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향한 샤넬의 오디세이

2017. 7. 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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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to the ancient greece

샤넬 크루즈 2018의 행선지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였다

늘 새로워야 하고, 새롭지 않으면 곧바로 ‘올드 패션’으로 버려지기 일쑤인 패션계. 그런 가운데 칼 라거펠트는 영감의 방향타를 틀어 패션을 포함한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이 된 세계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움 속에 또 다른 새로움이 빚어지고 있는 패션과 모더니티의 근원지. 바로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의 기준은 오늘날까지 유효합니다. 당시에 표현해 놓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요. 고대 성전의 기둥들은 말할 것도 없죠. 사실상 르네상스 시대는 고대 문명을 기반으로 이뤄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대 문명이 지닌 힘과 의외성은 젊은 세상을 보여주죠. 관대하지 않은 신들의 모습처럼요.” 칼 라거펠트가 컬렉션 노트에서 밝혔듯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브리엘 샤넬 역시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 심취해 있음을 떠올릴 수 있다. 그녀의 오래된 캉봉 아파트에 놓여 있던 1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 없는 비너스 토르소 상을 컬렉션 초대장 커버 이미지로 사용한 것부터가 힌트였다.

그랑 팔레 쿠르베 갤러리 안으로 들어온 고대 그리스 로마 신전과 부활한 여신들을 연상시킨 피날레.

초대장이 안내한 그곳, 그랑 팔레의 쿠르베 갤러리(Galerie Courbe)에 도착해 쇼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잠시 두 눈을 의심했다. 지난 3월 레디 투 웨어 컬렉션 때는 로켓 발사대를 그랑 팔레 1층에 들여놓더니, 이번엔 아예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혹은 수니온 곶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의 일부를 통째로 들여다놓은 듯 초현실적 풍광이 펼쳐졌다. 11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의 일부와 부스러진 석회암이 로즈메리와 올리브나무 사이사이 흩어져 있었고, 홀을 전체적으로 채우고 있는 빛은 에게해의 석양이었다. 그곳은 분명 파리가 아니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디세이>가 탄생한 곳,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자 희랍인 조르바의 열정이 움튼 곳, 선박왕 오나시스의 고향, 마리아 칼라스의 풍부한 성량의 목소리가 탄생한 곳, 고대 여신들이 그네들의 아름다움으로 역사와 운명을 좌지우지 뒤흔들던 신화가 태동한 그곳, 고대 그리스!

샤넬의 앰배서더로 초대된 키이라 나이틀리, 캐롤라인 드 메그레, 엘리 밤버.

샤넬 앰배서더 키이라 나이틀리, 안나 무글라리스, 캐롤라인 드 메그레, 엘리 밤버, 이자벨 위페르, 마린 백트 등 이곳을 찾은 셀러브리티들과 전 세계에서 초대된 프레스,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에게해를 항해한 후 저녁놀이 질 무렵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 막 도착해 파르테논 신전에 다다른 양, 상기된 얼굴로 파리 속으로 옮겨온 신전에 발을 내디뎠다. 쇼가 시작되자 거대한 대리석 기둥 사이로 그리스 신화 속의 모든 여신들이 걸어 나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룩들이 펼쳐졌다. 트위드와 저지, 실크와 리넨, 레이스와 크레이프 소재의 부드러운 드레이핑, 우아하고 하늘거리는 헬레닉 실루엣이 모던하게 재해석됐다. 가공되지 않는 프린지에 더해진 화려한 자수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둥 모양의 힐이 달린 글래디에이터 샌들은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샌들을 상기시키는데, 비비드한 컬러들이 모던한 변주를 이루고 있었다. 주얼 장식의 금빛 완장, 고대 동전을 응용한 단추, 릴리프 니트와 메탈 장식의 올리브 잎 모양 파이예트, 인공 조개 장식, 여신들의 장식적인 머리띠, 부드러운 여신의 드레스…. 룩 하나하나에서 신화 속 여신들의 모습이 연상됐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닮은 애리조나 뮤즈,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닮은 린지 윅슨, 승리의 여신 니케를 닮은 빙스 월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될 만큼 아름다운 여신 헬레네를 닮은 비토리아 세레티, 미네르바, 에로스, 아레스, 헤르미오네, 에우프로시네 등 고대 여신들이 동시대 패션 신에 모두 부활한 듯했다.

스파르타 전사의 복식 을 연상시키는 금빛 주름 스커트.

릴리프 니트와 파이예트 장식, 장식적인 머리띠로 완성한 여신 룩.

런웨이 중반부에는 트로이의 전쟁 신을 연상시키듯 스파르타 전사의 톱이나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스커트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피날레 신에 가까워질수록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정통 복식에 가까운 화이트 드레스들이 다양한 실루엣과 디테일의 변주로 펼쳐졌다. 그러나 이번 크루즈 컬렉션의 런웨이를 관통하는 가장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 모든 룩을 창조한 칼 라거펠트는 여신들을 재현하고 부활시키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모던하게 당대의 코드로 재해석함으로써 그리스 여신의 룩을 스트리트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룩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통해 “저는 사실대로 똑같이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나름의 방식대로 연출하죠. 이번에도 저만의 그리스 문명을 탄생시켰죠”라고 밝혀 단순히 고증하는 개념이 아니라 고대 유산 위에 자신의 새로운 감각을 가미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하는 컬렉션임을 상기시켰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동전과 장신구 문양을 그대로 버튼과 버클 장식으로 활용했다.

고대 그리스식 소매에 드레이핑 장식이나 주름 장식이 들어간 숄더 형태를 더해 모던하게 라인을 완성했고, 허리 라인에는 벨트로 포인트를 줘 현대적인 실루엣을 가미했다. 니트 웨어 위의 모티프들은 고대 화병이나 프레스코 벽화에서 등장하는 프리즈(Friezes; 방이나 건물의 윗부분을 그림이나 조각을 이용해 띠 모양으로 장식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페일 혹은 오커 색 트위드 소재를 사용해 풍만한 크로스오버 코트와 골드 링이 달린 끈으로 벨트를 묶어 연출한 원피스는 고대 양치기들이 입었던 순박하고 투박한 원피스를 연상시켰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연상시키는 부엉이 장식 버튼이나 월계수 가지 모양을 활용한 더블 C 로고, 고대 주화를 그대로 적용한 단추 장식 등, 곳곳에 상징적인 디테일을 심었다. 이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칼 라거펠트식의 여행 방식이며,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창조 방식이다. 영원 불멸의 아름다움을 향한 그의 열정은 샤넬 정신을 문명의 시작점인 고대 그리스와 접목시킴으로써 또 하나의 영원 불멸한 패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에디터 최순영

사진 OLIVIER SAILLANT,BENOIT PEVERELLI

제공 CHANEL

디자인 전근영

본 공식 행사 취재는 글로벌 샤넬 사의 주관과 초청에 의한 것이며, 본지의 경비 부담 하에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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