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사 공양이 가장 맛있었을까?
[오마이뉴스 임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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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의 아침 공양. 여기에 바리스타 스님이 내시는 커피를 곁들이면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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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본 절이 많을 텐데, 어느 절집 공양이 가장 맛있던가?"
지인의 기습적인 질문. 절집 공양, 맛으로 먹은 적 없습니다. 불교에선 '식당작법(食堂作法)'이라 하죠. '내 앞에 놓인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생각하며 감사히 먹습니다. 살기 위해 먹을 뿐이지요.
심지어 "조선시대 임금님들도 수랏상에 올랐던 각 지역 특산품들을 들기 전, 그곳 지역민들의 안위를 물은 후 먹었다"고 합니다. 이로 보면 대한민국 화려강산 못지않게 정신까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맛이라뇨. 식도락(食道樂)과 전혀 거리가 멉니다. 하여튼, 이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화두'였습니다.
절집에 본격적으로 다닌 지 3년여가 되어 갑니다. 예전엔 절밥의 '절'자만 나와도 절레절레 고개 흔들며 애써 피해 다녔습니다. 마치 우상숭배 같은 그런 기분이었달까. 그런데 절에 다니면서 자연스레 절밥을 먹게 되더군요. 원칙을 세웠습니다. 비교적 재정 여유가 있는 큰 가람에서는 가능하면 먹기로. 가난한 작은 암자나 개인 사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피하는 걸로.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20여 군데 절집에서 공양을 먹었던 기억입니다. 밥 때를 맞추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니데요. 감사하게 절밥을 먹었던 사찰 곳곳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숨어 있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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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여항산 성불사 아침 공양입니다. 호박잎에 된장국이면 끝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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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가 여수 흥국사 '도솔암'입니다. 봄의 전령, 진달래 보러 여수 영취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들른 도솔암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점심 공양 현장을 접했습니다. 드시는 걸 보니, 어찌나 허기가 지던지. 염치 불구, 역으로, 암자에서 '비빔밥 탁발'을 했습지요. 비구니 스님, 기꺼이 비빔밥을 내어 주시더군요. 꿀밥으로 배를 채웠드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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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스님께서 커피를 내리시는 중입니다. 스님, 또 주실 거죠? 갑작스레 "스님들도 보기 힘든 행사가 있다"고 오길 바랬는데, 추석 연휴 직전이라 못 간 거 죄송허구먼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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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에 비친 덕해 스님. 그의 익살스러움은 아주 사랑스러운 '귀여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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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사와 얽힌 재밌는 일화입니다. 언젠가 주방에 산삼 비슷한 게 다섯 뿌리나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께 여쭸더니, '산삼' 맞다대요. 신도 분이 주셨다나. 절집 금강사에 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무념무상, 욕심이 없었지요. 근데 속세 집에 와서 보니, '산삼 한 뿌리 주세요란 소릴 왜 안했을까'라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탐ㆍ진ㆍ치. 바로 연락했지요. 스님 왈, "이미 다 먹었습니다!" 아뿔싸, 역시 임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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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음식 전문가인 구례 화엄사 지장암 이정 스님께서 내신 식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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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예불 후 김천 직지사에서 먹었던 아침 공양입니다. 먹었다는 자체로 감격이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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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도림사'는 절집에서 공양은 하지 못했습니다. 세 스님이 된장 등을 만들어 판매한 수익으로, 대웅전 등 불사를 완성한 공덕을 아는지라 요리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누가 그랬던가. 암튼, 가게에서 사용할 반찬 만들어 내는 통에, 요리할 재료가 하나도 없어 퇴짜. 대신 도림사가 지원하는 전통 사찰음식점 <들밥상>에서 먹으라는 소리뿐. 이곳에서 먹은 '청국장 정식' 등의 저염 요리가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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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용월사 홍합국입니다. 시원함에 깜빡 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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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보종찰 송광사 점심 공양입니다. 공양 간에서 종문 스님과 겸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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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선암사 공양간입니다.