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빵 놀이'에 빠진 청춘들..교도소 체험 북적인다

최규진 2018. 1. 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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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교도소 촬영 세트장 방문 줄이어
감방 소재 TV프로그램 유행따라 교도소 체험
"남들이 못하는 체험하려는 '전시효과' 영향"

‘어두웠던 지난 시간, 밝은 내일로 빛나리라’

회색빛 콘크리트 담장이 우뚝 솟은 건물. 커다란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벽면 가득 쓰인 격언이 보였다. 눈 쌓인 운동장에는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 뒤로 창문마다 좁은 쇠창살이 박힌 건물이 살벌한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봐도 오싹한 교도소의 풍경이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죄를 짓지 않아도 누구나 갈 수 있는 교도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영화·드라마용 교도소 촬영장인 ‘전북 익산 성당교도소세트장’ 얘기다.

전북 익산시 성당면에 위치한 교도소세트장. 최규진 기자
지난 10일 오후 찾은 전북 익산 교도소 세트장 안에는 1층과 2층 가득 철창을 닫은 방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복도엔 ‘보행 시 일렬로’‘보행 중 잡담금지’라는 문구가, 기둥에는 “악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격언이 적혀져 있었다.

철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니 내부에는 실제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처럼 모포와 책상, 변기까지 그대로였다. 전북 익산에서 온 탁은서(23)씨는 “교도소 내부가 이렇게 생긴 줄 몰랐다. 특히 화장실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할 정도로 똑같이 만들어 놨다”고 말했다

교도소세트장 내부 독방에 위치한 화장실. 최규진 기자
이날 전북 일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궂은 날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수십명의 관광객들은 눈을 맞으며 세트장 안팎을 구경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 20·30대 남녀 연인이나 대학생들이었지만 가족 단위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세트장 내 1층에서 무료로 빌려주는 ‘죄수복 체험’이다. 관광객들은 죄수복과 간수복을 나눠 입고 영화 ‘7번 방의 선물’에 나오는 8인실을 비롯하여 독방, 취조실, 접견실 등을 체험하고 있었다. 세트장 곳곳에서는 관광객들이 즉석에서 연출한 탈주 상황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전에서 온 윤종규(24)씨는 “최근 슬기로운 감빵생활(tvN) 등 TV 속에서 교도소가 등장하면서 친구들이랑 호기심에 찾아와봤는데 교도소 1일 체험을 한 기분이다”고 말했다.

교도소세트장 안 운동장에서 관광객들이 탈주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다. 최규진 기자
익산 교도소세트장은 지난 2005년에 세워졌다. 전체 2만 2132㎡ 면적이며, 교도소 세트장의 크기는 2613㎡로 실제 교도소 크기의 10분의 1 수준이다. 원래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가 있던 자리에 2005년 영화 ‘홀리데이’를 제작하면서 촬영을 목적으로 만들었다.이후 영화 ‘거룩한 계보’ ‘타짜’ ‘식객’ ‘해바라기’ ‘7번 방의 선물’ 등을 촬영했고, 드라마 ‘아이리스’ ‘태양을 삼켜라’ ‘수상한 삼형제’ ‘더킹투하츠’ 등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교도소세트장 1층에서는 관광객들의 1일 체험을 위해 죄수복과 간수복을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최규진 기자
10년이 넘은 교도소 촬영세트장이 눈밭을 헤치고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교도소세트장 관리소 측은 최근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관광객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영현(61) 관리소장은 “방문객의 70~80%가 TV나 영화를 보고 온 20·30대 젊은이들이다. 프로그램 속 주인공이나 한 장면 등을 따라 하면서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도소세트장을 지난 2016년 2만6000명이 찾았지만 지난해에는 10만3000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올해에만 열흘 동안 체험 온 관람객이 4000명을 넘어섰다.
교도소세트장 안에서 20대 관광객들이 죄수복을 입은채 사진을 찍는 모습. 최규진 기자
전북 익산시도 이러한 관광객 특수에 팔을 걷어붙이기로 했다. 익산시청은 올해 교도소 세트장에 법정 세트장과 관광용 망루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감방 체험에만 국한된 관광기반시설을 늘리고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한창훈 익산시청 문화관광과 계장은 “원래 용도가 영화·드라마 촬영 세트장인만큼 관광객에게만큼은 무료개방하고 있다. 운이 좋은 날에는 운동장 주변에서 촬영 중인 연예인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도소세트장 안에서 취조실 상황극을 하고 있는 관광객. 최규진 기자
전문가들은 교도소 체험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일종의 ‘전시효과’라고 설명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데 익숙한 젊은 세대 덕분에 교도소 체험을 소재로 한 세트장도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과거에는 물질적인 과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시대다. 요즘 시대에는 남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하거나 기피하는 일들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심리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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