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랑이', 베니스비엔날레를 향해 '호령'하다

김형순 2017. 11. 1. 10: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뷰해외리포트] 2017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3대 미술축제 3편 '베니스비엔날레 - 2부'

[오마이뉴스 글:김형순, 편집:김준수]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카셀도큐멘타'가 겹치는 해이다. 이런 기회는 10년에 한 번만 오는 것이라 기자는 지난봄과 여름 사이 40일간 유럽미술투어를 했다. 그곳에서 본 현대미술의 현황을 1편 '카셀도큐멘타'와 2편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이어 3편 '베니스비엔날레[2부]'를 소개한다. ? 기자 말

 코디 최(Cody Choi) I '베네치아 랩소디_허세의 힘(Venetian Rhapsody-The Power of Bluff)' Neon, LED, Steel, Canvas, PVC 243×1033×111cm 2016-2017. 베니스비엔날레를 카지노자본주의로 빗댄 작품이다. 한국관은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에 있다.
ⓒ 김형순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는 전시기간은 6개월이라 2017년 11월 26일까지 열린다.

지난 5월 초 베니스를 방문하기 전 난 기사에서 베니스비엔날레의 백년이 넘는 역사와 그 세계적 명성과 권위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베니스비엔날레가 주는 황금사자상 세 가지와 한국 국가관에 언제 어떻게 생겼고 이번에 참가하는 한국작가와 예술감독이 누구인지 소개했다. 이 기사는 베니스비엔날레 2편으로 현장에서 본 내용을 재정리한 것이다.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파올로 바라타(P. Baratta)' 베니스비엔날레위원장과 '크리스틴 마셀(C. Macel)' 예술감독에게 영문기사로 된 공개편지를 보낸 바 있다. 접수여부는 확인을 못했다. 나는 2019년 다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본 전시에 앞서 DMZ에서 한반도 화해와 세계평화를 위한 비엔날레 '사전(프레)전시'도 같이 열게 되길 바란다는 제안을 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위원장님께 보내는 공개편지] http://omn.kr/n7ku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주제는 '예술만세(Viva Arte Viva)'다. 'P. 바라타' 위원장은 예술이 신자유주의 테러공포시대에 대안의 메신저가 될 수 있음 세 가지로 알린다. 첫째로 만인을 위한 만인의 의한 만인에 대한 축제, 둘째로 인류를 위협하는 일체의 세력에 대한 저항, 셋째로 인류보편의 평등개념으로서 인류를 죽음으로 구하는 기술로써의 예술정신이다.

또한 이번 행사를 총괄하는 프랑스 출신 예술감독인 '크리스틴 마셀'은 주제 해설에서 "오늘날 갈등과 충격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예술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증언한다. 예술은 인류에게 최후의 보루이다. 유행과 사적인 이익을 초월할 수 있는 토대이다. 개인주의와 무관심에 대한 명백한 대안"이라고도 설명했다.

한국관 주제, '동서 균형추 맞추기'

 한국관 '이대형' 예술감독은 세계 미술계인사들과 친화력이 높다. 여기는 '산마르코'광장이다
ⓒ 김형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이대형' 현대차디렉터가 선정됐다. 그는 '균형추(Counter-balance): 돌과 산'을 주제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산과 둘은 크기는 달라도 결국 같은 것이란다. 마찬가지로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힘의 차이만 다르지 같은 것이니, 그 간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행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대형 예술감독은 그렇기에 "강대국이라면 그 품위를 지켜야 한다. 힘만 내세워 지구촌시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반이민 등 신고립주의를 강행하고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이에 대해 대안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예술의 책임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강대국이라고 해서 이런 일이 없는가?"라고 물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강대국 사람도 그들이 노인세대가 되면 사회적 약자가 되고 소외자가 되기에 이 문제는 약소국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 사람, 더 나아가 인류보편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내가 도착했을 때 이대형 예술감독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어제 영국의 유력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외 이탈리아 유력지도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할 국가관 8곳에 독일관과 함께 한국관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장이 발표되었는데, 독일이 국가관과 국제관 황금사자상을 2곳 다 휩쓸었다. 한국이 수상은 못했지만 대부분 유명미술매체에서 탑 텐(Top Ten)에 올랐으니 반은 성공이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영국의 <가디언>지와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에도 한국관 전시를 소개하는 화보사진과 함께 기사도 실렸다.

