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훈의 그랜드 투어] (1) 위대한 대통령 만든 케네디의 '그랜드 투어' 위대한 인물은 역사여행을 통해 탄생했다

내게 여행은 언제나 ‘그랜드 투어’다. 그랜드 투어는 떠났다 돌아오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배움과 영혼이며, 질문과 관점이고, 변화와 성장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 소설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남부 한 대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여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남자 주인공 레트 버틀러를 만난다. 소설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는 ‘전쟁’이었다. 남부의 젠틀맨들이 북부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할 때 레트 버틀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부분 남부인이 갖는 문제점은 충분한 여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북부에서 여러분이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봤다. 약간의 돈만 주면 양키를 위해 싸워줄 수천의 이민자, 공장, 제철소, 조선소, 철광, 탄광 등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우리가 갖고 있는 거라고는 면화와 노예, 교만밖에 더 있나?”
파티의 남부인들이 충격을 받았듯, 나는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관점 때문이다.
‘여행은 노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세상의 변화를 보고, 나를 뒤돌아보는 가장 엄격한 배움이고 소중한 경험이다.’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상을 발견하고 정복해나갔던 유럽인들은 일찌감치 여행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에게 여행을 시켰다.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새롭게 하며,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배우도록 하기 위해. 교사와 함께 파리,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를 돌아오는 이 여행에는 평균적으로 4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그랜드 투어’라 불렸다.
그랜드 투어의 전통은 20세기 들어 미국으로 확산됐다.

미국의 손꼽히는 역사학자 로버트 댈럭은 ‘케네디 평전’에서 케네디가 이렇게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떻게 스스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는지, 외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1937년 여름이면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점이었다. 젊다기보다는 어린 케네디는 직접 답사하고 체험하는 동안,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유럽은 소용돌이 상태고, 유럽 대륙의 정세 전망은 불투명하다. 조만간 다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
1년 후인 1938년 가을, 대영제국 수상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뮌헨회담을 마친 후, “평화가 찾아왔다”고 외쳤음을 고려해보면 대학생 케네디의 선견지명은 대단한 것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케네디는 그랜드 투어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랜드 투어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케네디는 지도 교수들에게 1939년 봄 한 학기를 휴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해서 허락을 얻어냈다. 휴학 기간에 그는 유럽을 돌아다니며 지금의 정세를 주제로 학부 학위논문을 작성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이고 폴란드의 바르샤바, 소련의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체코의 프라하,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까지 직접 갔다. 그는 나치의 군홧발에 점령당한 프라하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고 믿었다. 혹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동의 반응도 궁금했기 때문에 터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등지도 차례로 돌아봤다. 그는 긴 그랜드 투어를 통해 본인이 ‘태풍의 눈’ 속에 있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여행은 케네디에게 보스턴 하버드 교정 안의 어떤 교실도 제공해줄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와 새로운 안목을 제공했다.
그렇게 얻어진 경험과 안목, 자료를 토대로 케네디는 ‘영국이 유화정책을 취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학부 학위논문을 썼다. ‘뮌헨에서의 유화정책’이란 제목의 논문은 그동안 케네디가 살면서 남긴 가장 으뜸가는 성과였다. 1939년
9월부터 시작된 2차 대전으로 인해 케네디의 논문은 학부 학생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케네디는 학부 논문에서 “우리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상황을 지금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책 ‘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는가’로 출간됐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베스트셀러’ 저자가 됨으로써 케네디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나 뛰어나, 그래서 항상 좌절의 원인이 됐던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존감을 갖게 된다. 반면 유럽 전선에서 비행기 조종사로 맹활약하던 형은 특수작전을 수행하던 중 영국해협 상공에서 사망했다(1944년 8월). 케네디는 미래의 대통령을 꿈꾸던 형의 야망과 아버지의 소망을 이어받아 정계에 입문했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우리는 미국으로 그랜드 투어를 떠날 예정이다. 미국을 주제로 정한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미국을 ‘제대로’ 아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아니 세계의 운명이 미국에 달렸다. 이는 좋고 싫고의 문제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케네디가 고작 대학생일 때 지적했듯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싶어 한다면 상황을 지금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모르니 바른 해답이 나올 수 없다. 미국으로의 그랜드 투어는 우리에게 미국의 뿌리, 가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5호 (2017.11.29~12.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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