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유로운 배우가 꿈이다, '1987' 김태리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기분은. “한 번에 후루룩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몰입감이 상당했다. 대개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들은 무겁고 슬픈 감정선을 유지하는데, ‘1987’은 굉장히 쿨하다고나 할까? 당시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할 뿐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몹시 긴장감이 넘치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 구성돼 있더라.”
━연희의 역할을 어떻게 해석했나. “여러 용기 있는 캐릭터들이 힘차게 이야기를 굴리지만, 장준환 감독님은 연희가 다분히 개인적이면서 소시민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길 바랐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용기 있게 할 말을 다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혼자 속으로 삼키는 이들도 많으니까. 연희 역시 그런 인물이지만, 1987을 살고 있기에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영원히 외면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연희가 갈등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연희는 영화 중반부 돼서야 처음 등장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연희의 감정선이 다른 캐릭터에 비해 좀 더 동적이면서 드라마틱했던 것 같다. 연희 파트가 비교적 사적이고 소소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긴 하지만, 동시에 영화가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에너지를 흩트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갓 스무 살이 된, 발랄하고 당찬 연희의 일상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영화의 뜨거운 기운이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유해진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다. “처음엔 선배님이 마냥 유쾌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굉장히 묵직한 분이더라. 나는 내 역할에만 정신이 팔려서 웃음도 잘 안 나는데, 워낙 베테랑이시니 진지하게 연기하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이 무척 멋져 보였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엄혹했던 1987년으로부터 30년이 흘렀지만, 2017년 한국의 정치·사회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책임이 있는 이들이 책임지지 않고, 벌 받아야 할 사람이 처벌받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물론 많이 변했고, 좋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난 정치가 좀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아직 국민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게 많은 것 같다. 이번 작업을 통해 느낀 건, 사람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낼 때 이 사회가 조금이나마 이치에 맞게, 앞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거다. ‘우리가 원래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함께 힘을 합치면, 분명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1987’을 본 관객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
━차기작 ‘리틀 포레스트’(내년 개봉 예정, 임순례 감독)도 남아 있다. 촬영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고. “하하. 내내 웃으면서 촬영했던 것 같다. 소규모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계절마다 모여서 2~3주씩 찍었다. 지난겨울은 잘 보냈냐, 올여름 참 더웠다, 가을에 가면 ‘야, 감 참 맛있네’ 이런 얘길 주고받으면서(웃음). 임 감독님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 넉넉하게, 유유자적.”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면. “윤여정 선생님. 완전 팬이다. 어떤 역할을 맡든 선생님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스타일이 절대 진부하거나 고루하지 않고 톡톡 튄다. 비호감처럼 연기해도 너무 호감이 간다고 할까. 최근에 배종옥 선배님의 저서(배우는 삶 배우의 삶(마음산책)을 읽고 나서, 선배님도 만나 뵙고 싶어졌다. 연기하다 보면, 의외로 함께 출연하는 선배들과 연기에 대한 이야길 나누기가 쉽지 않다. ‘이런 걸 여쭤 보면 선배님께 실례가 되겠지?’ ‘내가 알아서 어떻게든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그런데 배종옥 선배님이 이미 그 책에 ‘질문해!’라고 쓰셨더라. 으하하. 이리 간단한걸.”

━김태리에게 2017년은 어땠나. “보통 아홉수가 힘들다고 하지 않나. 올해 내가 스물여덟인데…, 난 꼭 그게 올해였던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훌훌 털어버릴 일인데, 사춘기 아이처럼 별것 아닌 일에도 끙끙 혼자 파고 있더라. 조금은 피곤했던 한 해였다. 부디, 아홉수를 일찍 치른 것이길(웃음).”
━배우로서 남은 소망은.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짜내야 하는데…(웃음). 난 말이지, 정말 자유로운 배우가 되고 싶다. 지나치게 자신을 검열하지 않고, 생각을 당당하게 얘기하고, 인간관계 역시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하게 부딪혀보고 싶다. 배우라면 늘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할 필요도 있지만, 어느 하나에 매여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럴듯했나(웃음)?”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전소윤 (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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