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 이 운동화, 못생긴 게 멋이라네

이도은 2017. 9. 19.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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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바지·점퍼 유행과 발맞춰
투박하고 꾀죄죄한 스니커즈 인기
한 매장서 하루 800여 족 팔리기도
슬림한 일자 청바지, 운동복과 매치
올가을에는 투박한 게 오히려 멋스러운 스니커즈가 트렌드로 떠오른다.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 선보인 발렌시아가의 스니커즈.[사진 퍼스트뷰코리아]
올가을 스타일 좀 아는 남자가 되고 싶다면 시선을 낮춰라. 옷이 아닌 발에 해답이 있다. 바로 스니커즈다. 물론 주요 남성복 브랜드들이 구두 대신 스니커즈를 주력 아이템으로 선보인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17년 초를 기점으로 180도 다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못난이 스니커즈’가 부상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트레킹화처럼 보이는 데다, 또 몇 년을 신발장에 처박아 둔 것처럼 때 탄 것 같은 색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새하얀 색에 납작한 밑창이 특징이던 과거 스니커즈와는 영 딴판이다. 이 둔탁하고 낡은 운동화의 등장에 업계는 대놓고 ‘못난(Ugly)’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패션 피플이 꼭 소장해야 할 아이템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 선보인 에트로의 스니커즈.[사진 퍼스트뷰코리아]
못난이 스니커즈에 포문을 연 건 스포츠 브랜드다. 아디다스가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뮤지션 카녜이 웨스트와 각각 협업한 ‘오즈위고(Ozweego)’ ‘이지 러너(Yeezy Runner)’에다 리복이 베트멍과 손잡고 만든 ‘인스타 펌프 퓨리(Insta Pump Fury)’가 대표 3인방으로 꼽힌다.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 선보인 베트멍의 스니커즈.[사진 퍼스트뷰코리아]
예쁘지 않아서 더 눈이 가는 이 스니커즈들은 모델 카일리 제너, 지지 하디드 등 패셔니스타들이 신고 나오면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고, 마니아들 사이에선 반드시 소장해야 할 아이템으로 꼽혔다. 국내에서는 서울 청담동 편집숍인 분더샵이 2017년 1월 독점 판매한 인스타 펌프 퓨리(베트멍 협업) 800여 족이 판매 당일 전부 팔리는 기록을 낳았다.

이쯤 되자 럭셔리 브랜드들도 옆 동네 불구경하듯 무관심하기가 힘들게 됐다. 발렌시아가를 필두로, 에트로·디올 옴므·랑방·디스퀘어 등 웬만한 패션하우스들이 달라진 트렌드에 동참했다. 특히 트렌드 선두주자인 구찌가 2018 크루즈 컬렉션에서 그간의 스니커즈와 전혀 다른, 투박하고 때 탄 스니커즈를 선보이며 정점을 찍었다.

편안한 옷차림이 진짜 쿨한 것

베트멍과 협업한 인스타 펌프 퓨리를 신은 가수 지드래곤.[사진지드래곤 인스타그램]
요즘 트렌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발렌시아가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못생긴 것이 진짜 멋진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절대 역설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못난이 스니커즈의 등장에는 최근 유행 키워드가 모두 응축돼 있다. 몇 년째 자리를 굳혀 가는 스트리트 패션의 강세가 가장 먼저 꼽힌다. 분더샵의 연문주 바이어는 “허벅지와 허리를 죄어 오는 날렵한 슈트 대신 대신 헐렁한 바지와 큼지막한 점퍼가 대세가 되면서 여기에 맞춰 신발이 달라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체적인 균형에 맞춰 운동화 역시 사이즈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놈코어 스타일의 확대도 한몫했다. ‘남과 다르게, 더 멋지게 입어 보겠어’라는 게 일반적 욕망이라면, 놈코어 스타일은 남들과 비슷하면서도 편안한 옷차림이 진짜 쿨하다는 걸 표방한다.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를 신은 무심한 옷차림이 오히려 멋지다는 공식이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패션쇼 피날레에서 삼선 운동복(마크 제이컵스)이나 맨투맨 티셔츠·반바지(스콧 스턴버그)를 입은 건 대표적인 예다.
2018 디올 옴므 봄·여름 컬렉션 제품.[사진 퍼스트뷰코리아]
이와 함께 요 몇 년 이어지고 있는 복고 무드가 방점을 찍었다. 못난이 스니커즈를 구분 짓는 두툼한 고무창은 1982년 뉴발란스의 990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이지 러너는 98년 아디다스가 만든 ‘EQT 솔루션’에서 영감을 받아 나왔다. 영국 매체인 비즈니스오브패션이나 가디언 등에서는 아예 ‘옛날 아버지들이 마트 갈 때 신는 운동화’라는 의미에서 ‘대드 슈즈(Dad Shoes)’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일부러 낡고 때 탄 듯한 스니커즈 역시 뽀송뽀송한 새 제품보다 세월의 흔적을 인위적으로나마 드러낸 것이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과도 잘 어울려

투박한 스니커즈에는일자 라인 청바지가 가장 무난하다. [사진 퍼스트뷰코리아]
못난이 스니커즈는 스타일링 난이도로 따지자면 중상급이다. 이영표 패션 컨설턴트는 “모양이 워낙 튀어서 시선이 저절로 간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최대한 무난하게 신으려면 일자 슬림 라인의 청바지나 운동복 바지와 짝지으라”고 제안한다. 상대적으로 재킷이나 티셔츠는 품이 넉넉하더라도 어색함이 덜할 수 있다. 만약 밑창이 컬러풀할 땐 그중 한 가지를 상의 컬러와 맞춰도 좋다.

좀 더 멋스럽게 입고 싶다면 서수경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일단 비즈니스 캐주얼에 도전할 것. 길이가 짧고 칼라가 없는 블루종 점퍼에 체크 바지, 셔츠와 카디건 같은 비즈니스 캐주얼과 의외로 어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바지통 역시 스니커즈의 묵직함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낙낙한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서 스타일리스트는 “운동화 컬러와 맞춰 아래위를 통일하고 양말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고수다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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