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바다'라니,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오마이뉴스 글:김종성, 편집:김대홍]
▲ 자전거타고 신나게 달리기 좋은 중랑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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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수려한 산수와 맑은 물을 자랑하던 중랑천은 조선시대에 쓰인 이름이며 긴 물줄기답게 한천·서원천·송계천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시의 진산 불곡산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를 지나 서울로 들어와서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의 도봉구·노원구·동대문구 동네를 품고 흐르다 하류부에서 청계천, 성동구 살곶이 다리를 지나 한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총 길이는 36.5km로 교량도 20개나 있는 큰 하천이다.
중랑천은 한강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천변 주위로 높은 병풍처럼 둘러선 아파트들, 여름 장마철 폭우가 내리면 둔치가 물에 잠긴 모습이 제일 먼저 뉴스에 나오고, 벚꽃나무들이 늘어선 시민들의 쉼터와 운동시설이 강 따라 동네 따라 이어져 있는가 하면, 한강을 둘러싼 강변도로처럼 도심을 오고가는 동부간선도로가 중랑천을 에워싸고 있다.
양주시 불곡산 자락 마을에서 알게 된 중랑천의 정겨운 이름 '샘내'
▲ 중랑천의 발원지 불곡산과 풋풋한 산북동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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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북동에서 알게된 중랑천의 다른 이름 '샘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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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답게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양주시와 의정부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꺽정이 활동했다 하여 임꺽정봉도 있다니 흥미롭다. 의정부에 살았던 내 아버지에 의하면 경기도 양주는 무척 큰 동네로, 지금의 서울 동북부 지역의 너른 동네 도봉구와 노원구도 1960년대까진 모두 양주 땅이었다고.
마당이 있는 단층의 작은 집들과 텃밭, 오래된 연립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북동에서 중랑천의 다른 이름을 알게 됐다. 중랑천의 아명(兒名)을 알려준 건 동네 주민이 아니라 간판을 보고서. 샘내 이발관, 샘내 두부마을, 샘내 미용실... 샘내 이발관에 들어가 이발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중랑천이 맞단다. 이 동네에선 옛날부터 중랑천이라는 말보다 샘내라고 불렀다고. 오래전엔 맑고 깨끗한 샘이 나와 주민들의 고마운 식수로 쓰였으리라. 참 정다운 우리말 하천 이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고, 산북동이라는 작은 동네가 더 정겹게 다가왔다.
▲ 풋풋한 풍경이 펼쳐지는 중랑천 상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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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변 동네 주민들에게 봄소식과 함께 즐거움을 전해주는 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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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축제를 하는 다른 동네과 달리 경기도 양주 땅은 꽃샘추위의 시샘으로 이제야 봄이 온 듯했다. 천변 곳곳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어 다가가 보니 쑥과 냉이, 소리쟁이 등 각종 나물을 캐고 있었다.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는 정원이나 밭이 아니라,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천변이나 들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봄의 상징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소박한 나물과 들꽃이라는 사실도. 봄의 전령사 보랏빛 제비꽃, 노란 민들레도 꼭 사람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핀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말고 천변에 내려서 자전거는 뉘여 놓고 헬맷을 쓴 채로 나물을 캐는 사람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개천위에 놓인 작고 수수한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모습도 봄 풍경과 잘 어울렸다.
부대찌개가 생겨난 동네, 의정부
▲ 특화거리인 부대찌개 골목이 있는 의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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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를 지나면서 물길이 넓어지는 중랑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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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에서만 볼 수 있는 정다운 징검다리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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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시들과 별다를 게 없는 모습의 의정부는 왠지 낯설지 않은 곳이다. 북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온 동네여서 그렇지 싶다. 6.25전쟁이 터지자 내 할아버지는 일가족을 데리고 의정부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는데, 이유는 전쟁이 끝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피란 통에 내겐 고모, 아버지에겐 여동생, 할아버지에겐 어린 딸이 병을 얻어 죽고 말아 한 집안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당시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전쟁을 선동했지만 막상 전쟁이 터지자 누구보다 먼저 도망친 이승만에게서 보듯, 그럴듯한 명분으로 전쟁이나 군사적 행동을 말하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될 자들이 대부분이다.
일가족이 의정부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미군부대가 진주해 있어서였는데, 미군부대 주변으로 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어서였단다. 당시 10대 초반 나이의 아버지는 사춘기 시절 겪는 자아에 대한 고민과 반항을 해보지도 못한 채, 미군부대 '슈샤인 보이 (shoe shine boy)'일을 하며 식구들의 생계를 도와야만 했다. 그런 미군부대에서 나온 식재료를 모아 만든 게 부대찌개의 원조다.
