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오너 2~3세들 '경영 앞으로'

김병수,김경민,강승태 2016. 9. 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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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패션·화장품 등 경영 전면에 나서장남 많지만 차남·딸들 경쟁도 만만찮아

“아직까지 미국, 유럽 등 글로벌 패션 중심지에서 인정받는 국내 패션 브랜드가 드물어요. 우리 패션업체가 갈 길이 멀다는 거죠. 다행히 미국 현지에서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두보’ 반응이 좋은데요.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토종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셋째 딸 박이라 부사장이 밝힌 포부다.

패션업체 세정그룹은 지난 7월 박이라 세정 상무를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박 부사장은 세정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으면서 자회사 세정과미래 대표이사를 겸임한다.

박 부사장은 일찌감치 회사에 입사해 1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미국에서 MBA를 졸업한 뒤 2005년 세정에 발을 들여놨다. 세정 비서실을 거쳐 브랜드전략실장, 세정과미래 총괄이사를 맡아왔다. 2007년엔 세정과미래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캐주얼 브랜드 ‘크리스크리스티’ 출시를 주도했다. 이 브랜드는 중국 쑤저우 메이뤄백화점에 입점하며 중국 진출에 성공해 박이라 부사장이 경영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박 부사장은 그동안 세정그룹 핵심 사업인 유통 플랫폼 ‘웰메이드’ 사업을 맡으며 경영 전면에 나섰고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두보’도 출시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세정은 웰메이드 사업에서만 지난해 4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다. 박이라 부사장은 “한국 기업은 주로 남성 경영인이 이끌어왔지만 패션 업종에선 여성 CEO만의 감성이 필요하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잘 소통해 세정을 국내 대표 패션업체로 성장시키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 재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의 경영권 승계가 활발하다.

창업자 2세 혹은 3세 경영인이 전면에 나서 회사를 이끄는 추세다. 이들은 보다 공격적인 연구개발(R&D)과 사업 다각화 등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낸다는 점에서 전 세대 경영인들과는 차별된다.

경영권 승계 방식 역시 다양하다. 자녀들 모두 경영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오로지 장남만 고집하는가 하면, 딸들을 경영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일부 오너들은 여러 자녀들에게 회사 핵심 사업을 맡겨 후계 경쟁을 시키기도 한다. 물론 일각에선 현재의 기업을 일군 창업주들의 2선 퇴진과 함께 그 자녀들이 대거 업계 전면으로 나서면서 가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 승계 두각

▷세정·형지 등 패션업체 ‘딸들의 힘’

중견기업 2~3세 승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딸들의 약진’이다.

패션·의류업계가 대표적이다. 패션그룹형지, 세정, 영원무역 등 국내 대표 패션·의류업체마다 창업자 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 최혜원 대표는 2008년 패션그룹형지에 입사해 7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았다. 글로벌소싱구매팀, 크로커다일 상품기획실을 거쳐 전략기획실장을 맡은 뒤 지난 6월 형지I&C 대표로 선임됐다. 최 대표는 2014년부터 형지I&C에서 여성복 브랜드 ‘캐리스노트’ 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브랜드를 키워왔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차녀인 성래은 씨는 단숨에 지주사 대표 자리를 꿰찬 사례다.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2002년부터 영원무역에서 근무한 그는 지난 3월 영원무역, 영원아웃도어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 대표를 맡게 됐다. 물론 성래은 대표가 손쉽게 경영권을 물려받을지는 미지수다. 성 회장 첫째 딸 성시은 씨는 영원무역홀딩스 대주주인 YMSA 이사를 맡아왔고, 셋째 성가은 씨도 영원아웃도어 상무로 근무 중이다. 세 딸 모두 경영수업에 한창이다.

