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밥상이 약 상" 모녀 3대 내림손맛..서산 농가맛집 '소박한 밥상'

2018. 1.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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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의 정순자·강태갑 모녀 집안의 가훈으로 여겨지는 "밥상은 약(藥)상"이라는 경구를 목판에 새긴 편액이 음식점 벽에 걸려있다. 모녀는 이 말을 새겨 먹으면 건강해지는 음식을 만들기에 정성을 다한다.
나는 이 글을 쓰기가 저어된다. 음식을 대하는 모녀의 바르고 고운 마음자리에 서툰 글솜씨로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싶어서다. ‘농가맛집’이라기에 농촌 출신이니 쉽게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장소가 시골일 뿐 밥을 약으로 여기고, 빈틈없는 정성으로 음식을 장만하는 수행공간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글을 본 손님들이 환상을 가지고 찾아와 실망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며 차분하게 소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단골들은 “여기서 먹으면 다른 집 음식은 못 먹겠다. 건강해지는 음식”이라며 알아주지만, “음식점이 너무 진지하고 엄격하고, 먹을 것도 없으면서 비싸다”고 불평하는 손님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한 차림, 놀라운 맛 찾으면 실망할 집 미리 말하지만 놀랍고 화려한 차림이나 입을 홀리는 자극적인 맛을 찾는 사람은 가지 마시라. 이름처럼 소박하고 수더분하지만, 내용과 정성은 옹골진 밥상이다. 믿을 만한 재료로 성심껏 조리해 맛은 정갈하고 차분하며, 입과 속은 편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사람에게 권할 집이다.
서산의 농가맛집 ‘소박한 밥상’의 유일 메뉴인 연잎밥 한정식 3인 상. 13가지 기본찬과 냉이된장찌개·우엉잡채·샐러드·보쌈·게국지찌개로 구성됐다. 게국지찌개는 평소엔 안 나가는 음식인데 따로 요청해서 차렸다.
‘어머님 마음을 닮은 한 끼’를 슬로건으로 내건 ‘소박한 밥상(충남 서산시 인지면 애정길 150-22/전화 010-8718-3826, 041-662-3826)이다. 친정어머니 솜씨를 물려받아 충남 서북부 음식을 꾸준히 연마한 정순자(67) 여사와 경희대 조리학과를 마치고 귀향해 가업을 잇는 딸 강태갑(34)씨가 호흡을 맞춰 옛 조리방식대로 음식을 준비한다. 식재료의 60%는 농사지어 조달하고, 나머지는 서산 지역 농산물과 계절 특산물을 쓴다. 메뉴는 천연 조미료와 3대로 이어지는 내림 손맛으로 차린 연잎밥 한상차림뿐이다. 값은 2인 3만6000원, 3인 이상은 1인당 1만7000원.
음식점 내부. 4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8개가 놓여있다.
4인 테이블 8개에 낮 12시와 오후 1시 두 차례, 100% 예약제로 손님을 받으며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저녁은 하지 않지만 10인 이상 따로 예약하면 가능하다. 월요일은 쉰다. 술은 팔지 않는다. 집 주위 2만5000㎡ 안팎(7000~8000평)의 넓은 농토에 작물을 가꾸며 음식점을 하느라 어쩔 수 없이 시간 제한을 뒀다.
연잎밥
미리 준비한 연잎밥을 시루에 찌고 있다.
