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도쿄필 명예음악감독 됐다

도쿄필 홈페이지는 9월 1일자로 정명훈의 공식 직함을 발표하고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한 가족으로 앞으로의 시즌을 계획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한 도쿄필은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다.
정명훈과 도쿄필의 인연은 2000년 시작됐다. 1999년 소니의 오가 노리오 회장이 도쿄필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주목한 지휘자가 정명훈이었다.
오가 회장은 2000년 2월 파리 오케스트라 일본 투어의 객원지휘자로 도쿄에 온 정명훈을 만났다. 그는 정명훈에게 음악감독을 맡아달라고 했다. 당시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등 두 군데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었던 정명훈은 일정 문제로 거절했다.
오가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명훈에게 특별예술고문(Special Artistic Adviser)직을 제안했다. 상근직은 아니지만 상임지위자보다 지위가 높고 악단의 활동 방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였다.
정명훈은 이를 수락했고, 2000년 5월 도쿄필의 특별예술고문이 됐다. 1년 뒤 2001년, 도쿄필은 신세이 니혼 심포니를 흡수 합병하면서 166명의 단원을 보유한 거대 악단으로 재탄생했다.
일본에서 정명훈의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2001년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잡지 ‘음악의 벗’에서 특집기사가 실렸다. 클래식 음악가 전 분야를 망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순위를 발표했다. 정명훈은 17위에 올랐다.
기사에 따르면 1위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2위 레너드 번스타인(지휘자), 3위 오자와 세이지(지휘자), 4위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니스트), 5위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니스트), 6위 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자), 7위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자), 8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피아니스트), 9위 루치아노 파바로티(테너), 10위 요요 마(첼리스트), 11위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지휘자), 12위 리카르도 무티(지휘자), 13위 파블로 카잘스(첼리스트), 14위 마리아 칼라스(소프라노), 15위 호세 카레라스(테너), 16위 게르트 알브레히트(지휘)였다. 전설적인 거장까지 포함한 설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정명훈이 커다란 삽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With My Thanks)’라고 쓰고 리본을 달아 도쿄필 단원들에게 선물한 일화도 회자됐다. 정명훈은 단원들에게 “소리는 바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이 삽으로 여러분 자신 안에 있는 소리를 끊임없이 퍼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정명훈과 도쿄필의 관계는 순풍에 돛단 듯했다. 2003년에는 도쿄필의 첫 내한공연을 이끌었고, 2004년에는 한국, 일본, 프랑스 등 3개국이 합작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했다.
우리나라의 국립 오페라단, 프랑스의 오랑주 축제 위원회, 일본 오페라 진흥회 공동으로 제작한 ‘카르멘’은 7월 말∼8월 초 프랑스에서 먼저 3회 공연을 한 뒤 9월 7∼9일 서울 세종 문화회관, 같은 달 18∼20일 일본 도쿄 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2003년 도쿄에서 만난 도쿄필 악장 아라이 에이지는 “예술고문 정명훈 지휘자는 우리를 교육하고 큰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같은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통해 오케스트라의 힘을 더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명훈이 이끈 도쿄필의 저력이 기본기에 있음을 드러냈다.
정명훈은 특별예술고문과 명예 계관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이번에 명예 음악감독이 됐다. 직함 상으로는 명예직이지만 현재 예술감독ㆍ상임지휘자가 없는 이 오케스트라의 상황상 차기 시즌 준비 등에 관여하고 지휘대에도 많이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명훈은 이달 21일 도쿄오페라시티, 23일 산토리홀, 25일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도쿄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교향곡 6번 ‘전원’과 7번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1일과 23일 ‘황제’를 협연한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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