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캐다 끌려간 소녀 "죽으면 소녀상 아래 묻어주오"
[오마이뉴스 글·사진:홍윤호, 편집:박혜경]
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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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평화의 소녀상 할머니의 이름을 딴 숙이공원에 들어서 있는 남해 평화의 소녀상 |
ⓒ 홍윤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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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평화의 소녀상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다가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의 형상화이다. |
ⓒ 홍윤호 |
"내가 죽으면 숙이공원 소녀상 아래에 묻어주오."
- 박숙이 할머니의 유언 (2016년 12월 6일 별세, 향년 93세)
경상남도 남해군은 하나의 큰 섬이다. 남해도라는 큰 섬 하나에 창선도를 비롯한 68개의 섬이 통째로 남해군이 된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이미 1973년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개통되어 육지화되었지만, 섬 자체가 갖는 풍경과 문화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인근의 큰 섬인 거제도처럼 도시화되지 않았기에 외지인들에게는 한적한 어촌, 혹은 관광지처럼 인식되고 있다.
남해군 사람들은 자신들의 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반일 감정도 별난 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리적 위치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왜'의 약탈과 군사적 공격에 자주 노출된 지역이었고, 그만큼 일본과의 전쟁도 많았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때는 아예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왜구의 약탈이 심했다. 고려 말 정지 장군이 남해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격파하자, 지역 주민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석탑을 하나 세웠는데, 이것이 지금도 고현에 남아 있는 정지탑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도 바로 이 관음포 앞바다의 전투였다. 그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러니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2015년 8월 14일 광복절 전날, 이 남해군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수많은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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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포 앞바다의 일몰 고려의 정지장군과 조선의 이순신장군이 일본군을 격퇴한 장소. 그곳에 해가 지고 있다 |
ⓒ 홍윤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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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에 놓인 소쿠리와 호미 조개를 캐다 끌려간 할머니를 형상화하기 위해 조개를 담는 바래(소쿠리)를 의자 위에 올려 놓았다 |
ⓒ 홍윤호 |
소녀상은 그대로 할머니의 상징이다. 조개를 캐다가 끌려간 그녀의 형상화이다. 옆 의자에는 강제로 끌려간 현장의 호미와 소쿠리가 놓여 있는데,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던 어린 소녀들을 무자비하게 끌고 간 역사를 알리기 위해 형상화하였다. 맨발과 뜯긴 머리카락은 할머니들의 한을 표현하며, 두 손에 들고 있는 동백꽃은 의지와 생명력으로 험한 풍파를 이겨낸 할머니들의 인생을 의미한다. 소녀가 응시하는 곳은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고 풀리지 않는 현재를 의미한다.
의자 뒤에는 다른 소녀상과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 안에 나비가 있다. 나비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나비로라도 환생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소녀상 옆에는 숙이나무로 이름 붙은 동백나무가 있다. 그 옆 나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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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이나무 박숙이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동백나무를 심고 숙이나무라 명명하였다 |
ⓒ 홍윤호 |
해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오후에 소녀상을 찾았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읍내 사람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안타깝다. 남해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지역처럼 지역민의 성금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군청 예산에서 지출되었다. 박숙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렀다고 하지만, 군민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여성인력개발센터 앞에 있는 소공원을 간신히 찾아 소녀상 앞에서 묵념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개인적 불행은 할머니 한 분에게만 닥친 시련은 아니었지만, 그분의 기구한 일생을 생각하면 특별한 애도의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소녀상 아래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현실적인 이유로 유언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터이다. 비록 시신은 소녀상 이래에 묻히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마음만은 소녀상 발 아래에 묻혀 있다. 남해 평화의 소녀상을 찾는 분들은 그 발 아래에 잠든 할머니의 마음을 느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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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보리암 남해의 상징 금산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
ⓒ 홍윤호 |
남해고속도로 하동IC 혹은 진교IC에서 나와 19번 국도로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으로 들어간다. 남해군청을 찾은 다음 그 정문에서 서쪽으로 한 블록 간 다음 우회전해 들어가면 숙이공원에 닿는다. 공원이 생각보다 작아서 놓치기 쉬우니 잘 볼 것.
대중교통으로는 남해읍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한 후 남해군청까지 걸어간 다음 한 블록 더 가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숙이공원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으로는 남해 다문화지원센터 혹은 남해 여성인력개발센터로 찾을 것.
남해에 갔다면 겨울철에는 남해 금산과 보리암에 가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전망과 일출을 볼 일이며, 4월에 가면 다랭이마을의 바다와 유채꽃밭, 한여름에는 상주와 송정 해안의 푸른 바다를 즐겨볼 일이다. 멸치쌈밥과 미항인 미조항의 갈치회도 챙겨 먹어보면 좋다. 그럴 때 여행길에 남해읍에 잠깐 들러 평화의 소녀상을 방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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