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회의" 비판 일자 장관들 참석조선·해운 구조조정 방안도 논의최순실 사태로 정부 리더십 손상"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 다잡아야"
27일 오전 7시 정부서울청사.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회의장에 들어섰다. 이날 처음 열린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장에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도 빠짐없이 모여 있었다.
일주일 전인 19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선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장관들이다. 강석훈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도 이날은 회의장에 나타났다. <중앙일보 10월 21일자 1·6면>
장관들과 경제수석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문제는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방안, 그리고 부동산 대책이었다. 한국 경제의 핵심 현안이지만 정부의 공식 대응이 지연되면서 불확실성과 시장의 혼선을 키우는 사안들이다. 1시간30분여의 회의가 끝난 뒤 유 부총리는 ‘강남발(發) 부동산 과열’에 ‘선별적·단계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다음달 3일 대책을 확정,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오리무중이던 부동산 대책 관련 원칙과 스케줄이 처음 공식화한 것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 조정 같은 전방위적 수단을 동원하는 건 자제하는 대신 일부 지역만 ‘정밀타격’하는 대응책을 가동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의미다. 이달 말 나올 예정인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윤곽도 드러났다. 3개 조선사별로 ▶과잉 설비·인력 축소 ▶비핵심 자산 매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한 핵심 분야 집중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감자와 대출의 출자전환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민영화와 인수합병(M&A)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회의와 같은 형태의 ‘경제팀’ 모임을 앞으로 매주 갖기로 했다. 격주로 열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 비해 참석 범위는 핵심 부처 장관으로 좁히고, 논의 주제도 핵심 현안에 집중할 계획이다. 위기에 대비한 일종의 신속 대응 체제다.
지금 한국 경제 곳곳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내수도 불안한 가운데 구조조정 여파가 본격화하며 4분기에는 ‘0%대’ 성장마저 위태롭다는 우려가 나온다. ‘버팀목’ 역할을 하던 현대차와 삼성전자마저도 잇따라 부진한 3분기 실적표를 공개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국지적 과열이 빚어지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하면서 가계부채 관리도 발등의 불이 됐다.
일단 위기 대응 체제의 외형은 갖췄지만 문제는 ‘동력’이다. ‘최순실 사태’가 일으킨 파장에 관가 역시 흔들리는 조짐이 뚜렷하다. 한 경제부처 국장은 “다들 맥이 빠지는 분위기”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여소야대 국회에 막혀 행정부 내 무력감이 팽배했는데 핵심 동력인 대통령의 리더십마저 손상되면서 앞날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조기 레임덕, 관료의 ‘복지부동’으로 이어질 경우 실제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특히 정부와 채권단, 기업이 합심해야 하는 구조조정 작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파장이 내년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재완(전 기획재정부 장관) 성균관대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부총리와 장관의 팀워크가 중요하다”면서 “정치 이슈에 흔들리지 말고 부총리와 장관들이 중심을 잡고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다잡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