[I] 한국관 등 각 나라의 대표작이 소개되는 <국가관>

코디 최, 베니스 올라탄 호랑이와 생각하는 사람

 코디 최(Cody Choi) I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혼합매체 Mixed media(toilet paper, Pepto-Bismol, wood, plaster) 112×92×282cm 1995-1996. 작품개념을 작가가 직접 시연해 보이다
ⓒ 김영태
먼저 코디 최(한국명 최현주) 작품을 보자. 그는 1부에도 소개했지만 더 추가하면 고려대 사회학과 재학 중 80년대 미국에 이민 간 작가다. 동시대의 다양한 문화가 빚어내는 충돌 사이에서 생겨나는 제3의 혼합문화현상 등에 주목한다. 10년간 뉴욕대교수를 하면서 자신의 이런 생각을 풀어낸 책 <20세기 문화지형도(2010)> 등도 냈다.

그는 베니스비엔날레도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의 '카지노자본주의'나 다를 바 없다고 봤다. 이 비엔날레가 세계의 문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음을 '베네치아 랩소디(위 사진1)'라는 시니컬한 제목에, '허세의 힘'이라는 부제를 붙여 풍자했다. 그래서 한국관 입구에 베니스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와 모텔의 광고네온 판도 설치한 것이다.

현지 기자모임에서 내 앞자리에 앉았던 그가 들려주는 1시간짜리 압축된 서양철학사를 듣게 되었다. 코디 최는 이렇게 나름 서양사를 꿰뚫고 있었고 베니스 같은 미술행사도 비판할 충분한 실력을 갖춘 작가였다. 그래서 그를 더 이해하게 됐다. 그 도입부는 아래와 같다.

"르네상스가 일어나 인간을 부활시켰고, 중세는 신이 실존이었고, 그러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중시했고,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왕정복고 속 '위고'는 '민중(레미제라블)'을 재발견했고,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구현하려는 사회주의가 나왔고, 더 센 공산주의가 나왔고 그런데 이 사상이 농업국가인 러시아에 악용돼 실패했다 […]"

그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위 사진3)'은 겉모양은 로댕 건데 뭔가 달라 보인다. 왜 그럴까 그래서 관심을 받는다. 그는 서구인이 독점하는 이 작품을 가장 한국적 발상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이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인의 생체리듬을 보여준다. 작품 밑에 큰 구멍이 있는데 거긴 똥간이다. 한국인은 똥을 싸면서 가장 집중도 높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색깔을 한국인 취향이 아닌 야릇한 분홍색인가? 물론 그것은 미국가정 상비약 '펩토비스몰' 곽을 녹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달리 해석하면 몸에 맞지 않는 서양 것을 억지로 맞추려다 경험한 쓴맛이나 미국에서 겪은 인종차별 등의 은유가 아닌가. 엉거주춤 똥을 싸는 포즈는 그가 작가로써 문화정체성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몸짓이리라.

이완, 노동시장과 한국근현대사 탐구

 이완(Lee Wan) I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For a Better Tomorrow)' 플라스틱(Plastic), 60×70×70cm 2016(상단右). 이완 I '고유시(Proper time)' 668 Clocks, Dimensions variable 2017(하단) 시계 근처에 가면 소리도 난다. 어느 외국 관객이 이게 바로 나의 '고유시'라며 한 컷 사진을 찍다
ⓒ 김영태
'이완' 작가는 2014년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메이드 인(아래 슬라이드8)',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 '고유시', '미스터 K와 한국사수집'을 출품했다. 그럼 먼저 5년이나 걸린 작품 '메이드인'을 보자.

이 작품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한 독창적 작품이다. 작가는 한국에서 소비자로 살다가 갑자기 동네마트가격이나 그 유통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궁금해졌다. 이 답을 찾기 위해 국내만 아니라 타이완, 태국, 미얀마에 1-2달씩 가서 생산자가 되었다. 타이완 사탕수수밭에 가서 동네마트에서 2천 원짜리 하는 설탕을 농사도 졌고, 서울에서 15만 원에 팔리는 금 3그람을 미얀마 탄광에 가서 직접 캐봤다. 그 과정을 사진에 담은 것이다.

이번에는 눈, 코, 입이 없는 가족을 조각한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위 사진1)'를 보자. 4개 강국의 각축장인 한반도에 살면서 우리가 사람다운 얼굴을 상실했음을 상기시킨다. '국가보안법'이 상존하는 나라에서 눈 감고 입 닫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분단으로 찌든 우리얼굴이 더 잘 보인다. 통일된 나라에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도 내비친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관에서 최고인기작 '고유시(위 사진2)'를 보자. 이완 작가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전 세계 668명의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의 이름·국적 등과 함께 "당신은 내일 아침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늘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 인터뷰 방식은 첫째로 직접 만나거나 둘째로 '구글 서베이'와 셋째로 이메일 등을 사용했단다. 이렇게 시간과 노동의 함수관계를 물리학의 '고유시(Proper Time)' 공식에 대입하면 나라마다 시간도표가 나오고 동일노동에도 10배 이상 임금차가 남을 알 수 있단다.

