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캘리포니아 드리밍

2017. 11. 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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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대구 동성로에서 밤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곧 만경관 맞은편에 있는 극장을 발견했다.

첫 이야기에 금성무가 경찰로, 절세미녀 임청하가 마약밀매상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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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1990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대구 동성로에서 밤을 맞고 있었다. 경북도청 옆에 있는 체육관에서 농구경기를 취재한 날이었다. 내가 표를 구한 열차는 밤늦게 동대구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고, 바람이 불어 더 추웠다. 동성로에 가서 돈가스를 사 먹었다. 눈앞에서 젊은 한 쌍이 맥주와 안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엉겨 붙어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만경관에서 '사랑과 영혼'을 상영했다. 표가 없었다. 난감했다. 그러나 곧 만경관 맞은편에 있는 극장을 발견했다. 객석은 앞뒤로 길었고 두 줄로 난로를 피운 허름한 곳이었다. 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 막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장국영과 장만옥, 유덕화, 유가령이 나오는 '아비정전'을 보았다. 매혹적이지만 허무로 가득한 스크린, 한 번 들으면 결코 잊기 어려운 대사와 내레이션에 사로잡혔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이 무렵 아비정전은 '홍콩액션물'로 소개되었다. 관객들이 "이게 무슨 액션영화냐"며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이 영화를 액션물로 아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왕가위 감독은 아비정전으로 우리 기억에 선명한 이름을 새겼고, '중경삼림'을 찍어 결코 지워지지 않게 했다.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절의 영상은 세기말적 분위기로 충만했고 내레이션은 변함없이 촉촉했다.

 "1994년 5월 1일. 한 여인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만일 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중경삼림에서는 두 이야기가 교차한다. 첫 이야기에 금성무가 경찰로, 절세미녀 임청하가 마약밀매상으로 나온다. 위에 적은 내레이션은 금성무가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양조위와 왕정문이 끌고 간다. 여기서 주제선율처럼 흐르는 음악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마마스 앤드 파파스가 1965년에 내놓아 히트한 곡이다. 가사는 이렇다.

 "잎은 바랬고 하늘은 온통 잿빛이던 겨울날 길을 걸었네. LA에 있었다면 따뜻하게 잘 있었을 텐데. 이 겨울에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길을 헤매다 들른 교회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척했네."

 캘리포니아는 희망의 땅, 새로운 사랑이 싹을 틔우는 곳을 상징한다. 양조위는 여객기 승무원으로 일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왕정문은 그의 집을 몰래 청소하며 천천히 그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양조위가 새 사랑을 할 준비가 끝났을 때, 그리하여 첫 데이트 약속을 한 캘리포니아 레스토랑에 왕정문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무릎은 마음의 준비 없이 꿇을 수 없다. 오래 사귄 애인에게 마침내 청혼을 할 때, 절대자 앞에서 복종을 맹세할 때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그러니 무릎 꿇음은 가슴을 열어 보이는 일이다. 누군가 강제로 무릎 꿇리려 할 때 우리는 분노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역시 완전한 희생과 받아들임을 전제로 하기에, 무릎 꿇지 않고는 이루지 못할 일이다. 앞으로 몇 주 무릎 얘기를 하겠다.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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