냉이된장찌개
점심 손님상에 나갈 냉이된장찌개 뚝배기가 준비를 마치고 주방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당면은 없이 채소·버섯이 들어간 우엉잡채
오겹살과 집에서 만든 두부 보쌈
사과·감이 들어간 흑임자 소스 그린 샐러드
속 풀리는 동치미…쑥개떡에 조청디저트 지난달 29일 서산의 지인 2명과 함께 찾아가 점심상을 받았다. 여러 가지 잡곡과 은행·대추·흑임자 등이 들어간 연잎밥과 13가지 기본찬, 3년 묵은 된장으로 끓인 냉이된장찌개, 당면 대신 채소·버섯이 들어간 우엉잡채, 작지만 참조기로 말린 보리굴비, 두부 돼지고기 보쌈, 사과·단감이 들어간 신선 채소에 흑임자 소스로 맛을 더한 샐러드, 별도로 부탁한 게국지찌개가 차려졌다. 디저트로 강낭콩과 팥을 박은 쑥개떡과 조청, 서산의 특산물인 생강으로 만든 편강이 나왔다. 13찬을 살펴보자(둘째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사과·배·대추로 단맛을 낸 동치미
↑①동치미: 개인별로 나온다. 정 여사가 술과 함께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 음식이다. 동네 사람들이 약으로 얻어갈 만큼 평판이 높던 친정어머니 솜씨를 대물림했다. 단맛은 사과·배·대추만으로 낸다. 무와 무청·쪽파·고추·통마늘을 넣고 항아리에 담아 댓잎으로 덮어 익힌다. 봄바람처럼 시원하면서 부드러웠다. 한 대접이면 독한 숙취도 풀어줄 것 같다.
말린 새송이버섯 우무 조림
↑②새송이조림: 버섯을 저며 말렸다가 불려서 우무와 함께 간장·조청으로 졸였다. 이 집 음식 맛의 근원이 어머니가 빚은 간장과 조청이다.
연근 들깨 무침
↑③연근: 연근을 얇게 잘라 데치고 들깨 소스에 볶은 들깨를 통으로 넣어 버무렸다. 들깨가 음식에 두루 쓰여 농사를 많이 짓는다.
김볶음
↑④김볶음: 어머니의 조청과 간장을 섞어 끓여서 볶은 김 표면에 코팅하듯 바른 다음 볶은 통 들깨를 뿌려 식히면 부각처럼 굳어진다. 간장의 감칠맛, 조청의 자연스러운 단맛, 김과 들깨의 고소함과 향이 잘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을 냈다. 처음 보는 음식이다.
김장김치
↑⑤배추김치: 3년 묵은 복분자 청으로 단맛을 더하고, 농사지은 배추에 새우젓과 맑은 액젓 넣어 담근 깔끔한 맛의 김장김치.
꺼먹지찜
↑⑥꺼먹지찜: 들기름에 살짝 볶은 꺼먹지. 꺼먹지는 늦가을 수확한 거친 무청을 소금·고추씨와 함께 항아리에 넣고 절여뒀다가 이듬해 5월께부터 꺼내 여름 김치 대용으로 먹던 반찬이다. 파란 무청이 꺼낼 때는 까맣게 변해 꺼먹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찌개를 끓이거나 기름에 볶아 먹는다. 2014년 8월 한국에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진 솔뫼성지에 갔을 때 사제단 만찬으로 꺼먹지 정식을 차렸다. 충남 서북부 농가에서는 어느 집이나 흔히 해 먹던 음식인데 당진시가 근래 향토 음식으로 알리고 있다.
달걀 표고버섯 조림
↑⑦달걀 표고버섯 조림: 삶은 달걀과 표고버섯에 간장·조청을 넣고 조렸다.
서산 육쪽마늘과 뽕잎순 장아찌
↑⑧마늘 뽕잎 장아찌: 직접 농사지은 서산 육쪽마늘과 집 주변에서 채취한 뽕잎으로 장아찌를 담가 10년 넘게 묵혔다.
들깨 순 나물
↑⑨들깨 순 나물: 데쳐서 보관해둔 들깨 순을 들기름과 간장으로 무쳤다. 봄에 들깨 씨를 뿌려 조금 자라면 모두 뽑아 실한 포기는 모종으로 옮겨 심고, 부실한 것은 나물로 쓴다. 이때 어린 순을 데쳐서 얼려 둔다.

⑩꽈리고추찜: 고추를 설핏 쪄서 고춧가루 양념으로 무쳤다. (※사진 초점이 흔들려 쓸 수 없다.)