작가는 돈이 시간이 된다는 속도숭배시대에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소외되지 않고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인간의 행복과 노동시간의 함수관계를 말한다. 여기에는 또 "밥 한 그릇이 하늘"이라는 동학의 '밥'사상이나 돈이 돈을 버는 잉여가치와 대량생산 속에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화되어 가는지를 탐구한 '맑스'적 관점도 담겨있다.

한국근현대 100년사 자료수집

 뒤가 이완 작가의 작품 '미스터 K와 한국사수집(Mr. K and the Collection of Korean History)'이다. 아래 '박근혜 구속하라'도 보인다. [사진설명] 이대형 예술감독의 소개로 알게 된 부아리에(A&P POIRIER)부부. 그 남편은 구멍이 난 200프랑 옛 지폐 위에 명함을 만들다. 돈의 힘이 세도 예술보다는 못하다는 소리겠죠
ⓒ 김형순
그러면서 작가는 7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부모세대들이 "오직 수출만이 살 길이다", "오늘의 땀방울이 내일의 행복을 가져온다"라는 슬로건 속에 갇혀 살아왔음을 환기시키면서, 절대희생 속 국가우선주의로 살아온 세대에 대해 우리가 돌아볼 점이 많음을 지적한다.

이번에는 한국근현대사 100대사건이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스터 K와 한국사수집'을 보자. 여기 주인공은 '김기문(1936~2011)'씨다. 그의 개인사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읽는 방식이다. 그는 식민시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를 오롯이 겪은 인물이다. 직업은 기자였다. 외국관객도 이 영문텍스트를 꼼꼼히 읽는다. 우리보다 한국현대사를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다.

이런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작가가 황학동 골동품가게에서 1412장이 든 사진박스를 단돈 5만 원에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수집한 자료가 많다. 일본 천황이 친일파에게 준 선물과 이완용의 쓴 친필글씨, 그리고 독재시절 박정희, 과도기에 김영삼, 민주시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관련자료 등 맨 마지막은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표어로 끝난다.

'독일관', 차이의 권리를 보장하라

 '안네 임호프(Anne Imhof)' I '파우스트(Faust)' 2017. 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국가관)을 받은 독일관 퍼포먼스 작품이다 ⓒ Venice Biennale
ⓒ Anne Imhof
이제 한국관 말고 다른 국가관도 보자. 지면상 '독일관'과 '프랑스관'만 소개한다.

이번 베니스심사위원은 독일의 퀴어작가 '안네 임호프(Anne Imhof)'가 연출한 '파우스트'에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안겼다. 작가는 "내 작업은 자유를 위한 차이의 권리를 위한 젠더 비순응을 위한 사유의 은총과 세상에서 여성이라는 자부심을 대변하는 것이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차별을 낳는 사회에 대한 항거인 것 같다.

이 해프닝아트는 일종의 독일식 씻김굿이다. 그 이면에는 독일인의 강박인 나치즘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용한 것 같다.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 미끄럽다. 관객도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해야 한다. 전시장 밑으로 지하실이 있고 거기서 검은 옷을 입은 퍼포머들이 '아르토'의 잔혹극 같은 공포의 한 판 퍼포먼스를 벌린다. 유령이 나올 것 같이 음습하다.

우리는 지금 극우세력과 금융자본이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가. 생닭의 날개를 맨손으로 우악스럽게 뜯어내어 관객을 당황하게 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는 데 보지는 못했다. 베니스 심사위원단은 임호프의 이 작품에 대해 "힘차고 충격적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프랑스관', 공간을 조각한 음악의 전시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I '스튜디오 베네치아(Studio Venezia)' 2017. 프랑스 국가관 내부모습으로 마치 연주장 같다.
ⓒ 김형순
독일관과 대조를 이루는 프랑스관을 보자. 우선 작가는 전시장 내부를 조각처럼 연출했다. 거기에 음악적 요소를 결합시키고 공간에 기를 불어넣어 장엄한 분위기를 낸다. 이 작가의 이름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2010년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셰페르'는 "음악이란 말하는 건축"이라고 정의했는데 그런 이론을 잘 활용했다. 이 공간은 음향시설이 완벽해 보이지 않는 울림도 관객의 몸을 건드리는 것 같다. 또 피아노와 록밴드무대처럼 대형앰프와 드럼 등 여러 악기가 설치작품처럼 놓여있다.

