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여자

2018. 3. 28. 16: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 NEW ROLE MODEL

예쁘다' 보다 '스타일 좋다' '분위기 있다'는 말이 더 좋다면? 당신도 어른 여자

어릴 땐 서른 살쯤 되면 다 갖추고 살 줄 알았다. 호화롭진 않아도 깔끔한 오피스텔에서의 싱글 라이프, 여유롭게 자가용을 몰며 가끔 바쁜 일정에 쫓겨 불현듯 불법 유턴을 서슴지 않는(드라마 속 필수 장면) 당당함을 갖춘 커리어 우먼 말이다. 잘 다려진 정장에 절대 무너지지 않는 헤어와 메이크업. 하이힐을 신고 ‘파워 워킹’을 하며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서른 하고도 중반이 된 지금, 어린 소녀의 로망은 그야말로 판타지라는 걸 깨닫는다. 복장 제한이 없는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 덕에 편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끔 평일 낮, 광화문이나 여의도 같은 사무실 밀집 지역에 외근을 나가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직장인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에 꼭 맞는 수트와 신발은 분명 불편하겠지만 <호텔 VIP에게는 특별함이 있다>의 저자 오현석은 ‘옷을 잘 입어야 격이 올라간다. 몸에 꼭 맞는 옷은 불편할 수 있지만 원래 정장이란 불편해서 행동을 절제하게 만든 옷’이라며 호텔리어와 비즈니스맨들이 정장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시 꿈꾸는 어른 여자의 로망

사회생활 10년 남짓, 30대 중반 싱글이라는 사회적 위치의 나는 지금에서야 커리어 우먼, 즉 어른 여자의 로망을 다시 그리고 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인 20대 후반~30대 초반, 당시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는 ‘프렌치 시크’ ‘에포트리스 시크’였다. 이자벨 마랑으로 대표되는 이 스타일은 느슨하고 편안하고 낡은 듯하지만 세련됨을 표방한다. 애쓸수록, 정돈될수록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때다. 당연히 헤어와 메이크업도 뒤따랐다. 머리는 빗질도 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메이크업은 최소한만.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스타일도 점점 싫증났다.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여기엔 셀린,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비 파일로가 이끄는 셀린’의 흥행이 한몫했다. 피비가 셀린에 조인한 2009년 이후 동시대의 모든 여자들이 셀린을 사랑해 왔지만 내 경우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 도통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 르메르, 더 로우, 드리스 반 노튼, 질 샌더…. 내가 꿈꾸는 우아하고 지적인 현대 여성상을 완성해 주는 브랜드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물론 돈도 없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때가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몇 해 전, 빅 세일로 일단 질렀으나 영 남의 옷 같아 옷장에 잠들어 있던 버버리의 벨티드 코트를 꺼내 입었더니 그럴싸한 게 아닌가. 드세 보일 것 같아 연하게 그리던 눈썹도 각을 잡아 볼드하게 그렸더니 인상이 훨씬 또렷하고 야무져 보였다. 주로 펜슬 타입으로 스머지해 부드럽게 연출했던 아이라인도 붓펜 타입으로 눈꼬리를 올려 그리는 편이 훨씬 어울려 보였다.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숍을 찾아 메이크업을 받는 이들의 공통된 요구가 있어요. 20대는 눈꼬리를 내려 그려 순한 강아지 상으로 연출해 달라는 반면, 30대 이상은 무조건 눈꼬리를 올려 그려달라고 하죠.” 점점 높아져가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과는 반대로 노화로 인해 축 처져 가는 눈매를 보완하고 싶은 맘이리라. 같은 이유로, ‘에포트리스 시크’라 여겼던 내추럴리즘도 더 이상 시크해 보이지 않는다. 맨 얼굴과 부스스한 헤어는 그저 피곤해 보이고, 편안한 소재와 실루엣의 옷은 초라해보일 뿐. 젊음의 생기 없는 ‘에포트리스’는 ‘스타일리스’였던 거다. 비단 이 과정은 나만 겪은 것이 아닐 거다.

어른 여자의 본보기, 고혜란

이상하리만큼 온 나라가 동안에 집착하던 때가 불과 6~7년 전이다. 어려 보이기 위해 얼굴을 통통하게 만들고, 이마를 볼록 채우고, 물광 피부에 열광하고, 억지로 앞머리를 만들었다. 외모는 여자들의 가치관과 애티튜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21세기의 우리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일도 열심히 잘하고, 심지어 살림과 육아까지 해내는 슈퍼우먼인데 어려 보이는 데다 늘 상냥하고 친절하기까지 해야 한다니. 많은 여자들이 지쳐갈 때쯤 ‘센언니’ 캐릭터가 등장했다. 2016년 방영한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주인공 전도연만큼 여성 팬 사이에서 호응을 얻은 건 로펌 대표로 분한 김서형의 스타일이었다. 유능하지만 냉정한 ‘차도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그녀는 마침내 <아내의 유혹> 속 악녀 신애리를 벗고 30~40대 여성의 ‘내 마음속 롤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질투의 화신>에서 막말을 서슴지 않는 걸 크러시 아나운서 서지혜 역시 비슷한 케이스. 영화 <미스 슬로운>의 제시카 차스테인은 또 어떤가? 피도 눈물도 없는 로비스트 슬로운은 성격만큼 한 치의 오차 없는 ‘칼단발’과 수트 스타일링으로 열연을 펼쳐 할리우드에서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드라마 <미스티>로 컴백한 김남주가 연기하는 고혜란이 대한민국 워킹 걸을 자극하고 있다. 최고의 앵커 고혜란은 성공한 여자, 아름다운 여자, 모든 걸 가진 여자, 그래서 닮고 싶은 여자로 설명된다. 외모도 커리어도 뭐 하나 타협이란 게 없어 보이고, 그저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부당함 앞에 ‘핵사이다’ 멘트를 날리는 고혜란은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25세부터 꺾인다는 의미)라는 구시대적 표현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등장한 아라사(Around Thirty; 30대 전후의 여성을 이르는 일본어)와 아라호(Around Forty; 40대 전후의 여성)를 롤 모델로 삼기 시작한 거다.