당시 미군들이 먹다 남은 혹은 버린 소시지와 햄 조각으로 만든 음식은 부대찌개가 아닌 '꿀꿀이죽'으로 불렸단다. 의정부 시내엔 부대찌개 식당들이 모여 있는 특화 골목이 있다. 비극적인 역사 속의 음식이 세월이 지나고 입맛이 변하면서 지역의 대표음식 혹은 전국적 대중음식이 된 걸 보며 아버진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을 마음이 안 생겨 가까이에 있는 의정부 제일 시장으로 갔다. 이름마냥 정말 의정부 사람들이 다 온 듯 북적이는 큰 장터였다.
'갈대의 바다'라고 불렸던 중랑천 중류
▲ 천변의 너른 꽃 공원, 서울 창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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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의 바다'라고 불렸던 중랑천 중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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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 기관은 생태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중랑천을 둘러싼 동부간선도로를 2026년까지 지하화 한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지상도로를 걷어내고 난 뒤 중랑천 일대는 여의도공원 10배 규모의 '친환경 수변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니 기대가 크다.
저 앞으로 수도권의 명산 도봉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랑천 건너편엔 돌산으로 유명한 수락산과 불암산이 마주보고 있다. 천변에 자리한 꽃 공원 '창포원(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은 꼭 들러야 할 명소다. 다양한 꽃들과 산책로가 도봉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공원이다. 특히 5월이면 공원 전체가 붓꽃으로 수를 놓는 곳으로 유명하다.
도봉구나 노원구 등 서울 동북부 지역은 모두 경기도 양주 땅이었다고 의정부에 살았던 아버지가 알려준 게 생각났다. 찾아보니 정말 과거 이들 지역은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었다. 노해(갈대 蘆, 바다 海)면이라니 갈대숲이 얼마나 풍성하고 넓었으면 갈대의 바다라고 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동부간선도로와 아파트, 콘크리트 제방으로 둘러싸인 중랑천에 몇 안남은 갈대와 물억새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애처롭게 보였다.
▲ 모래톱이 풍성한 중랑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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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알 굵은 잉어가 많이 살기로 유명한 중랑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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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엔 어른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사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작은 다리 위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싶으면 다들 물고기 구경을 하는 것이다. 모래밭이 풍성하고 물가에 수초가 많아 물고기들이 사는데 좋고 2008년부터 낚시를 금지해서 잉어들이 맘껏 산다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전언이다.
산란철이라 그런지 알을 낳을 수초를 찾는 잉어가 한강에서부터 올라와 개천을 가득 메운 풍경은 생동감이 넘쳤다. 잉어들이 저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몸부림을 치는데, 암컷 잉어들이 알을 수초 밑 물속에 뿌리려는 몸짓이라고 한다. 물에서 뛰노는 잉어를 따라 하려는 걸까, 바지를 걷어 올려붙인 아이들이 물가에 들어가 뛰놀고 있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였다.
느티나무가 함께 사는 중랑천 벚꽃길
▲ 벚꽃 도서관이 있는 중랑천 벚꽃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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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랑천 하류 철새보호지에서 만난 눈이 파란 중대백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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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만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살곶이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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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동네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느티나무란다. 원래는 벚꽃나무가 살았는데 노태우 정권시절 큰 장마가 나서 둑이 넘칠 뻔 했단다. 그래서 수해를 막고자 튼실한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품이 넓은 느티나무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내주어 주민들이 좋아한단다. 중랑천 벚꽃길엔 재밌게도 벚꽃 작은 도서관이라는 공공도서관이 있어 산책길이 더욱 풍성했다.
천변에 서있는 큰 팻말로 중랑천 하류가 철새보호구역임을 알게 됐다. 중랑천 하류지역은 고방오리·쇠오리·흰죽지·청둥오리·논병아리·깝작도요·백할미새·괭이갈매기 등 다양한 새들이 찾아온단다. 괭이갈매기는 서해바다에 사는 새인데 설마 여기까지 찾아올까 의문이 들었지만 곧 풀렸다. 정말 부리가 노란 괭이갈매기가 하천 가운데 홀로 앉아 있었다. 몸이 홀쭉한 게 힘들게 멀리서 날아온 티가 났다. 먹이를 찾아 날아온 것이겠지만 모험심 많은 기특한 녀석이었다.
긴 여정을 마치며 비로소 한강으로 들어서는 중랑천. 아쉬웠다는 듯 마지막까지 정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자리한 정겨운 돌다리 살곶이 다리(사적 제160호). 이름도 독특한 살곶이 다리는 조선시대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길었던 다리다. 세종2년(1402년)에 착공해 중단과 공사를 반복하다 무려 62년이나 걸린 사연도 많은 다리다.
매년 개나리 축제가 벌어지는 노란 꽃동산이 된 응봉산(95m)과 서울 숲이 있는 뚝섬도 빼놓을 수 없다. 응봉산은 동네 뒷산처럼 높지 않아 전망대 정자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았다. 중랑천이 한강으로 흘러가는 아득한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봄날이 가듯 유유히 떠나는 중랑천과 이별하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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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9일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 일부 편집된 내용으로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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