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길고양이와 주민 공생위해 1년 간 쓴 돈만 2000만원

박진호 2018. 1. 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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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야마 타츠야씨 '캣대디'된 사연
밤마다 우는 고양이 소리, 쓰레기봉투 뜯는 모습 목격하고 급식소 설치
TNR 통해 길고양이와 주민들 공생 효과 거둬 시스템화 될 때까지 노력
몸이 아픈 길고양이와 외국에서 입양한 고양이 12마리를 키우고 있는 이시야마 타츠야(31)씨. 박진호 기자
아픈 길고양이 병원비 1000만원, 중성화를 위한 검사 및 수술비 500만원, 사료비 300만원. 길고양이와 마을 주민 간 공생을 위해 일본인 이시야마 타츠야(31·石山達也)씨가 지난 1년간 쓴 돈이다. 영양제 구매 등까지 합치면 2000만원 정도 된다. 이시야마씨가 ‘캣대디’가 된 사연은 이렇다.

뉴질랜드·스위스·캐나다 등을 돌며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했던 이시야마씨는 5년 전인 2013년 연습 도중 머리 등을 다쳐 은퇴했다. 같은 해 어머니의 나라이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사는 서울에 정착했다. 하지만 복잡한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2016년 8월 어머니가 사는 강원도 춘천시 사농동의 조용한 마을로 이사를 왔다.

이시야마씨는 “뉴질랜드 등 외국에서 생활했던 선수 시절에도 도시보다는 주로 조용한 마을에 살았다”며 “인근에 어머니가 살고 있고 마을 분위기도 조용해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시야마씨의 어머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문제와 건강 악화 등으로 2012년 한국으로 나왔다. 현재 이시야마씨가 사는 아파트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시야마씨의 고향은 일본 동북부 서쪽에 위치한 야마가타현 히가시네시(山形縣 東根市)로 인구 5만명이 넘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다. 현재 아버지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강이 보이는 좋은 전망 아파트에 집을 구한 이시야마씨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침이면 고양이가 뜯어 놓은 쓰레기봉투를 치우는 경비원, 밤이면 우는 고양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주민들을 보게 됐다.
일본인 이시야마 타츠야(31)씨가 강원도 춘천시 사농동 농수산물 도매센터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 박진호 기자
이시야마씨는 “이대로 방치하면 고양이 개체 수가 늘어날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고통은 커질 게 뻔한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며 “그래서 직접 ‘TNR’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TNR’은 포획(Trap), 중성화수술(Neuter), 방사 (Return)의 약자다.

이시야마씨는 지난해 2월부터 마을 주변에 사는 고양이 개체 수 파악을 위해 아파트와 맞닿아 있는 농수산물 도매센터에서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변에 4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사는 것도 파악했다. 밤마다 우는 고양이를 중심으로 11마리를 잡아 중성화 수술도 했다. 이 중 몸이 아픈 고양이는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한 뒤 키우고 있다.

이시야마씨는 “신장에 문제가 있어 평생 관리가 필요한 고양이를 비롯해 5마리를 맡아 키우고 있다”며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 중 4마리는 다른 집에 입양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농동 캣맘 모임’도 생겼다. 5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이들은 하루 2차례씩 사료를 제공한다. 지난 23일 아파트에서 만난 한 경비원은 “과거엔 고양이들이 배가 고픈지 쓰레기봉투를 뜯어 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눈을 피해 강원도 춘천시 사농동 농수산물 도매센터에 있는 평상 아래로 들어간 길고양이들. 박진호 기자
이시야마씨는 올해 초 농수산물 도매센터 주차장 인근에 고양이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집도 만들어 놨다. 하지만 도매센터 측이 반대하면서 현재 갈등을 빚고 있다.

이시야마씨는 “일본의 경우 마을 주민들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양이가 있어 쥐나 바퀴벌레 등 해충 번식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심지어 마을에 TNR 버스가 오면 주민들이 자신이 보살피는 길고양이를 데리고 가 중성화 수술을 받게 한다”고 말했다.

이시야마씨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부터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현재 마을 주변 고양이 개체 수는 10마리가량으로 추정된다.

이시야마씨는 “그동안 캣맘들은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이 싫어 숨어서 몰래 밥 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방식이 효과를 거둬 시스템화되면 벤치마킹하는 곳이 생기고 마을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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