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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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산 선암사에서 먹었던 별미, 검은 깨 콩국수와 찰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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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천은사'는 음식보다 흰 눈썹 휘날리는 노스님이 기억나는 산사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어선지 차 한 잔 하지 못했습니다만, 조만간 인연될 것으로. 천은사는 시간에 쫓긴 삼사 순례단 틈에 끼어 먹느라 비빔밥 공양을 급하게 했습니다. 함께 했던 일행은 "많은 사람이 먹는 비빔밥치곤 꽤 괜찮았다"고 평합디다. 바뀐 주지 종효 스님이 나눠주지 않고 혼자 옥수수를 먹는 통에 틀어졌다는. 스님, 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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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보림사 '선식'입니다. '토마토 두부 국'과 말차처럼 보이는 '익모초 즙'이 신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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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보림사 아침 공양 때 나온 '익모초 즙'입니다.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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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사 혜신 스님께서 내오신 곡차 상입니다. 익은 김치와 청학동 곶감이 운치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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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남해사'. 혜신 스님과 차를 두고 앉아 있으면서도, 그날따라 간절했던 곡차 생각. 지인에게 "막걸리 두병 사 와라"했습니다. 지인, 얼씨구나! 서둘러 왔대요. 그걸, 일절 곡차라곤 입에 대지 않는 스님께서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위해 '곡차 상'을 차려왔대요. 달랑, 익은 김치와 청학동 곶감뿐이었는데, 아주 운치 있는 상이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을 뛰어 넘은 우리만의 '최고의 밥상'이었지요.
양산 '보리원'은 별장 같은 사찰입니다. 불교 미술가인 연암 스님의 유연한 사고로 인해, 절집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 박살 난 곳입니다. 게다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교회와 마주하고 있어 웃었던 절입니다. 왜냐면 교회는 사방이 트였고, 절은 담장이 둘러쳐진 분위기가 어색했던 탓입니다. 보리원은 전날 과한 곡차로 인해 쓰라린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던 '해장국'이 위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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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노고단 종석대 밑 '우번암'에서 먹었던 점심 공양입니다. 사 가지고 간 김밥에 법종 스님께서 내신 '옥수수' 조합이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많이 맛있게 먹는 게 죄스럽게 여겨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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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실상사 점심 공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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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은 긴 기다림 끝에 공양 직전인데, 도법 스님께선 이미 공양 중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비운 후, 수박까지 맛나게 먹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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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도법 스님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점심 공양 시간. 공양 간 앞에는 신도들이 벌써부터 줄지어 섰습니다. 스님, 이를 보시고 "어디 절밥이 제일 맛있더냐?" 물으시더니, 글쎄 "알아서 요령껏 잘 먹어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혼자 스님들 자리로 냉큼 가지 뭡니까. 한참 차례를 기다리는데, 스님께선 벌써 앉아 공양 중입니다. 그 배신감(?)이란. 스님, 맛있게 드셨지요? 덕분에 수지행 기획실장(실상사)과 비빔밥에 후식으로 수박까지 잘 먹었답니다.
"스님께서 많은 반찬을 내지 못하게 단속하신다."
공양 중, 실상사 수지행 실장 설명입니다. 암, 그래야지요. 절집에서 나오는 '1식 3찬' 혹은 '1식 5찬'은 소담함을 넘어 참 멋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온전히 우리네 몸속에서 무한 에너지로 변환될 예정이니까. 이는 음식의 쓰임새가 100% 작동된 원리입니다. 이외의 것은 거의 식도락 반열입니다. 어찌 보면 다 먹지도 못할 걸, 상다리 부러지게 나오는 '한정식'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업보'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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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범어사 점심 공양입니다. 비빔밥과 콩나물 국 속에는 부처님 정신인 자비심. 즉, 나눔의 미학이 들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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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절밥이 제일 맛있었던 절은?" 질문에 대한, 제 대답입니다. 많고 많은 절집. 특이하고 인상적인 사찰 음식 중, 왜, 굳이, 하필이면, 범어사를 으뜸으로 꼽았을까? 조용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롯이 이것 때문입니다.
"신도뿐 아니라 등산객까지 자연스레 수용하는 나눔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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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서 이게 빠졌습니다. 진도 세월호 순례단을 위해 길 위에서 민머리를 드러낸 남원 선원사 짜장 스님 등이 공양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공양이 바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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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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