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하는 이재용의 삼성
비주력 계열사 정리와 과감한 인수합병(M&A) 등으로 이어져온 이재용 체제 삼성그룹의 변화가 막바지 지배구조 개편으로 나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그룹 경영을 맡은 지 2년여 만에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상장, 방산·화학 부문 매각,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같은 작업을 속도감 있게 이뤄냈다. 사업 재편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지배구조 개편이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금융 계열사인 삼성화재가 보유 중인 삼성증권 주식 613만여주(8.02%)를 약 2343억원(주당 3만8200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대로 지분 매입이 완료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증권 지분율은 11.14%에서 19.16%로 높아진다. 삼성생명 측은 “계열사에 분산된 금융 계열사 지분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지만 시장에선 삼성생명이 본격적인 지주사 전환 행보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재벌에 비우호적인 야당이 국회 1당이 된 데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까지 바뀔 경우 각종 제도가 후계구도에 더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 등에선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이 핵심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본다.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되나
▶중간금융지주사법 입법 여부 걸림돌
삼성생명은 이미 수년 전부터 금융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시도를 해왔다. 지난 2013년 말 삼성생명은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이 각각 자사주 166만주, 245만주 매입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두 회사가 자사주 매입을 완료하면 삼성생명이 이를 매입해 금융지주회사 전환 요건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성생명은 지난 1월 삼성전자로부터 삼성카드 지분을 37.45% 인수하며 총 71.9%를 보유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최대 주주 지위에 올라 지주사 요건을 맞췄다.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98.7%)과 삼성SRA자산운용(100%) 등 나머지 핵심 금융 계열사들의 지분도 대부분 들고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남은 과제 중 하나는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의 지분을 늘리는 것. 이 또한 일단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15.98%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지분 확보가 아니라 현재의 금융지주사법이다. 금융지주사법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금융 자회사의 지분을 30% 이상(비상장사는 50% 이상) 보유해야 하고, 1대 주주 지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당장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해선 지주회사가 비금융 계열사의 최대 주주여서는 안 되는데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지분율 7.43%)다. 삼성생명이 2대 주주로 내려가려면 지분 정리 기간(최장 7년) 내에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의 2대 주주는 4.18%를 보유한 삼성물산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 지분 1.63%를 삼성물산에 넘기면 양 사는 각각 지분 5.8%와 5.81%를 보유하게 돼 최대 주주 지위가 바뀌지만, 자금 부담이 문제다. 1.63%의 가치는 최근 삼성전자 주식 가격으로는 약 4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 6월 말 기준 삼성물산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조6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삼성생명의 유배당 보험 가입자에게 주어지는 배당금도 해결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도입이 관건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19.34%)을 그대로 보유한 상황에서 금융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다. 만약 통과되지 않는다면 삼성 측은 금융 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들을 병렬 형식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삼성생명과의 고리를 끊고, 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일반지주회사 하나와 삼성생명 중심 금융지주회사 하나로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했다가 어쩔 수 없이 사업을 나눠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A애널리스트는 “삼성은 중간금융지주사법이 언제든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때를 염두에 두고 지분 정리를 해두는 수순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에선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에 전향적인 입장이지만, 국회 상황은 다르다. 20대 국회에선 야권을 중심으로 반대 분위기가 높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일명 삼성생명법)도 복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총자산(약 250조원)의 3% 넘게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취득 원가로 평가하면 문제없지만, 시가로 평가하면 총자산의 3%가 훨씬 넘는다. 법안 발의 당시 국회 정무위는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주식이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순환출자고리도 해소해야 한다. 현재 삼성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물산’의 순환출자고리가 남아 있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삼성화재가 삼성물산 지분 1.3%를 처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의 자사주를 취득하려 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는다. 공정거래법상 특정 대기업 계열사가 타 계열사의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기존 순환출자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금지돼 있어서다.
자금 여력이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현재 2020년 도입 예정인 새 회계기준(IFRS4 2단계)으로 인해 삼성생명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본 확충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승희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삼성생명은 지급 여력 불확실성과 보험업법 개정안 등으로 단기에 지주사 전환 결정을 내리기에 위험 요소가 많다. 삼성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법 개정 위험도 있어 지배구조 변경에 대한 의사결정을 현시점에서 내리기에는 실익이 없다”고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그룹 사정에 밝은 A교수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삼성 측이 이재용 체제 안정화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싶겠지만 자칫 재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밑그림은 전자·금융 양대 축?