화장품업계에선 토니모리 창업주 배해동 회장 장녀인 배진형 씨가 지난 3월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지난해 토니모리 해외사업부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토니모리 지분 8.5%를 보유했지만 1990년생으로 아직 어려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원칙대로 장남 승계

▷아워홈·한국콜마…‘맏아들이 든든해’

물론 아직까진 장남 승계가 대세긴 하다.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이 지난 6월 구자학 회장 장남 구본성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전격 선임할 당시 재계는 시끌시끌했다. 그동안 구 회장 자녀 중 막내딸인 구지은 캘리스코 대표가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했을 뿐 구본성 부회장은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본성 부회장은 지난 3월 아워홈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된 후 불과 3개월 만에 대표이사 자리까지 꿰찼다.

구본성 대표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헬렌 커티스 시카고 본사, 체이스맨해튼은행을 거쳐 LG전자, 삼성물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일했다. 비록 아워홈 지분 38.56%를 소유한 최대 주주긴 하지만 이력 면면을 살펴보면 아워홈에서 일한 경험은 전혀 없다.

때문에 재계에선 일찌감치 경영수업을 받아온 구지은 대표가 아워홈 경영을 물려받을 거란 관측이 많았다. 구지은 대표는 그동안 아워홈 구매식재사업본부장 등 핵심 보직을 맡아오며 경영에 참여했다. 그러다 지난 4월 아워홈 등기임원에서 물러나 관계사인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경영권 승계에서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범LG가의 장자 승계 원칙’이 어김없이 지켜졌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구자학 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셋째 아들이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동생이다. 아워홈은 2000년 옛 LG유통(현 GS리테일)에서 계열분리됐다. 아워홈이 LG유통의 푸드서비스사업부를 인수하는 형태로 회사가 꾸려졌다. 회사 설립 당시 아워홈 지분은 구본성 부회장이 40%가량이었고, 나머지는 세 딸인 구미현, 구명진, 구지은 대표가 나눠가졌다. 이후 구본성 부회장 지분이 38.56%로 소폭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워홈 대주주 자리를 지켜왔다. 구지은 대표 지분은 20.67%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한동안 구지은 대표가 경영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독단적인 경영으로 구설수에 오른 데다 내부 경영진과 갈등을 빚으면서 아버지 눈 밖에 난 것으로 안다. 범LG가 경영문화가 보수적인 만큼 구 회장이 아워홈 최대 주주면서 장남인 구본성 부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중견기업 중에서도 장자 승계 양상을 보이는 기업은 꽤 많다.

한국콜마홀딩스는 최근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장남인 윤상현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윤 사장은 베인앤컴퍼니 이사를 거쳐 2009년 한국콜마 기획관리부문 상무를 맡아왔다. 2011년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한국콜마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건설업계에선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 장남인 최정훈 부사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지난해 대보건설 주택 브랜드 ‘하우스디’ 출범 현장에서도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최 부사장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부동산금융 석사를 취득했다. 현대건설, KTB PE를 거쳐 대보건설 전략기획실장 겸 인프라개발사업본부장을 맡아왔다.

유통업계에선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의 장남 홍정국 전무가 눈길을 끈다. 1982년생인 홍 전무는 현대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땄다. 보스턴컨설팅그룹코리아에 입사해 컨설턴트로 일하다 미국 와튼스쿨 MBA 과정을 마치고 2013년 BGF리테일에 입사했다. 이후 지난해 1월 상무(경영혁신실장) 자리에 오르더니 1년 만에 또다시 전무(전략혁신부문장)로 승진했다.

보수적인 제약업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약업계 R&D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장남 임종윤 사장은 현재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사장직을 맡고 있다. 보스턴칼리지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한미약품 전략팀 과장으로 합류했다. 2010년부터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맡고 있다.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은 창업자인 故 윤용구 회장의 손자이자, 윤원영 회장의 장남이다. 회계사로 일하다 2005년 일동제약에 입사했다. 2014년 4월 일동제약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신약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생활용품 등으로 사업 범위 확장에도 열심이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은 故 허채경 회장의 손자이자 2세 경영인인 故 허영섭 회장의 차남이다. 1998년 녹십자에 입사해 R&D부문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으며 회사의 R&D 방향성을 확립했다. 2013년 기획조정실장(부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영업·생산 등의 현장까지 총괄하다가 2015년 1월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녹십자를 대표하는 사업 분야는 혈액제제와 백신이다. 허 사장은 두 분야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품과 인프라를 높여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자녀 간 후계 경쟁 시키는 경우도