서산 특산음식 어리굴젓
↑⑪어리굴젓: 전국에서 알아주는 이 고장 음식. 음식점이 있는 마을은 바닷가였다. 1984년 서산A지구 방조제가 막히면서 농촌으로 변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이곳 식생활도 어리굴젓의 본향 간월도와 다르지 않았다. 섬이던 간월도까지는 이제 육로로 20여㎞ 거리다.
얇게 저민 총각김치
↑⑫총각김치: 총각무를 통으로 김치를 담갔다가(그래야 더 시원하다고) 익으면 상에 올릴 때 먹기 편하게 세로로 얇게 저며서 낸다. 맛이 깊고 시원하게 잘 익었다. 딸은 어머니의 요즘 김치에서 어릴 때 먹은 외할머니 김치 맛이 난다고 했다.
겨울 상추와 쌈장
↑⑬상추와 쌈장: 겨울 상추는 양지바른 노지(아니면 바람이 통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랐는지 키가 작고 잎이 두텁다. 쌈장은 된장과 청국장을 섞고 조청을 넣고 비볐다.
참조기로 만들어 작은 보리굴비
보리굴비는 작지만 맛이 깊고 간이 짭조름한 게 옛날 굴비 맛이 났다. 정수리에 마름모꼴 유상돌기가 선명했다. 참조기라는 표시다. 서울에서 보리굴비를 먹어본 손님들은 작다고 실망하고, 항의까지 한다고 한다. 중국산 부세로 만든, 이름뿐인 보리굴비와 참조기를 덩치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 알려진 게국지찌개, 원형도 맛보고 특별히 부탁한 서산 향토 음식 게국지찌개는 감칠맛은 있었지만 기대보다 뒷맛이 씁쓰름했다. 딸은 “담근 지 한 달이 훨씬 넘어 절정으로 곰삭은 게국지로 끓였다. 홍어로 치면 가장 세게 삭힌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면 아이들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게국지찌개를 TV 인기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고, 서울 일부 음식점에 메뉴로 등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게국지에 대해 아는 게 서로 달랐다. 1986년 겨울 게국지를 처음 알았고,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모범답안을 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4월 서산의 박만진 시인(전 서산문화발전연구원장)에게 문의하니 증언해주고 자료도 보내줬다. 그는 서산에서 태어나 71년을 살았다. 증언과 자료를 요약하면 이렇다.
돌게(박하지)를 넣고 담근 게국지로 끓인 찌개
취재 가면서 따로 부탁한 서산 향토음식 게국지찌개 뚝배기를 불에 올리고 끓는지 살피는 정순자 여사.
“본디 게국+(우거)지의 합성어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어려서 자주 먹었다. 서산 주민 대부분이 해 먹던 음식이다. 일정한 조리법이 있는 건 아니다. 담그는 방법이나 재료·쓰임새가 집집이 조금씩 달랐다. 막 담가 생으로도 먹고, 항아리에 담가 두고 겨우내 김장처럼 꺼내 먹기도 했다. 대부분 익혀서 쌀뜨물 부어 찌개로 끓여 먹었다. 김장거리에서 탈락한 배추·무·시래기, 서리 맞아 익지 못한 호박·고추 등이 주재료다. 거기에 꽃게 새끼, 능쟁이, 농게, 돌게(박하지) 등을 툭툭 잘라 넣고, 고춧가루 보일락말락 치고, 간장게장에서 게를 건져 먹고 남은 게(젓)국을 부어 버무리면 게 게국지가 된다. 게(젓)국도 시간이 지나면 김치처럼 익는다. 게장은 흔히 하는 번듯한 꽃게로 담근 게 아니다. 펄에서 쉽게 잡히는 잡게들을 썼다. 농가마다 김치보다 흔하게 담가 먹었다. 김장이 떨어질 무렵 김칫독의 우거지와 게(젓)국을 버무려 2~3일 뒀다가 찌개로 끓이기도 했다. 늙은 호박을 툭툭 잘라 함께 넣기도 했다. 호박은 단맛으로 간 조절도 하고 양을 불리는 조리법이다. 우거지든 게국이든 어렵던 시절에는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으니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소박한 밥상’에서는 게국지찌개를 어떻게 끓일지 궁금해 특별히 부탁했다. 새로운 사실은 게국지를 담글 때 바지락 살이나 바지락 젓을 넣기도 했다는 것과 뚝배기에 덜어 찌개로 끓일 때 바지락을 몇 개 넣는다는 점이다. 딸은 “게국지 담근 다음 날 먹으면 가장 맛있더라”고 했다. 뒤에 있던 어머니는 “그래도 며칠은 익어야지”라고 했다.

