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마켓 랭킹] 순한 양주의 시대, 위스키 1위는?
한때 잘 나가던 양주 수난
40도 이하는 위스키 아니라는
금기 깬 36.5도 사피루스 1위
경쟁사 저도주 출시 잇따라
올 연말 저도수 위스키 전쟁
확실히 양주 전성기는 지난 듯합니다. 2012년 연간 220만 상자(1상자에 500㎖짜리 병 18 개입, 즉 9L) 이상 팔리던 양주가 불과 5년 만에 연간 110만 상자로 떨어졌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마시던 양폭(양주+맥주)은 부장님 이상 ‘어르신들’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90년대 들어 소주가 순해지기 시작했고 이후엔 맥주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이젠 거의 음료수 수준의 맥주가 인기입니다. 회사원들은 1~3차를 오가며 고주망태가 되기 직전까지 마셔야 끝나던 회식이 아니라 '저녁 식사를 겸한 1차'에서 끝나는 회식 문화에 익숙해졌습니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도 등장하는 60년대 대표 위스키 ‘도라지 위스키’에는 위스키 주정이 아예 들어가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부의 강한 원액 수입 제한 조치 때문에 생긴 일이죠. 어쨌든 수입 규제를 조금씩 풀어주다 드디어 진짜 위스키를 만들 수 있게 된 게 1984년인데, 당시엔 신문에 이런 단신 기사가 실렸습니다.
★…오는 7월 1일로 임박한 특급 위스키 시판을 앞두고 위스키 3사는 결전태세를 갖추기에 부산. 백화가 베리나인골드킹, 진로는 VIP, 오비 시그램은 패스포트로 각각 이름을 붙인 특급 위스키는 기존 국산 위스키가 몰트위스키에 주정을 블랜딩한 데 비해 주정 대신 그레인 위스키를 사용한 것으로 3사 모두 몰트 40%, 그레인 60%의 비율로 블랜딩한다. 위스키 3사는 시판에 앞서 각종 광고매체와 시내 곳곳에 입간판 등을 설치, 이름 알리기에 대대적으로 나서는 한편 판매망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특급 위스키가 격은 기존 1급 위스키보다 10% 정도 비싸다. <중앙일보 1984년 6월 15일자 4면>
본격적인 위스키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 외에 이토록 열심히 스카치를 마신 민족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양주를 주문하는 것이 멋져 보이는 시절이었기 때문일까요. ‘양주 폭탄’은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었기에, 너도 나도 양주에 맛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소비자 입맛이 많이 변했네요.
소주나 맥주와는 달리 위스키를 순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바로 위스키의 실존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40도 이하의 위스키는 위스키의 본산인 스코틀랜드 내에서는 병입(보틀링)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위스키로 쳐 주지 않는 것이죠.
저도주 전쟁을 시작한 골든블루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렵게 오른 1위 자존심을 걸고 역시 다음달 ‘사피루스 리뉴얼판’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주류 업계 ‘대목’인 연말연시를 앞두고 벌써 순한 양주들의 독한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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