▷SPC 장남·차남 각자 영역서 경쟁

초고속 승진으로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가, 다시 자리를 내놓은 후 6년 만에 CEO가 된 후계자도 있다.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의 외아들 강호찬 넥센타이어 영업총괄 사장이 주인공이다. 강 사장은 2001년 넥센타이어 재경팀에 입사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그룹 승계를 준비해왔다. 2009년 대표이사 부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2010년 삼성그룹 출신 이현봉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되면서 자리를 떠났다. 당시 넥센타이어 측은 “해외 영업 활동을 위해 강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설명했다. 이후 6년간 전략담당 사장으로 일하면서 다시 한 번 경영수업을 받았던 강 사장은 올 2월 강병중 회장과 공동대표에 다시 선임됐다. 넥센타이어 관계자는 “강 사장은 15년간 근무하면서 누구보다 회사를 잘 알고 있다”며 “전문경영인과 달리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할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SPC그룹은 형제간 역활 분담을 통해 2세 경영을 준비하는 중이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두 아들 중 장남 허진수 부사장은 글로벌 해외 전략을 담당하고, 차남 허희수 전무는 그룹 마케팅을 총괄한다.

아직 두 형제 중 그룹 후계자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장남 허 부사장이 허영인 회장에 이어 지주회사 격인 파리크라상 2대 주주다. 하지만 허 회장 지분이 여전히 절대적으로 많은 데다, 핵심 계열사인 삼립식품은 두 형제 모두 비슷한 비율로 지분을 갖고 있다. 허영인 회장 역시 故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주의 차남으로 기업을 부활시킨 만큼 후계구도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재계 분석이다. 차남 허희수 전무는 최근 ‘쉑쉑버거’라고 불리는 미국 ‘쉐이크쉑버거’를 국내에 성공적으로 들여오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허 부사장과 허 전무가 책임경영 차원에서 지난해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삼립식품에 등기임원으로 등재되긴 했지만 후계구도와 관련해 구체화된 것도, 논의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승계 속도내는 이유는

▷대선 앞두고 불확실성 제거 위해

중견기업들의 경영 승계 작업이 예전보다 빨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신사업 추진과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함으로 풀이된다.

중견기업 중 상당수는 유통기업이다. 일부 기업은 수출을 통해 판로를 다각화하고 있지만, 주로 내수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 다수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은 획기적인 변화 없이 앞으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2세 중 상당수는 해외에서 공부한 이들이 많다. 최근 신임 대표로 선임된 윤상현 사장이나 성래은 사장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들은 그간 기존 오너들이 갖고 있는 시각에서 벗어나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회사 어려움을 타개하고 국면을 전환하는 용도로도 ‘2세 카드’는 적극 활용된다. 당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그룹 재건을 위해 두 아들을 계열사 대표로 두는 강수를 택했다. 최근 이렇다 할 활로를 찾고 있지 못하는 아웃도어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세들의 젊은 감각이 그룹 전반에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란 기대감이 인사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중견기업 2세들은 단순히 경영수업을 받던 것에서 벗어나 그룹 내 중책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 일부 기업은 중국 등 신규 시장 개척에 2세를 투입하면서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영 승계에 대한 변수를 미리 제거하기 위한 조치’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대선이 다가오면 표를 의식해 각종 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안이 수면 위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선을 앞두고 경영권 승계 규제가 강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승계 작업을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거나, 대선 이후엔 그 결과에 따라 경영 승계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현대차 등 주요 기업의 승계 이슈가 맞물린 지금, 오히려 중견기업은 여론의 시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 이슈가 점점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세습에 장애가 되는 방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2세 승진을 앞당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창업주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산전수전을 겪은 뒤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 대부분이다.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회사 성장 과정을 지켜본 자녀가 경영을 맡아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영권이 이전되고 적합한 인물이 새 경영자가 된다면 큰 문제가 없다. 승계에 대한 불안 요소가 줄어들면서 기업 활동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세습 차원에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면 부작용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세습 경영이 많은 유럽 기업은 대체로 가족 보유 지분이 많다. 때문에 오너 일가의 배임이 적다. 미국은 가족 세습 기업이 거의 없다. 반면 한국은 지분도 적으면서 경영 활동에 전폭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능력 없는 후계자가 가업을 이어받을 경우 기업은 물론 사회에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만큼 가족 경영 승계 비중이 높은 일본은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들여와 편의점 문화를 일본에 정착시킨 스즈키 전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회장이 대표적이다.