디저트로 나온 쑥개떡·편강과 조청
쑥개떡 찔 때 솔잎 기운 좋은 동쪽 가지서 디저트로 기름기 반지르르한 쑥개떡을 조청에 찍어 먹으니 쑥 향과 단맛이 자연의 합창처럼 입안에 퍼졌다. 딸은 부모님께 많이 혼나면서 이 떡을 배웠다고 한다. 찔 때 바닥에 까는 솔잎을 집 뒤 소나무에서 뽑아온다. 한번은 솔잎을 까는데 아버지가 "조선 솔을 써야지 왜솔을 쓰면 되냐"고 야단을 쳤다. 왜솔은 북미 원산의 리기다소나무를 말한다. 다음엔 조선 솔을 깔고 떡을 안치는데 어머니가 "음식은 정성이 반인데, 좋은 기운 받고 자란 동쪽 가지 솔잎을 써야지 북쪽 가지 것 쓰면 안 된다"고 야단쳤다. 이 집 음식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런 정성은 모녀 3대로 이어지고 있다.
정순자 여사의 조청 술 한 잔. 색이 꿀 같은 황갈색이다.
지난 8월 햇 연잎을 넣고 담가 떠내서 100일 넘게 저온 숙성한 정순자 여사의 조청 술. 팔지는 않지만 ‘전생의 인연’이 있는 손님이 오면 한두 잔 맛을 보인다. 술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했더니 ’8월 항아리에서 나온 술로는 마지막 남은 병“이라며 선뜻 내줬다.
이 집에서 팔지는 않지만 맛이 기가 막힌 술이 있다. 술 얘기를 꺼내기에 집요하게 질문을 했더니 정 여사가 담근 지 사흘 된 술독을 보여줬다. 부부와 4녀 1남 자녀들까지 가족 중 술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런데도 버릇처럼 담근다. “술이 떨어지면 왠지 허전하고 심란하다.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서 담근다”고 했다.
평창 엿술에서 힌트를 얻은 조청 술이다. 담글 때 조청 18L(한 말)에 찹쌀 8㎏(한 말)과 차조·누룩·솔잎·인삼·연잎·대추·생강을 넣는다. 누룩은 국산 밀을 사다가 빻아서 여름에 디뎌 띄워서 쓴다. 국산 밀로 해야 맛이 더 깊고 구수해 그렇게 한다. 술 담근 항아리를 방에서 이불 덮어두면 일주일이면 익는다. 용수 박아 떠서 냉장고에 두면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진다. 술 이름은 없는지 물었더니 정 여사는 "아직은 없지만 '생각하는 술'이라 하면 어떨까 한다"고 했다.
담근 지 사흘 된 정순자 여사의 조청 술. 물은 넣지 않고 조청과 찹쌀을 한 말씩 넣고 연잎과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담근다. 이름을 묻자 "아직은 없지만 ‘생각하는 술’이 어떨까 한다"고 했다.
술 항아리를 자랑하는 정순자 여사. 키가 작고 펑퍼짐한 저 항아리는 전남 어느 곳의 옹기 무형문화재를 찾아가 모양도 설명하고 자연 유약으로 해달라고 주문해 제작했다고 한다.
