요.”

울주군시설관리공단(이하 공단) 채용 비리 사건의 제보자 중 한 명인 김모(37)씨가 울컥하며 가슴을 두드리다 곧 냉정함을 되찾았다. 이 공단은 울산 울주군의 체육·복지 시설 등을 운영·관리하는 공기업이다.

울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일 2012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공단 직원 15명의 부정 채용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신장열 울주군수, 전 공단 이사장, 청탁자 등 8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최초 제보자에게 비리 정황을 듣고 내사를 거쳐 수사하던 중 김씨 등 여러 제보자를 확보했다. 채용을 청탁한 이들은 신 군수의 친인척, 울산시청·울주군청 고위 공무원들, 사회 봉사단체장 등이다.
1일 정인만 울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이 울주군시설관리공단 면접 과정에서 위조된 채점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울주군수 포함 8명 기소 의견 송치

이튿날 울산시민연대 등 5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신 군수를 포함한 채용 비리 피의자들은 즉각 물러나고 공단의 채용 비리를 제보했다가 해임된 노조위원장을 즉시 복직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기서 말하는 노조위원장이 김씨다. 그는 2016년 12월 1일 울주군시설관리공단 정규직 체육 6급으로 입사해 공단 산하 한 체육시설에서 일했다. 김씨는 이듬해 10월 체육강사 등의 근무조건을 개선해달라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앞서 8월에는 수상안전요원(무기계약직) 채용과 관련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울산시민연대, 울산인권운동연대 등 시민단체가 2일 울산시 울주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주군시설관리공단 채용 비리 피의자들은 즉각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면접 전부터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며 면접일 저녁 인사담당자, 감사과장, 노사협의회위원장 등이 합격자가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축구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하는 특정 피면접인(추후 합격자)과 술자리를 가졌다’를 골자로 한 내용이었다. 이 건은 경찰 수사에서 채용 비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같은 해 10월 김씨가 청렴신문고에 제보한 채용 비리 의혹 인물 중 70% 정도가 실제 지역 인사들의 청탁으로 입사한 것이 드러났다. 김씨는 “입사 1년도 안 된 제가 알 만큼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된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공단은 지난 1월 ‘안전근무 등 지시사항 불이행’ 등을 이유로 김씨를 해고했다. 하지만 김씨는 “안전근무는 체육관리직 업무가 아니다”라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의 부인(36)은 지난해 9월까지 같은 시설에서 근무하다 공단 산하 다른 문화관광시설로 발령 났다. 부인은 체육시설에서 일한 2014·2015년 성추행을 당했다며 가해자로 지목한 당시 시설장을 지난해 12월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현재 휴직 중이다. 부인은 “남편이 해고된 뒤 갑자기 감사를 받거나 물건이 없어지는 등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채용비리에 성폭력 사건까지

지난해 8월 결혼한 부부는 회사와 대립하는 동안 뱃속 아이를 잃었다. 부인은 “처음에는 남편에게 회사에 맞서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은 진실을 밝히자고 서로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를 경찰 수사결과가 나온 1일 울산의 한 공원에서 만났다.
김씨는 "평생 체육만 하며 살았다. 노조에 관해 알지도 못했다"며 "하지만 방만한 공기업 운영을 보니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필요할 것 같아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Q : 해고 뒤 어떻게 생활하나.
A : 한 달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심장이 조여와 약을 먹고 있다. 경주·김해·강원도 등지에서 막노동한다. 평생 운동만 하며 건강하게 살았는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말할 수 없이 억울하다.

Q : 채용 비리 외에도 예산 낭비, 시설장 갑질 등과 관련해 18차례 신고 혹은 제보를 했다. 왜 이렇게 했나.
A : 17년 경력 체육직으로 입사했다. 부산·함안·통영의 공기업에서도 일했지만 이렇게까지 방만하게 운영한 곳은 없었다. 경험을 살려 제안을 하면 하나도 듣지 않았다. 노조 만들 때도 찍힌다며 못하게 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4급 관리자들이 시설장 같은 요직에 앉아 직원들의 수당 등을 쥐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다. 회사에 뭘 제안해도 전혀 들어주지 않으니 제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근무복 구입 관련 예산 낭비 사례를 국민신문고에 넣어 기획재정부에서 우수 사례로 포상금도 받았다.

Q : 채용 비리 제보가 알려진 뒤 반응은.
A : 제보자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더라. 회사가 전자문서를 못 보게 권한을 막았다. 또 저를 알지도 못하는 직원 16명을 포함해 38명에게 저와 일하기 싫다는 탄원서를 내게 했다. 요즘은 아내와 내가 별거 중이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헛소문이 돈다더라. 지난 2월 시민단체들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강요로 노조에 억지로 가입했다’고 주장한 직원이 경찰 수사결과가 나온 뒤 전화해 ‘회사에서 시켜 거짓말했다’고 고백했다.
울주군시설관리공단 전경. [뉴스1]

Q : 제일 힘든 점은.
A : 문제점을 개선하려 노조를 만든 건데 내가 어깨에 힘주고 호의호식하려고 그런다는 식으로 회사가 꾸며낸 게 정말…. 아내 고향이 울산이라 아는 사람이 많다. ‘결혼하더니 신랑 잘렸다더라’는 얘기 듣고 다니는 게 마음 아프다. 일부 공단 직원들은 명예훼손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Q : 경찰 수사결과가 나왔는데.
A : 속 시원하진 않다. 검찰·법원 거치면서 결국 빠져나갈 사람 다 빠져나가지 않겠나. 내 복직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공기업이 제대로 운영되면 좋겠다. 노조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최소한의 견제장치라도 있어야겠다 싶어 만든 거다. 권력을 쥔 한 두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노조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공론화라도 했지만 겁이 나 억울해도 그냥 다니는 사람들, 영문도 모르고 불합격한 사람들, 잘린 사람들이 정말 많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갈 거다.
김씨는 공단을 상대로 해고 무효 소송을 하고 있다. 오는 10일에는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조 관련 부당 노동 행위 여부를 결정한다. 공단 측은 “김씨의 해고는 합당하며 직원들에게 탄원서를 강요한 적이 없다. 공단 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채용 비리 경찰 수사결과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조치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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