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미모맛집] 한국식 포트럭파티가 궁금해? '못밥'이 정답!

양보라 2017. 10.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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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서지초가뜰
창녕조씨 종부가 만드는 한정식
농사 지은 식재료로 만든 찬 일품
추석 연휴 동안 고향이나 휴가지를 오가는 길, 지방 여행길에 들를 만한 ‘오늘 문 여는 미모맛집(미쉐린가이드도 모르는 맛집)’을 매일 한 곳씩 소개한다. 당연히 그날 문 여는 맛집들이다. 오늘은 못밥을 하는 강릉 서지초가뜰이다.
모내기 철 일꾼을 먹이던 '못밥'을 잇는 강릉의 한식당 '서지초가뜰' [중앙포토]
내가 참새라면, 서지초가뜰(033-646-4430)은 방앗간이다. 취재 차, 여행 차 강원도 강릉을 찾을 때마다 꼭 어떻게든 짬을 내서라도 들르는 식당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때는 2014년이었다. 여름 바캉스 특집 기사에 맞는 이미지 촬영 차 5월 중순 강릉 경포해변을 찾았는데, 모델을 찾느라 하루온종일 모래밭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햇볕이 어찌나 강하던지 얼굴은 새카맣게 타고 티셔츠는 땀으로 얼룩졌다. 겨우 촬영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던 찰나 강릉시 공무원에게 "고생스러운 일을 마무리 한 날이면 꼭 들르는 식당"이라는 추천을 받고 찾아간 곳이 강릉 서지마을의 한식당 서지초가뜰이었다.
최영간(왼쪽) 종부와 시어머니인 고(故) 김쌍기 여사. [중앙포토]
경포해변에서 차로 10분을 달려 비포장도로를 빠져나가니 대나무 숲이 옴폭하게 감싼 동네 서지마을이 드러났다. 마을 중간에 한옥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서지마을에 세거지를 둔 창녕조씨 종가댁으로 집안의 종부 최영간(71) 사장은 지금 사는 집 한편에 한식당 서지초가뜰을 차려놓았다. ‘전통 농가 음식’을 내세운 서지초가뜰의 대표 메뉴는 바로 ‘못밥(1인 1만5000원)’. 모내기하는 날 광주리에 이고 가 논두렁에 한상 펼쳐 나눠먹던 음식이다. 최영간 사장은 1971년 조씨 집안 맏며느리로 들어와 결혼 반 년차에 못상을 처음 차려 봤는데, 못밥은 마치 ‘포트럭 파티’처럼 집집마다 한아름 먹을 것을 들고 와 다 함께 나눠 먹는 모양새였단다.
서지초가뜰은 서지마을 일꾼이 쓰던 농막을 개조해 식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앙포토]
“종가집이었던 우리 집안은 모내기날 50~60분의 밥을 해야 했어요. 시어머니는 쌀독에서 끝도 없이 쌀을 퍼냈죠. 다른 마을 아낙은 반찬을 가져 왔어요. 장독대에 고이 묵혀 둔 묵은지를 들고 오기도 하고, 강릉 앞바다에서 뜯은 미역으로 튀각을 만들기도 했죠. 못밥에 떡이 빠지는 날은 없었어요. 포슬포슬한 흰떡에 콩이며 호박이며 넣고 달콤하게 만들었는데 농사꾼이 손으로 잡고 먹기 좋았죠. ”
서지초가뜰 뒤뜰에 있는 장독대. [중앙포토]
최 사장은 시어머니 김쌍기(2016년 작고) 여사로부터 손맛을 전수받아 일꾼의 상차림을 도맡았다. 19년 전 서지초가뜰을 차린 뒤부터는 모내기날이 아닌데도 못밥을 차려내고 있다. 최 사장은 “서지초가뜰의 음식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나눠 먹던 음식을 이어올 뿐”이라고 말했지만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에 단련된 혼밥족은 물론 많은 현대인들에게 서지초가뜰의 못밥은 귀중하고 특별한 밥상이다. 땀방울을 흘린 사람을 위해 넉넉하게 차린 상에는 창녕조씨 집안에서 농사 진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한가득 올라왔다. 집 앞에서 뜯어낸 호박잎에 직접 담근 된장을 발라먹고 떡갈나무 잎에 찐 초당두부에 머위며 곰취며 제철 산나물을 곁들였다. 서지초가뜰 못밥은 사시사철 붉은 팥을 넣은 팥밥이 나오는데 여기엔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숨어 있다. 일꾼이 하루종일 머리를 수그리고 일해야 하니 혈액 순환을 돕고 이뇨효과가 있는 팥을 잔뜩 넣게 됐단다. 못밥에 담긴 정성스러운 마음 때문일까. 심신이 고단하면 흠뻑 땀을 흘린 뒤 맛봤던 못밥이 자꾸 생각난다. 도시서 나고 자라 모내기를 경험한 적도 없는데, 모내기 마치고 일꾼들이 함께 나눠먹는 새참 맛을 떠올리면 입안 한가득 침이 고인다.
못밥에 나오는 팥밥. [중앙포토]
창녕조씨 집안의 전통 가양주 송죽두견주. [중앙포토]
서지초가뜰에서는 못밥 말고도 꼭 맛봐야 하는 술이 있다. 바로 창녕조씨 집안에 300년째 내려오는 가양주 ‘송죽두견주’다. 5월 올라오는 소나무 순을 따다 죽통에 숙성한 술로 마시기 전에 진달래꽃(두견화)를 송송 띄워주는 술이다. 고된 농사일을 끝내고 못밥과 탁주를 싹싹 비운 뒤 논두렁에 누웠을 일꾼들처럼, 송죽두견주 술기운을 핑계로 툇마루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주소는 강원도 강릉시 난곡길 76번길 43-9. 다른 대부분의 미모맛집과 마찬가지로 남은 연휴 내내 영업을 한다.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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