물 없이 조청·찹쌀·차조로 담근 술 '입에 쩍'

술은 단골들에게 한두 잔씩 맛보라고 줄 뿐 팔지는 않는다. 정 여사와 전생 인연이 있는 사람이나 맛볼 수 있다. 술독을 보고도 호기심을 놓지 않자 지난 8월 담가 거른 술 마지막 병(900mL)을 꺼내줬다. “햇 연잎을 넣고 빚었더니 거른 지 100일이 훨씬 넘었는데 맛이 그대로”라고 했다. 점심을 먹으며 석 잔을 마시고 남은 술을 염치 불구하고 싸 왔다. 집으로 오는 길은 차를 4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두고 올 수 없는 술이었다. 맛이 달고 부드러워 마시기 좋지만, 도수는 높았다. 18도 안팎은 될 듯했다.

술에 강한 기운이 여러 가닥 팽팽하게 흐르고 있는데 그게 엉키거나 튕겨 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더 큰 기운이 있었다. 힘차지만 부드러운 맛과 진한 향이 견고한 삼각체제를 구축했다. 혀를 훑고 목으로 넘어갈 때는 약동하는 에너지 구슬이 굴러가는 듯했다. 할 수 있다면 술 빚는 걸 배우고 싶었다. 딸은 “어머니가 술 칭찬하면 제일 기뻐하신다”고 했다.
왼쪽은 집안 암자, 가운데 일자 집은 1936년에 지은 살림집이다.
‘소박한 밥상’ 음식점 건물. 마당 앞 밑동이 용틀임하는 향나무 거목 아래 평상이 놓여있다.
예전부터 암자가 있던 자리에 시할아버지가 암자를 짓고 살았다. 나란히 펼쳐진 집들의 가운데 채인 첫 살림집 상량문을 보니 병자년(1936년)이라고 적혀있다. 자녀들은 낡았다고 허물고 다시 짓자고 한다는데 목재도 생생하고 지금 다시 지어도 이렇게 짓기 쉽지 않을 듯하다. 집 앞에 수령 수백 년은 됨직한 향나무 거목이 우뚝 서 있고, 그 아래 마당에는 큰 항아리 80~90개가 줄 맞춰 앉아있다. 마루 쪽 처마엔 100개도 넘는 메주가 서까래마다 매달려 뜨고 있다. 시할아버지는 공주 마곡사 강원에서 공부를 많이 한 분인데 6.25 전쟁통에 세상을 떠났다. 시아버지는 이곳에서 글도 쓰고 동네 사람들 한글도 가르치고 했다. 현재는 두우사라는 개인 암자로 남아있다. 정 여사가 부처님을 모시고 호신불 삼아 신행 활동을 한다.
살림집 앞뜰의 치자나무에 가지마다 열매가 열었다. 열매를 따서 말린 치자는 한약재로도 쓰고, 노란 물을 들이는 식용 염료로도 쓴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누군가 맛있다고 하면 그저 즐거워 젊어서부터 자녀들 친구나 학교 선생님들, 문화원 차 공부하는 모임 같은 곳에 음식을 자주 해 보냈다. 김 다섯 톳(1톳=100장)으로 김밥을 싸다 학교에 준 적도 있고, 팥죽·김치·물김치·동치미도 수없이 퍼 날랐다. 그러면서 음식 솜씨가 소문났다.
마을 안 길을 500m 넘게 들어가 집 앞에 다다라야 나타나는 ‘소박한 밥상’ 간판. 중간에는 안내표지가 없다.
음식점, 살림집, 집안 암자가 나란히 자리잡은 ‘소박한 밥상’ 전경. 가운데 수령 수백 년은 됨직한 향나무 거목이 서있고 집 둘레엔 송림이 울창하다.
