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서 부치는 편지]내 이름은 널문리야!

정완주 2018. 4. 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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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내 원래 이름은 널문리야. 강을 건너기 위해 널빤지다리가 놓였던 탓이라고 들었어.

조선 어느 왕이 강을 건너지 못하자 주민들이 널빤지 대문을 이어서 다리를 놓아 유래됐다고도 하고. 혹자는 널빤지 대문이 많아서 널문으로 작명했다는 이야기도 해.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널문다리가 놓인 것만은 사실이야.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서 내 이름이 개성부 판문평(板門平)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은 몰랐을 거다. 아닌가? 후대에서 판문점으로 개명한 것을 보니 무관하지는 않아 보여.

널문을 한자로 쓰면 ‘판문’이니 실록의 저작권을 주장할 일은 아니겠지. 개명 당시 이름 없는 주막이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니 주막을 뜻하는 ‘점(店)’을 붙여서 쓴 것일 게야.

내 주소는 두 개야. 내가 누운 곳을 중심으로 남쪽에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의 주소를 써. 북쪽 주소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이지. 편지를 부칠 일이 있으면 아무 주소나 상관이 없기는 해. 아니면 둘 다 쓰든가.

내 이름이 바뀐 지도 어느새 65년이 흘렀어. 그동안 내가 온갖 수난을 겪은 것도 사실이야. 나무를 베야 할 도끼로 사람을 쳐 죽이질 않나, 서로 총질을 하질 않나…. 그동안 아주 피곤한 일도 많았지.

언젠가는 어여쁜 남쪽 여학생이 북에서 남으로 유유히 걸어서 넘어 오데. 그리고는 바로 감옥살이를 살아야 했다고 들었어. 걷는 일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그 때 처음 알았지.

난 외진 이 곳에서 콩밭을 매는데 열중했어. 그러던 어느 날 주막이 사라지고 군인들이 천막을 치고 들어왔더라고. 그 당시에는 전혀 상상을 못했어. 내가 살던 곳을 중심으로 금줄을 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질지 말이야.

예전의 널빤지다리는 지금 없어. 군인들이 금줄을 칠 때 후다닥 다리가 하나 놓이긴 했지. 웃기는 건 남쪽에서 떼로 넘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는 보기 어려웠다는 점이야.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고 부르긴 하더라. 다리라는 게 오가기 위해서 만든 건데 말이지.

또 황당한 건 그 멀쩡한 다리는 놔두고 또 다른 다리가 생기더라고. 도끼로 난동을 부린 날 이후 이전 다리는 아무도 사용을 하지 않고 대신 사흘 만에 뚝딱 다리가 놓이데. 그래서 ‘72시간 다리’라고 하더라. 부실 공사는 아닌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 지프차를 타고 북에서 누가 급하게 넘어올 때 보니 그런대로 튼튼하긴 하더라. 근데 지프차를 몰고 온 놈이 후다닥 내린 다음 냅다 남쪽으로 뛰어가니까 또 총탄이 난무하더라고. 정말 이상한 놈들이야. 누가 나타나기만 하면 원수처럼 총질을 해대니….

오늘도 난리가 나기는 했지. 도끼가 날아다니고 총알이 빗발치는 일은 아니었지만. 좀 높아 보이는 사람 둘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였어. 장엄한 연주곡도 들리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중요한 행사인가 보다 싶었지.

의외인 것은 사람들 면면을 보니 엄숙하면서도 감격스러운 표정을 저마다 짓더란 말이야. 거 참 별일이다. 사람들끼리 만나서 악수하는 일이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무슨 문턱 같은 곳을 점잖은 어른 둘이 넘나드는 놀이도 하던데 그게 그렇게 감격스러운 건가 모르겠어.

오늘도 날씨 한번 흐드러지게 화창하더라. 따뜻한 봄볕에 나른한 오수를 즐기려다가 불현 듯 예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떠올랐어. 제목이 뭐더라. ‘공동경비구역’ 어쩌구 뒤에 영어도 붙은 영화로 기억해.

하여간 내가 사는 곳을 내세워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듣긴 했어. 물론 내 허락 따위는 받지 않았지만. 복장이 서로 다른 젊은 병사들이 ‘형님’ ‘동생’하면서 사이좋게 빵도 나눠먹더니 마지막에는 또 서로 총질을 하더라. 심심하면 여기서 총질을 해대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어.

그래도 영화 마지막 장면은 꽤 괜찮지. 주인공 4명의 병사가 절묘하게 사진이 찍힌 장면이었어. 그리고 그 장면 위로 노래가 흘러갔지. 제목이 ‘부치지 않은 편지’라고 하더라. 곡도 좋았지만 가사가 일품이었어.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는 화약 냄새가 지워지는 것 같기는 해. 뭔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곳의 비극이나 아픔을 떠나보내자고 노래하는 것 같단 말이야. 이제는 뒤돌아보지 말고 훠이훠이 잘 가라고 사람들이 떼창을 부르는 듯 해.

난 참 이 노래가 좋아. 빨리 어두운 기억들을 떠나보내야 내가 좀 조용하게 살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대들도 한 번 불러봐.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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