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으로 위협받기도" 이재명, 영화 <1987>에 '폭풍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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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꾸었던 1980년 광주의 아픔, 1987년 그 뜨겁고 화나고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새 세상을 향한 갈망이 넘치던 시절의 기억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의정부시을 지역위원회 핵심당원 약 100명과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같이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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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
▲ 문익환 선생님 추모행사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는 이재명 성남시장 |
ⓒ 성남시 |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의정부시을 지역위원회 핵심당원 약 100명과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같이 소감을 남겼다.
이 시장은 군사정권 시절 자신의 기억을 되짚기도 했다.
"1989년 26살 나이에 미안함과 사명감 하나로 판검사 대신 거리의 변호사가 된 후, 행방을 알 수 없는 불법연행자를 찾아 떨리는 마음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변호인 접견을 갔던 기억, 내곡동 안기부에 구속된 친구를 위해 매일 '접견투쟁'을 하다 독침과 권총으로 위협받았던 일, 불법체포자 접견을 거부하는 성남경찰서 정문 앞에서 밤샘농성을 벌이던 일, 결국 다시 화염병을 든 시위대와 함께 뛸 수밖에 없었던 그 좌절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먼저 가신 님들께 미안하다. 용기가 부족해 살아남은 자로서 가야 할 그 길을 치열하게 이어가겠다"며 "이제 이곳은 걱정 마시고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당부했다.
▲ 이재명 성남시장 인스타그램 갈무리 |
ⓒ 박정훈 |
이 시장은 추모사에서 "민주와 통일은 한 몸"이라는 고인의 말을 인용하며 "그 뜻대로 새로운 화해의 길이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가 후퇴된 시기에 통일은 멀어졌고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시기에 통일은 가까워졌다"며 "목사님께서 오래 전부터 온 몸으로 일생을 통해 보여주셨던 것처럼 저희도 민주와 통일을 향한 그 길을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유족인 문성근 시민의 날개 이사장을 비롯해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영화 <1987>은 장준환 감독의 작품으로 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특히 영화 마지막 문익환 목사의 연설에서 열사들의 이름을 외치는 장면은 노래 '그날이 오면'과 함께 배치돼 많은 이들의 공감을 더하고 있다.
친구인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문 목사는 1986년 5월 20일 서울대학교 5월제 연설도중 이동수 학생의 분신 투신으로 구속되었다가 1987년 7월 8일 형 집행 정지로 출옥했다. 다음날인 1987년 7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 참석해 '조사' 대신 26명의 열사 이름을 외쳐 많은 이들의 기억에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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