서울서 조리학과 나온 딸, 농가맛집 도전 2002년 대학 조리학과에 간 넷째 딸은 어머니 고생을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했다. (※부모님은 농사지어 네 딸을 서울과 수도권 사립대학에 보냈고 막내아들은 고향 국립대학까지 가르쳤다. 시골 살림으로는 예삿일이 아니다.) 교수가 돼서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학비를 해결해야 하므로, 또 어머니 반찬값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대학 1학년 때 어머니의 장류(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를 팔겠다고 ‘옥션’에 올렸다. 그게 일이 커져서 나름대로 브랜드(‘소박한 밥상’) 만들고, 제품 만들어 판매하니까 농진청과 농업기술센터에서 잘해보라고 관심을 보였다. 그 인연으로 2008년 가을 농가맛집 컨설팅을 하는 (주)인비트로 김태현(48) 대표를 만나게 됐다.
살림집 마루에서 처마에 걸린 메주에 대해 얘기하는 정순자 여사.
살림집 처마의 서까래마다 걸린 100개가 넘는 메주가 잘 뜨고 있다. 해마다 300~500㎏의 메주를 쒀 된장을 담근다.
당시 김 대표는 서산 농업기술센터에 강의 갔다가 담당자가 관내 가공사업장에 들러 차 한잔하고 도움말 좀 해주면 어떻겠냐고 청해서 이 집을 처음 방문했다. 늦가을 오후, 마당에 국화가 가득하고 기와집 주변은 송림이 울창했다. 작은 방에 앉자 딸이 국화차에 쑥개떡과 조청을 내왔다. 쟁반에는 국화 한 줄기가 꽂힌 조그만 화병에 함께였다. 말이 아닌 실천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이날 ‘쑥개떡과 솔잎’ 얘기를 듣고 김 대표는 “몇 년만 하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잘될 테니 해보라”고 농가맛집을 권했다. 식당은 하지 않기로 일주일 전에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했다. 무시로 오는 손님에게 정성스런 밥을 대접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딸은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다가 엄마 음식을 배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향에 와서 장류 통신판매를 계속하고 있었다. 권유를 받고 생각을 바꿔 2009년 5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엔 손님 오는 게 겁났다. 대여섯 명만 와도 가슴이 덜컥했지만 누군가 맛있게 먹고 가면 즐거운 마음이 들어 위안이 됐다. 정 여사의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잘했다.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큰살림이었는데 모든 음식을 잘했다. 음식 만들어 누구 주는 걸 늘 좋아했다. 술 잘 빚고 장 잘 담그고 밑반찬도 잘했다. 그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소박한 밥상’은 식재료의 60%쯤을 직접 농사지어 조달한다. 농토가 집 주위 2만5000여㎡에 이른다. 앞의 웅덩이 습지에서는 연이 자라고, 겨울에도 파란 밭에선 보리가 자라고 있다. 보리는 조청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엿기름을 기르려고 재배한다. 멀리 비닐에 덮인 밭에서는 마늘이 겨울을 나고 있다.
앞마당엔 큰 항아리 80~90개가 줄 맞춰 앉아있는 장독대가 있다. 노란 페인트 칠을 한 듯 가지가 노란 나무들은 황금회화나무다.
단맛은 조청으로…매주 양념용 18L 고아 음식의 단맛은 과일과 조청, 3년 묵힌 복분자 청만으로 낸다. 사람들 입맛이 점점 달게 가는데 설탕은 많이 쓰면 안 좋을 것 같아 그런다고 했다. “인공감미료는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청으로 단맛을 내면 자연의 맛이라 입에 편하고 건강에도 좋겠다 생각한다”고 했다. 참나무 장작불로 매주 18L를 고아 양념으로 쓴다. 일손 많이 가는 두부도 4~5일마다 집에서 만든다. 할 수 있는 음식은 다 직접 만들어서 상을 차린다. 집 둘레 넓은 밭에는 보리와 마늘이 겨울인데도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보리는 조청 고을 때 쓰는 엿기름[麥芽]을 만들고, 마늘은 양념으로 쓰고 장아찌 담가 반찬으로 낸다. 들깨·생강·대파도 심고, 연잎 키우는 습지도 있다.