스즈키 전 회장은 일본에선 ‘유통의 신’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올 초 자신의 차남인 스즈키 야스히로를 세븐일레븐재팬 사장 자리에 앉히려다 실패했다. 이후 스즈키 전 회장은 바로 사임했다. 스즈키 전 회장이 아들을 사장 자리에 앉히지 못한 이유는 회사 대주주인 미국 헤지펀드 서드포인트의 대니얼 롭 CEO가 반대한 탓이 크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도 “능력이 부족한 야스히로가 고속 승진을 달리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상인 교수는 “한국은 ‘산업 구조조정’이란 엄청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경제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2세 경영으로 ‘오너리스크’가 부각된다면 국가 경제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오너가 가족에게 기업을 넘길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전문경영인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한국도 전문경영인을 육성해 경영자 시장을 키우면 비합리적 세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신광식 교수 조언도 눈길을 끈다.

대기업도 3세 경영 바람

▷회사 어려울 때 구원투수로 투입

재계 승계 바람은 중견기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대기업들도 경영권 승계에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습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아들 박세창 전략경영실 사장은 지난 8월 그룹의 새 지주사인 금호홀딩스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박 사장은 올 초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3월에는 핵심 계열사 금호산업 사내이사로도 선임된 바 있다. 일각에선 그룹 재건의 마지막 단추인 금호타이어 재인수 작업 등을 앞두고 3세 경영이 더욱 가속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여러 이슈로 뒤숭숭한 한진그룹도 3세 경영이 빨라지는 모습이다. 지난 8월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조양호 한진 회장 장남)은 한진칼의 부동산 관리 자회사인 정석기업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정석기업은 부동산 매매·임대를 주력으로 하는 알짜 비상장사다. 한진칼 자회사인 한진관광도 같은 날 조 회장 차녀인 조현민 진에어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재계에서는 그룹 안팎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 회장이 친족 경영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낀 결과물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조현민 부사장은 지난 7월에는 진에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했고, 조원태 부사장은 연초 대한항공 부사장에서 총괄부사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역시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경영권 승계에 바짝 다가섰다. 정 전무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입사했다. 올해 1월에는 전무 승진과 함께 현대중공업의 일감 수주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화가 3형제들도 3세 경영 시대를 착실히 준비 중이다. 장남 김동관 전무는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이끌고 있으며 차남인 김동원 상무와 김동선 팀장은 각각 금융, 건설 사업 중심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건강 문제와 맞물려 한화그룹의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가 빨리 다가올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재현 회장의 건강 상태를 장담하기 힘든 CJ그룹 역시 ‘포스트 이재현’ 체제를 만드는 데 바쁘다. 이 회장 아들 선호 씨와 장녀 경후 씨는 함께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아들 선호 씨는 지난 4월 결혼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룹 핵심 계열사를 돌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딸 경후 씨는 CJ오쇼핑 과장을 거쳐 현재 남편과 함께 미국에 거주하며 CJ그룹 미주법인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CJ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 회장 건강 문제와 맞물려 올봄부터 법무팀을 중심으로 승계에 대한 여러 검토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병수·김경민·강승태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75호 (2016.09.21~09.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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