이 작품은 1963년 백남준이 전자아트를 통해 '형상'을 '소리'로 바꾸려한 첫 전시개념과 유사하다. 좋은 작품이긴 하나 수상을 못한 건 최초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간 첨단의 디지털기술로 보이지 않는 음악을 보이는 조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는 참신하다. 이번 행사가 끝날 때까지 60여 명 성악가와 연주가 등이 여러 장르의 음악도 소개된단다.

[II] 옛 무기고인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국제관>

이수경, 수난사 속 불굴의 정신 표현

 이수경(Yee Soo-Kyung) I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Translated vase Nine Dragons in Wonderful)' Ceramic shards epoxy, 24K gold leaf 400×201×190cm 2017.
ⓒ 김형순
51개국 120명의 작가가 초청된 국제관, 한국작가로는 '이수경'과 '김성환'이 초대받았다. 올 국가관은 독일작가 프란츠 에르하트르 발터(Franz E. Walther)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러면 먼저 '전통' 섹션에 설치된 이수경 작품부터 보자. 이 작품은 관객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게 할 정도로 인기작이다. 현장에서 들려준 작가의 변도 들어보자.

작가는 서울대에서 회화를 공부했지만 2001년 이탈리아 '알비솔라' 세라믹비엔날레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기서 이탈리아 도공과 협업 중 김상옥의 번역시 '백자부'를 그들에게 주고 도자기를 만들어보라고 했단다. 그 결과는 뜻밖에도 너무 좋았단다. 그래서 귀국해 친구소개로 이천에 가, 거기서 도공을 만났고 흠이 있다고 깨버린 자기에 오히려 반해 그걸 이어붙이는 '번역된 도자기'를 시작했단다.

작가는 이 연작을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왔다. "10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이번 작품에 최대로 반영했다"면서 "이번 출품작에 대해서는 100%는 아니나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 "이건 전통의 계승이 아니고 번역된 현대미술이고 또한 이 번역은 때로 반역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은 이런 비선형의 아름다움은 기가 막히다

이 작품은 도자기가 450개 들어간 무게 1.5톤, 높이가 5m인 대작이다. 깨지기 쉬워 작품이라 운반비만 억대가 들어가기에 그 비용을 베니스 측과 한국 측이 반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했단다. 도자기가 쓰러지지 않는 건 건축용 강력접착제 에폭시와 24K 금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맨 꼭대기는 가벼움을 주고 싶어 경쾌하게 처리했단다.

이 출품작이 현대미술인 이유가 있다. 폐차를 쌓아 올려 만든 서구의 현대조각가 '세자르'의 작품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버려진 것, 깨진 것 등을 '아상블라주(집적)' 기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조형물로 만드는 게 모던아트의 한 흐름이다. 이 작품도 그런 풍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웅비하듯 하늘로 치솟는 이런 용의 형상은 오랜 세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수난의 역사를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새롭게 도약하는 한국인의 강한 기상을 잘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는 외국 큐레이터도 있다.

이수경 작가 기획으로 베니스국가관 앞에서 '태양의 궤도를 따라서'도 선보였다. '이정화'의 춤과 '이현아'의 노래가 들어가는 퍼포먼스다.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궤도를 지켜가는 전통예술가에 대한 헌사다. 전통문화라는 것 때문에 후원이 적어 작가가 공연자 항공료 일부를 지불했다는 뒷이야기도 들었다.

김성환, '보이지 않는 자'를 보게 하는 영화

 김성환(Sung Hwan KIM) I '계약 전 사랑(Love before bond)' 음악: 마이클 데이비드 디그레고리오 아카 오그르와 협업(in musical collaboration with David Michael DiGregorio aka dogr) 아시아소녀와 흑인소년이 주인공이다 ⓒ Venice Biennale
ⓒ Sung Hwan KIM
이제 끝으로 김성환 작가의 비디오 작품 '계약 전 사랑'을 보자. 그는 2012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초대되는 등 한국보다 구미에서 더 유명하다. 그의 영화는 기존의 소설구성을 뒤바꾼 '누보로망(신소설)'을 닮았다. 주류의 역사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자의 입장도 옹호돼야 살만한 세상이 아니냐"며 '약자의 힘'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끄집어냈다.

여기서 주인공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청소년이다. 뉴욕에서 워크숍을 하면서 찍었단다. 간담회에서 작가는 미국교과서에 식민사를 보면 인디언, 남미, 흑인에 대한 사건은 나오지만 한국역사는 없다며 미국주류사회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아시아소녀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단다. 작가는 이 소녀의 내면에 잠재한 빛과 어둠의 세계를 변증법적으로 잘 풀어냈다.