살림집 부엌에 걸린 가마솥 2개. 일주일에 18L씩 양념으로 쓰는 조청을 골 때 주로 쓴다. ‘소박한 밥상’은 음식의 단맛을 조청·과일과 복분자 청만으로 낸다.
요즘 보기 드문, 박으로 만든 바가지. 조청 고을 때만 쓰는 전용이다. 조청을 다릴 때는 온도가 높은데 화학재료로 만든 용기를 담그면 몸에 해로운 게 생길까 봐 이 바가지만 쓴다고 했다.
조청 고는 부엌엘 가봤다. 큰 가마솥 2개가 걸린 부뚜막에는 요즘 보기 드문, 넝쿨 박으로 만든 바가지가 보였다. 크지 않아도 두툼한 게 아주 잘 여문 박으로 만들었음을 알겠다. 정 여사는 “조청을 할 때는 플라스틱 바가지 안 쓰고 이걸로만 퍼서 옮긴다. 화학재료로 만든 건 뜨거운 걸 담으면 몸에 나쁜 게 생길 것 같아서 꼭 이 바가지로 한다. 깨트릴까 봐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대게 한다”고 설명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이 분 음식은 안 봐도, 먹어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친정어머니는 늘 얘기했다. “음식 대접할 때, 물 한 잔을 떠 드리더라도, 항시 즐거운 마음으로 줘야 복 받지 불편한 마음으로 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음식을 하거나 나눌 때 “맛있게 먹고 건강해라 하고 비는 마음으로 하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단순한 내림만은 아니다. 정 여사는 엄청난 독서가다. 대학 나온 딸도 “어머니가 나보다 훨씬 박식하다”고 했다.
점심 손님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간 뒤에야 짬을 내 정순자 여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순자 여사의 안방 겸 서재 벽장에는 읽은 책으로 가득했다. 그는 "책을 빌려주고 돌아오지 않으면 속이 상한다"고 했다.
법정·신영복…반찬가게보다 책방에 먼저 큰 농사를 하지만 어지간하면 농약은 치지 않는다. 벌레가 먹으면 먹은 대로 수확한다. 법정 (1932~2010) 스님이 강원도에 머물 때 쓴 글을 읽었다고 한다. 스님 처소 근처 농가에서 대파를 많이 길렀는데, 약 치는 날에는 독한 농약이 날아다녀 밖에 나가기가 힘들다. 이런 걸 먹어야 하는 국민 건강이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다. 크게 공감이 갔다.
그 전부터 법정 스님과 신영복(1941~2016) 교수 책은 나오는 대로 다 사서 읽었다. 신간이 나온다 하면 가슴 설레며 기다리다가 찾아 읽었다. 그분들 글을 읽으면 의지가 됐다. 좋아하고 존경해서 세상을 떠날 때는 무척 심란했다. 정 여사가 기거하는 방에 가보니 읽은 책이 벽장에 가득하다. 법정·신영복 책 말고도 간이 서가에는 박경리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정글만리』 전집이 꽂혀 있었다. 소설이 좋았는지 묻자 “읽어보니 깔끔하고 한 자 한 자 군더더기가 없잖유” 했다. 박경리를 좋아해 원주 기념관도 가고 고향인 통영에도 가봤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도 나올 때마다 찾아 읽었다. 시장 가면 반찬가게보다 책방에 먼저 들렀다.
법정 스님의 오래 전 책 『산방한담』이 정순자 여사의 안방 벽장에 쌓아둔 책들 속에 섞여있다. 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읽었다는데 한 권밖에 안 보인다고 하자 "더 이상 책이 나오지 않는다 해서 따로 뒀다"고 했다. 여기 보이는 책들만으로도 그의 독서 이력을 짐작할 만하다.
방 모서리를 활용한 간이 서가에는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정글만리』 전집 일부가 꽂혀있다.
