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화가' 황재형, "알몸의 선탄부는 그리지 못했지만.. " '

손영옥 선임기자 2017. 5. 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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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 나는 전달자야. 양심에 거리낄 게 없어. 이 문을 열면 변태라는 소문은 나겠지. 그럼 어때. 예술가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황 작가에게 수상 기념전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듯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 놓았다.

'광부 화가'가 돼 탄광촌의 풍경과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줄기차게 그려온 그가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나름의 변호인 것이다.

광부들의 삶과 탄광촌 풍경, 주변 산하를 그린 80여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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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 '황재형'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황재형 작가 . 손영옥 선임기자

'웃기지 마. 나는 전달자야. 양심에 거리낄 게 없어. 이 문을 열면 변태라는 소문은 나겠지. 그럼 어때. 예술가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벌어진 판자 문 틈새. 희미하게 여체의 실루엣이 보였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새 나왔다. 밀까, 말까. 문고리를 쥐고 30분을 망설였다. 안에는 ‘여성 광부’로 불리며 광산에서 석탄을 선별하는 일을 하는 ‘선탄부(選炭婦)’ 아주머니 3명이 탄가루를 뒤집어 쓴 몸을 씻고 있었다. 선탄부는 광부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생계를 책임진 탓에 탄 고르는 일에 ‘특채’된 여성이다. 그들의 ‘숭고한 노동’을 그리고 싶다는 예술가적 욕망이 솟구쳤다. 스케치를 하기 위해선 문을 밀어야 했다. 하지만 끝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광부화가 황재형(65)씨의 수상기념전이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상은 박수근의 고향인 양구군이 제정해 지난해 첫 수상자를 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황 작가에게 수상 기념전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듯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 놓았다. 돈이나 명예보다는 인간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말로 해석이 됐다. ‘광부 화가’가 돼 탄광촌의 풍경과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줄기차게 그려온 그가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나름의 변호인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느꼈으면 됐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무슨 명예를 얻으려고 하느냐는 자책이 예술가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끝내 눌렀다”면서 “그 어머니들의 애환이 녹아 지금 이 시대를 만든 것 같다. (그 마음을 따라)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알몸의 선탄부는 그리지 못했지만 그들의 강인한 모성, 진정한 노동의 모습은 더욱 리얼하게 화폭에 담겼다. 예컨대, 마스크를 하고 머리에는 수건을 두른 채 거의 눈만 드러낸 얼굴을 한 ‘선탄부 권씨’는 오는 28일 홍콩 경매에 출품될 정도로 인기 작품이 됐다.

황 작가는 전남 보성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나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작품 소재를 얻기 위해 강원도 탄광촌을 드나들다 1980년대 초 태백시에 아예 정착했다. 정동탄광·사북탄광 등지에서 광부 생활을 체험하면서 고도산업사회에서 소외된 탄광촌 주민들의 삶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화폭에 옮겼다. 태백에서 ‘그림 화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민판화운동, 벽화운동 등을 펼쳤다. 1982년 이종구·송창 등과 ‘임술년’ 동인으로 활동하는 등 민중미술 작가로 꼽힌다.

광부, 1984년, 목판화. 박수근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광부 화가 30여년 화업을 총정리하는 데 무게를 뒀다. 광부들의 삶과 탄광촌 풍경, 주변 산하를 그린 80여점이 나왔다. 광부의 초상화, 막장에서의 점심 등 광부들을 그리던 작가는 탄광촌 주변 풍경으로 시선을 확대했다. 풍경은 온통 시커멓지만 희망처럼 때론 파란색, 때론 노란색이 일렁인다. 이를 테면 아파트 불빛이든, 개천에 비친 저녁노을이든 어딘가에는 노란색을 칠하는데, 울음을 토하듯 강렬하다.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어 검은색의 보색인 노란색을 써요. 모든 희망은 갈등 속에서, 아프게 탄생하지 않나요.”

'상동의 오르막길', 2014년 겨울,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과 공통점이 있을지 물었다. 박수근의 작품은 덧바르고 덧발라 화강암의 표면처럼 생긴 두터운 마티에르가 특징이다.
“마티에르가 주는 질감이 촉각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정신적이에요. 박수근은 그걸 알았어요. 제 작품에서도 사람들이 정신성을 느꼈으면 합니다.”

그런 정신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도한 신작을 오는 가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좀 센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궁금하다. 전시는 내년 4월 15일까지.  양구=손영옥 선임기자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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