영화 <미스 슬로운>과 드라마 <굿와이프> <미스티> 속 여주인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보단, 당당한 애티튜드와 내면의 캐릭터가 더 큰 지지를 받았다. 피비 파일로와 빅토리아 베컴은 현실의 좋은 예.

남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화장

한국의 김남주든, 미국의 제시카 차스테인이든 기본 전제는 그들이 예쁘고 날씬하다는 거다. 언제나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빈틈없는 꾸밈새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지지를 보내는 건 그들의 모습에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그로 인해 자신감을 얻고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비춰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해 옷을 입고, 원하는 걸 입으세요. 전 남을 위해 차려입는 과정에서 무력화되거나 성적 대상화된 여자들의 이미지를 수없이 봐왔습니다. 셀린을 입었을 때 용감하고 안심할 수 있으며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된 거죠.” 과거 한 인터뷰에서 피비가 한 말 그대로다. 우리가 메이크업을 하는 이유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브랜드의 새로운 뮤즈로 크리스탈을 기용하며 변신을 꾀한 클리오의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반응이 좋다. “누구나 쉽게 프로페셔널한 룩을 연출할 수 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자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여성상이 잘 드러났고, 25~35세 고객층에게 어필한 것 같아요. 크리스탈이 갖고 있는 세련된 이미지와 똑단발, 립 포인트 메이크업이 잘 맞아떨어졌죠.” 클리오 홍보담당자 우혜원의 설명. 이쯤 되면 고혜란의 메이크업 비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남주의 메이크업을 전담하고 있는 순수 수경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맨 처음 4회까지 대본을 읽고 캐릭터 연구에 들어갔어요. 김남주의 기존 이미지는 도시적이고 세련됐음에도, 한동안 코믹스러운 역을 맡은 탓에 이미지를 되찾으려면 메이크업이 중요했거든요. 카리스마 있는 앵커에 맞게 이목구비를 강조하되 아이와 립에 붉은 퍼플 계열을 사용, 내면의 슬픈 면모를 표현했죠.” 덕분에 강단 있는 앵커와 원숙한 여성 두 가지 면 모두를 드러낼 수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은 블러셔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핑크, 코럴 등의 블러셔로 어리고 예뻐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대신 한 톤 어두운 파운데이션으로 컨투어링만 했죠.”

지금까지 ‘어른 여자의 미’를 요약해 보면 대략 이렇다. 잘 정돈된 헤어와 메이크업, 세련된 패션은 옵션이요, 어디 가서 기죽지 않는 ‘센캐’는 기본 전제다. 어른 여자가 매력적인 건 어릴 때 어울리지 않는 옷도 입어보고, 화장도 해보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무엇이 내게 가장 잘 맞는지 아는 노련함 덕분이다. 드라마와 영화 속 배우처럼 풀 착장으로 꾸미는 건 어디까지나 판타지다. 내 사회적 위치에서,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단순히 ‘예쁘다’는 말보다 ‘스타일 좋다’ ‘분위기 있다’는 칭찬이 더 맘에 든다면 당신도, 어른 여자다.

똑부러지는 인상을 위한 백스테이지 프로 올-인 브로우 3D, 001 브라운, 8만 5천원대, Dior.<미스티>에서 김남주가 실제로 바른 제품. 더 루즈, RO650, RD456, 각 4만3천원, Decorte.

블러셔보단 셰이딩을. 엑스퍼트 블랜딩 쉐이드, 2만 1천원, VDL.

올 아워 파운데이션, B20, 7만 9천원대, YSL.

깊은 눈매를 연출하는 컬러들. 아이 글로우 젬, GD082, BE386, PU180, 각 3만2천원, Decorte.

김남주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순수 수경 원장은 완벽한 피부 표현을 위해 스킨케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가 추천한 AQ 밀리오리티 리페어 에멀젼, 39만원, Decorte.

퍼플 톤이 가미된 벽돌색 립은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에 딱. 퓨어 컬러 엔비 매트 립스틱, 211 얼루프, 4만원대, Estee Lauder.

에디터 김미구

사진 COURTESY OF IMAXtree.com, GETTYIMAGESKOREA, JTBC, tvN, 전성곤

디자인 전근영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엘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