서울대 건축과를 다니다 미국에서 수학을 전공한 작가라 그런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 보인다. 작품에서 식민과 독재로 얼룩진 한국근현대사뿐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겪는 계급과 인종문제도 이슈로 삼는다. 갑자기 지역신문에 난 한국인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12년 간 유기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 영화의 긴장감도 최고로 고조된다.

작가는 영화구성은 수학적으로, 연출은 시적으로, 공간개념은 건축적으로 버무린 카리스마 넘치는 영상미학을 탄생시켰다. 지난 9월 9일 현지에서 작가와 대담 질문자 간에 '공개토론(Open table)'이 있었다. 거기서 그는 이 작품이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 선가 주제도 그렇고 영화의 분위기가 꽤 어둡고 멜랑콜리하다.

이 작품은 그가 좋아한 흑인문학의 대가인 '제임스 볼드윈(1924~1987)'의 영향을 받았다. 볼드윈은 "똑바로 본다고 해서 모든 게 변하는 건 아니나 똑바로 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대사 중 그의 문구도 인용된다. 거기에 인문학적 요소를 도입한 미국의 국민건축가 '필립 존슨'의 개념도 영화무대 등에 응용되었다.

베니스(베네치아),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천국보다는 낫다"
 베니스 골목 안에서 있는 '가면가게'에 전시된 형형색색의 화려한 마스크들
ⓒ 김형순
베니스는 왜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미술제, 영화제, 건축제, 무용제가 매년 열릴까? 왜 미국은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세계적 위상의 미술행사를 못 열까? 아마도 그것은 베니스는 15세기부터 시작한 유럽의 문화민주주의 즉 '르네상스'가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리라. 프랑스도 인상파 이전에는 로마로 미술유학을 갔다.

118개의 작은 섬과 400여개 다리로 이어진 물의 도시 베니스를 두고 누구는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천국보다는 낫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와 보니 그 의미가 뭔지 알 것 같다. 베니스는 30만의 작은 도시지만 파리가 20세기 초에 전 세계의 문화수도였다면 여긴 16세기부터 그랬다. 파리도 결국 베니스 모방품 아닌가.

여기 뒷골목에 가면 장식가면을 파는 가게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여기서는 왠지 인생이 가면극 같다. 베니스는 13세기 중반부터 가면축제가 시작되었다. 왜 그런 축제가 생겼을까 그건 아마도 신분사회 때문이리라. 모두가 가면을 쓰면 귀족이나 평민이나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었기에 짜릿한 해방감을 맛보았으리라.

우리가 좋은 가면을 쓰다보면 그걸 벗어도 실생활마저 멋진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베니스는 이렇게 가면축제 같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이제는 가면 없어도 누구나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왔듯 여기서는 누구나 와서 첨단의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

 높이가 98.6m나 되는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종탑 모습
ⓒ 김형순
베니스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또 '곤돌라'가 춤추는 섬에서 넓은 바다를 보면 사랑의 기운이 절로 일어나는 낭만적 곳이기 때문이리라. 이런 도시에서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와 작곡가 '비발디'가 태어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도시는 어느 유명 도시보다 멋쟁이와 미인이 많다. 다양한 억양을 가진 여러 언어 사용자가 내는 연주도 흥겹다. 사실 사람이 최고의 미술품이다. 또 멋지게 걷는 사람의 움직임이 진짜 조각이다. 개성과 세련미 넘치는 선글라스와 슈트며 산뜻한 캐주얼 패션 등이 장난이 아니다. 그걸 구경하는 게 진정한 여행이리라.

21세기 키워드는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삶에 축제를 부르는 '유혹'이다. 베니스는 단조로운 일상에 활기를 촉발시킨다. 이제는 삶을 인내하기보다는 삶을 향유하는 시대다. 오랜 냉전 속 살아온 우리가 보기에는 저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은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있는 것 아닌가.

하여간 베니스는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산마르코성당', '두칼레궁전', 1720년에 개업한 유럽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Florian)' 등 볼거리가 많다. 베니스시민들은 과거 찬란하게 꽃핀 조상 덕에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 동시에 지금도 여전히 그런 전통 위에 꽃핀 동시대 예술을 삶의 일과처럼 맘껏 즐기면서 산다.

베니스비엔날레
ⓒ 김형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베니스비엔날레 홈 페이지 영어판] http://www.labiennale.org/en/art/2017 [베니스한국관 설명회 영상] http://korean-pavilion.or.kr/sub/leedaehyung.html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