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없이 주어지는 평화·안락, 죽음과 같은 것
[오마이뉴스이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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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 |
ⓒ 이상옥 |
눈빛마저 길들여지지는 않는
-이상옥의 디카시 <정주동물원의 수사자>
참 오랜만에 동물원에 가봤다. 오늘은 수업도 없는 날이라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정주경공업대학교 앞에서 택시를 타니 십분 만에 정주동물원에 도착했다. 전에 한 번 왔다가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아 되돌아간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여권을 잘 챙겨서 왔다.
중국에서는 기차를 탈 때나 박물관 같은 곳을 관람할 때는 반드시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정주동물원 입장료는 30위안(한화 약 5000원)이었다. 정주동물원이라고 특별하겠는가마는 우리에 갇혀 있는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평원을 질주해야 할 사자나 코끼리를 보면서 갇힌 존재의 실존을 생각해 보았다.
▲ 정주동물원 입구가 웅장하게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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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동물원 호수에 평화롭게 노니는 물오리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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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우리에 갇힌 수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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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사자는 잠이 들었고, 수사자도 느긋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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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평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쌍으로 있는 것이 그런 대로 만족스러운지 우리 속에 혼자 있는 수사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우리 속에 갇혀 있지만 암사자와 함께 있는 수사자는 어찌 보면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영역 다툼도 할 필요도 없고, 먹이를 구할 필요도 없이 언뜻 보기에는 평온한 나날이다.
진정한 백수의 왕로서의 영예와 보람
하지만 그건 사자로서의 올바른 생태가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영역을 지키며 거센 역경을 이겨내고 왕좌를 지킬 때 진정한 백수의 왕으로서 수사자의 영예와 보람이 있는 것이지, 아무 노력 없이 주어지는 평화와 안락은 실상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새끼 때는 하이에나의 먹이가 될 뻔하는 위기도 넘기고 무리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젊은 시절 무리를 떠나 떠돌며 혼자 고독과 맞서고 힘을 키워 새로운 사자 무리를 거느리는 제왕이 되고서도 영역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기도 해야 하거늘.
야성을 잃어버린 사자는 더 이상 사자가 아니다. 우리 속에 혼자 고독하게 갇혀 있는 수사자 한 마리만 아직 야성의 형형한 눈빛을 잃지 않고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 안내판에 유독 한글이 병기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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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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