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모자'와 스테이크..아베, 트럼프의 취향을 저격했다

윤설영 2017. 11. 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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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회동 전 황금색 수 놓은 '동맹 모자' 선물
점심 식사는 클럽하우스서 미국산 소고기 햄버거
"일식보다 고기"트럼프 취향에 스테이크 만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뷰티풀 데이" 아베 신조 총리=(하늘을 보면서) "베스트 웨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 9홀에 걸친 골프 라운딩을 하며 정상간의 우애를 과시했다. 둘은 2020년 도쿄올림픽 골프 종목이 열리는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약 2시간 반 동안 플레이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 마쓰야마 히데키 프로골프 선수가 5일 일본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 공프장에서 함께 카트를 타고 이동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엄지손을 치켜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두 사람이 골프로 우애를 다진 것은 지난 2월 이후 두 번째. 일본인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테키가 함께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쓰야마는 정말 좋은 선수”라며 함께 라운딩하고 싶다고 했고, 일본 측은 일찌감치 마쓰야마의 일정을 조정해왔다. 지난 2월엔 어니 엘스 선수가 함께 했다.

NHK에 따르면 세 사람이 동시에 파(PAR)를 잡으면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라운딩을 마친 뒤 “골프장에서는 대화도 잘 된다. 골프장에선 서로 편안하게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화제도 가끔은 섞어가면서 느긋하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날씨도 정말 좋고, 클럽의 여러분도 따뜻하게 환영해주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즐거워했다. 나도 정말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가케학원 스캔들 이후 약 5개월간 골프를 자제해오다가, 이번 트럼프 방문으로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라운딩 중 트위터를 통해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선수라는 2명의 훌륭한 사람들과 골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 골프장에 도착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를 하려고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도널드와 신조: 동맹을 더 위대하게"라고 쓰인 모자를 들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라운딩에 앞서 두 정상은 클럽하우스에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아베 총리는 황금색으로 “Donald & Shinzo : make alliace even greater (도널드와 신조 :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라고 자수를 놓은 흰색 모자를 4개 준비했다. 평소 황금색을 좋아하는 트럼프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 트럼프, 아베, 마쓰야마 등 세 사람은 모자 챙에 각각 싸인을 해서 나눠가진 뒤, 하나는 골프장에 기증했다고 한다.

두 정상의 만찬도 트럼프의 취향을 반영한 메뉴로 진행됐다. 트럼프·멜라니아와 아베·아키에 두 부부만 참석한 만찬은 도쿄 긴자에 있는 고급 스테이크 철판구이 음식점 '우카이테이'에서 이뤄졌다. 트럼프가 “일본 음식은 싫다. 고기가 좋다”고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특별히 스테이크 메뉴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 정부 측은 트럼프의 입맛을 고려해 “케챱도 준비했다”(외무성 관계자)고 밝혔다. 두 부부가 만찬을 한 이 식당은 가장 저렴한 점심 메뉴가 7020엔(약 7만1000원), 저녁 1만9천엔~2만9천엔(20만~30만원) 이 넘는 고급 음식점이다. 음식평론 전문매체인 미슐랭가이드에서 수년째 별3개를 받은 곳으로 최근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이날 NHK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 에어포스원이 요코타 미군기지에 도착할 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나란히 비행기에서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기지내 격납고에서 미군들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 뒤 곧바로 전용헬기인 ‘마린원’을 타고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으로 향했다.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두 정상의 긴밀한 관계는 미일 관계가 ‘밀월 시대’를 맞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두 정상은 대통령 취임후 정상회담 5차례, 공개된 전회 회담만 16차례 했다. 두 정상은 서로 ‘신조’, ‘도널드’라고 부르는 관계로까지 진전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귀 기울여 듣는 거의 유일한 정상”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측근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을 아베 총리에게 상담하기도 한다”(미 정부 관계자)고 한다. 현재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를 ‘아시아담당 대통령 보좌관’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5일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AFP=연합뉴스]
과거에도 미일 정상은 유독 돈독한 관계를 과시해왔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서로를 ‘론’, ‘야스’라고 부르며 긴밀한 동맹을 구축했다. 이른바 ‘론-야스’ 시절 두 정상은 “미국과 일본은 운명 공동체”라며 안보 분야 긴밀한 협력관계를 쌓아나갔다. 당시 회담을 했던 히노데(日の出)산장은 ‘론-야스 기념관’으로 남아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엔 ‘미국의 푸들’이라고 불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였다. 2003년 당시 관방 부장관이었던 아베는 “미일 관계는 150년전 페리 흑선 도항이래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었다”고 자찬했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미일관계가 지나치게 정상외교에 치중돼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노 료헤이 전 외무장관은 “미일동맹이 일본 외교의 중요한 기축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정상이 뭐라하든 간에 따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트럼프의 발언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두고 “과연 트럼프가 주장하는 내용을 일미동맹의 근간으로 봐도 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미네 요시키 평화외교연구소 대표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깊은 대화가 통하는 사이라면, 제재와 압박 뒤 어떻게 할 것인 것 구체적인 방안을 이번 계기에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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