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흑백영화, 미국 '제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담다
[오마이뉴스 글:김규종, 편집:곽우신]
조금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채워준다. 삶의 양상은 매시기 다른 법이고, 그것에 따라서 윤리와 도덕, 상식과 통념도 변하기 마련이다. 1962년 영화 <앵무새 죽이기>는 이런 점에서 견본 같은 작품이다. 한 편의 영화 안에 다채로운 정보와 사유, 인식과 주제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앵무새 죽이기>의 핵심적인 문제는 제국(帝國) 아메리카의 흑백갈등 혹은 인종 문제다. 영화는 1865년 남북전쟁이 종결되었음에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백인 우월주의와 흑인차별 문제를 기둥 줄거리로 진행된다. 제국의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는 적잖다. 그것은 미국의 인종 문제나 흑백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를 시공간 배경으로 삼아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결혼문제를 천착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그러하다. 이 문제를 한층 다채롭게 들여다본 영화는 2004년에 개봉한 <크래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사건에서 드러난 인종 문제를 다룬 <크래쉬>는 흑인과 백인은 물론이려니와 히스패닉과 아랍인, 한국인까지 등장한다.
세계의 용광로를 자임했던 세계제국 미국이 제구실하지 못하는 21세기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영화가 <크래쉬>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1년에 나온 영화 <헬프>를 거명할 수 있다. 미국의 남부도시 미시시피 잭슨을 배경으로 한 <헬프>는 중산층 백인 여성들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날카로운 풍자의 칼날로 포착한 희극영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앵무새 죽이기>의 시간과 공간
ⓒ 유니버설 스튜디오 |
주지(周知)하는 것처럼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로 통칭(通稱)하는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된다. 1933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내세우면서 대공황의 출구전략을 마련한다. 따라서 <앵무새 죽이기>는 대공황으로 인한 실직과 빈곤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암울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30년 세월이 지나 영화가 제작된 1962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불린 동서냉전의 정점이자, 비둘기파 대통령인 케네디가 암살당하기 1년 전이기 때문이다. 그해는 소련과 미국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까지 치달아간 시점이자, 마틴 루서 킹 목사(1929-1968)가 열렬하게 흑인 인권운동을 전개한 시점이기도 하다.
영화의 사건과 복합적인 진행
ⓒ 유니버설 스튜디오 |
이쯤이면 명민한 독자는 '아하, 법정(法庭)영화로군!' 하고 되뇔 것이다. 그런데 <앵무새 죽이기>는 법정영화로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이 백인 여성 마엘라 강간사건을 둘러싼 법정공방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 않는 탓이다. 어쩌면 이것이 <앵무새 죽이기>가 가지고 있는 숨은 미덕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흑백갈등 외에도 어린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과 그들이 커나가는 성장영화의 요소가 있다. 강간사건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사건이 경과하는 1년 남짓한 세월 동안 아이들이 대면하는 세태와 풍경이 영화 곳곳에 포진하여 웃음과 감동을 전달한다. 가난한 소년 커닝엄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스카우트가 무례를 범하자 흑인 하녀는 아주 따끔하게 아이를 혼내준다. 우리는 거기서 에티커스 집안의 평등한 흑백관계와 자녀훈육을 목도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아메리카 판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문제도 다룬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에 홀로 거주하는 래들리를 둘러싸고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와 아이들의 호기심이 사건 진행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누구에게도 해코지하지 않지만, 홀로 은둔한다는 이유만으로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당대 미국 현실이 적실하게 드러난다.
앵무새와 어치의 은유
ⓒ 유니버설 스튜디오 |
여기서 관객은 어치와 앵무새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구에게도 해(害)를 끼치지 않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앵무새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곡식을 축내고 사람에게 해가 되는 어치는 죽여도 좋다는 것이 에티커스의 생각이다. 영화의 제목은 이런 점에서 사건 진행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것도 은유(隱喩)의 형식으로!
강간 사범으로 영치된 톰을 열렬하게 변호하지만 에티커스는 패배한다. 그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이 톰과 그의 가족을 기다린다. 첫 번째 앵무새로 등장하는 톰 로빈슨. 에티커스가 흑인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마엘라의 아버지 이웰은 젬과 스카우트 남매를 해코지한다. 절체절명 위기일발(危機一髮)의 순간에 히키고모리 래들리가 개입하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전모를 확인한 보안관 헤크는 사건종결을 주장한다. 정의의 사자 에티커스는 그에 맞서서 법정심판을 말한다. 그들 사이의 대화는 기실 어치와 앵무새에 관한 것이다. 무고한 래들리를 보호하려는 보안관과 아이들에게 앵무새 이야기를 들려준 변호사의 대화는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룬다. <앵무새 죽이기>가 소유하고 있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제국의 사법체계와 흑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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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커스는 그런 분위기에서 톰의 변호를 진행한다. 증인 신문으로 그는 톰의 무죄와 마엘라의 무고(誣告)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낸다. 최후진술에서 에티커스는 양키 아메리카의 불완전한 사법제도를 언급한다. 그는 배심원단에게 올바른 판단으로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두 시간 넘는 갑론을박(甲論乙駁) 속에 배심원단은 평결을 내린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이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곳곳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법정에서 스카우트와 젬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딜은 흑인 목사와 함께 2층에서 재판과정을 본다. 그리고 배심원단의 판결과 폐정, 에티커트의 퇴장 순간까지 아이들은 흑인들과 동석한다. 아마도 그것은 미래의 제국 사법제도는 분명 개선될 것이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영화가 던진 생각할 거리
젬은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 어린 소년이 흑백갈등이나 인종편견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얼마나 어디까지 정당한지, 법률적 정의와 대중의 법 감정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능력이 없는 탓이다. "법은 윤리의 최소한"이라는 명제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많이 어리기 때문이다. 법이 밝혀낼 실체적 진실의 미미함을 깨닫기에는 미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에티커스가 스카우트에게 전해준 명제에 동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에티커스에 따르면, 나의 관점이 아니라, 타자의 관점에서 관계와 사건을 생각하고 헤아려야 비로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 번 만 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앵무새 죽이기>가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55년이 흘렀다. 킹 목사가 백인 극우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에게 암살당한 지 어언 49년이 지났다. 그동안 흑인들의 인권은 다소 신장하였지만, 흑백갈등은 장전된 기관총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2017년 대명천지에 인종 문제가 아직도 엄존하고 있음은 우울하고 비극적인 일이다.
얼마 전 발생한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유색인종 차별사건은 상징적이다. 백인우월주의와 남성성, 미국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21세기 외계인 트럼프의 등장은 제국 아메리카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한다. 제2, 제3의 유나이티드 항공사 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앵무새 죽이기>가 주장하는 타자의 시선과 사유, 인식과 행위에 눈과 가슴을 열어야 한다. 상호존중과 상호이해가 결여한 어떤 사회도 국가도 더는 존립 불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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