정 여사는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극락보다 더 좋다. 책방에 안 가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책이 집으로 다 오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 선생님들 책을 마음대로 읽으면서 내가 진시황보다 더 누리고 산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얘기했더니 ‘진시황은 엄마처럼 일은 안 했다’며 여름에 밭매는 걸 말린다. 신영복 교수님이 감옥에 있을 때 글을 보면 날아가는 새를 보며 그 자유가 부러웠다 하던데, 내 몸 성하고 자유로워 땡볕이지만 밭을 매는 건 얼마나 다행이야. 가꾸어 거두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수확의 기쁨은 정말 뭐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했다.
타샤 튜더처럼 자연 속에서 글쓰고 싶어 그러면서 묻어뒀던 꿈을 불쑥 꺼냈다. “타샤 할머니처럼 살고 싶어유. 그란디 실천이 잘 안 돼유. 읽기는 하는데 타샤처럼 글을 쓰고 싶어도 재간이 돼야쥬.” 미국 동화 작가 겸 삽화가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 얘기다. 수많은 그림책 글을 짓고 삽화를 그렸다. 『비밀의 화원』(1962)과 『소공녀』(1963) 삽화가 그의 작품이다. 그는 50대 중반부터 버몬트주 숲속에 살면서 18세기 영국식 정원을 가꾸고, 옷감을 직접 짜 옷을 만들어 입고, 양초·비누·치즈·아이스크림을 손수 만드는 등 자연주의 삶의 상징이 됐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취재에 응하기 위해 나란히 않은 정순자(왼쪽)·강태갑 모녀.
정 여사는 요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암자에서 불공드리고 하루 음식 준비를 한다. 두부 하면서 음악 듣고, 양념 준비하면서 라디오 책 읽어주는 프로 듣는다고 한다. 사위들은 “장모님 사시는 거 보면 우리가 흐트러진 삶을 살 수가 없다”고 놀란다. 그런 삶이 몸에 배서 키가 커도 허리는 꼿꼿하고, 고운 얼굴은 동안이며, 눈동자는 호수처럼 맑다. 그 덕에 농업기술센터 추천으로 삼성 하우젠 김치냉장고 광고 모델에 뽑히기도 했다. 8도 김치를 주제로 한 광고에 ‘충청도 열무김치 장인’으로 출연해 탤런트 이다해에게 “김치는 담그는 것보다 보관이 중요혀~”라며 열무김치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구수한 사투리로 설명하는 장면에 출연했다. (※정 여사는 11년 전 남양주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기억했는데 찾아보니 2010년 봄이었다.)
‘소박한 밥상’에서 4가지 장(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과 조청, 들깨와 들기름 같은 음식의 기초 양념은 어머니가 담그거나 농사지어 마련한다. 식재료 손질, 상차림과 손님맞이를 맡는 딸은 “우리 집 조청과 장류는 외할머니의 내림”이라 했다. 음식점 방에 들어가며 내림의 근본 생각을 짐작할 만한 말이 벽에 걸려있다. “밥상은 약(藥)상”이라고 판재에 돋을새김한 편액이다. 딸은 “우리 집 가훈 같은 말”이라며 “사람들이 식사를 한 끼 때운다고 가벼이 생각하고, 음식점들도 식재료나 양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양념은 약념(藥念)에서 유래했다. 서양 양념 Spice도 약품이라는 뜻의 스피시스(species)에서 왔다. 그 마음가짐으로 양념을 만들고, 그 양념으로 음식을 한다. 그러니까 밥상은 약 상”이라고 덧붙였다.
점심 영업시간이 끝난 뒤 다음날 쓰려고 삶는 시래기를 뒤적이는 내림 손맛 3대 강태갑씨.
"성의 다한 음식 편히 들고 존중해줬으면"
정통으로 조리 공부를 하고 내림 손맛 3대를 잇는 딸의 꿈은 소박하지만 야무지다. “모자람이 없진 않겠지만, 우리 집 밥상을 받는 분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은 변함없이 성의를 다해 준비할 것이다. 편안히 즐기고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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