▶‘삼성홀딩스’ 등장하니 관심
삼성생명의 움직임을 재계에서 예의 주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금융지주사 전환과 함께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큰 틀’에 대한 윤곽이 잡힐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20.76%)과 삼성생명이 보유한 전자 지분(7.43%)을 통해 그룹을 지배해왔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정은 다르다. 현재 삼성전자는 삼성생명이 지분 7.43%를 보유한 1대 주주로 삼성물산 4.18%, 이건희 회장 3.49%, 삼성화재 1.3%,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0.76%, 이재용 부회장이 0.59%를 각각 갖고 있다. 상속세법에 따르면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대주주가 경영권을 물려줄 때에는 할증액을 추가로 더하기 때문에 세율은 65%까지 뛴다. 단순 계산하면 8조2816억원의 65%는 5조3830억원 수준이다. 다른 계열사 지분까지 상속할 경우 상승세는 최대 8조원까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5년에 걸쳐 상속세를 분납해도 매년 1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감당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낮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가가 그룹을 이끄는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삼성전자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이 부회장은 자신이 최대 주주인 통합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4.1%)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처지다.
앞의 A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려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하는 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첫 단계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부문 금융지주회사 설립이고, 2단계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비금융 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 설립이 예상된다. 최종 목표는 두 개의 지주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 LG그룹의 경우 1999년 이후 3년에 걸쳐 전자 부문과 화학 부문을 별도의 과도기적인 지주회사로 만들고, 이후 두 지주회사를 하나로 묶어 최종적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한 바 있다. 금융가에서 삼성이 결국 ‘금융은 삼성생명 중심으로, 전자 등 실물 사업 부문은 전자와 통합 삼성물산 중심으로’ 모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 중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얼마나 소유하느냐가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의 핵심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의 대전제는 삼성그룹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이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얼마만큼 획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하면서도 대전제인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지속하려면 결국 삼성전자 지주사 설립설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먼저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하고, 이후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법이다. 삼성전자가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분할되면, 투자 부문의 가치는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어 충분히 삼성생명의 전자 보유 지분을 삼성물산이 가져갈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는 12.2%다. 삼성전자가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잠깐용어 참조)할 경우 삼성전자투자회사는 12.2%의 삼성전자사업회사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또한 삼성물산은 삼성생명금융지주회사 등의 지분을 활용해 삼성전자 투자 부문 지분을 매입할 수도 있다. 한발 더 나가 두 회사가 합병되면 결과적으로는 자사주 의결권이 살아나면서 오너의 지분율이 크게 올라간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 급등을 이런 시나리오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만약 삼성전자투자회사가 공개매수를 통한 현물출자(잠깐용어 참조)를 실시할 경우 공개매수에 참여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기존 삼성전자 주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삼성전자투자회사의 지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투자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는 경우에도 현물출자 시 기존 삼성전자 주가가 높아야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11조3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하는 등 지속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설 예정이라는 점도 유사한 이유에서 주목받는다. 계획대로라면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율은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사실상 감자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여기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하기 이전에 이재용 부회장이 부친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상속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과 본인 지분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시장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사업 부문을 모두 쪼갤 것이란 추측도 제기된다. 현재의 삼성전자를 지주회사 삼성전자와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디스플레이 등 4개 회사로 분할하는 방안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와 가전 등을 각각 자회사로 만들어 경쟁력을 끌어올리면, 시장 가치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각 사업 부문의 시가총액을 높이면 결국 지분을 많이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도 확대된다는 논리다.
한편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삼성SDS도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수 있다. 삼성SDS는 현재 물류 부문과 IT 서비스 부문의 분할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삼성SDS가 분할 후 1대 주주인 삼성전자와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지분을 교환, 삼성전자는 SDS의 IT 서비스 부문 지배력을 높이고 삼성물산은 물류 사업 부문의 지배력을 높일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SDS IT 서비스 부문의 삼성전자 합병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삼성SDS에 대한 그룹 내 지분이 오너 일가 17%와 삼성물산 17.1% 등을 합해 총 56.7%에 달할 정도로 높아 합병만으로도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전자 지배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에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적지 않다. 당장 삼성전자 분할과 삼성물산 합병을 성사시키는 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체제 구축을 위해 추진되는 사안이라고 시장이 받아들일 경우 추진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주주들 반발과 여론의 비판 등도 넘어서야 한다.
삼성그룹 측이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에 대해 조심스러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서 현재로서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전했다.
잠깐용어*인적분할 사업부를 따로 떼어 별도의 신규 회사를 만드는 과정은 물적분할과 동일하지만 인적분할은 신설 법인 주식을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나눠 갖는다. 물적분할은 신설된 법인이 기존 회사의 100% 자회사가 된다.
잠깐용어*현물출자
토지·건물 등 부동산과 유가증권·상품 등 동산, 특허권·지상권 등 무형자산처럼 금전 이외의 재산에 의한 출자 형태를 말한다. 주식회사에서는 현금출자를 원칙으로 하지만 회사의 설립이나 신주발행 때는 예외적으로 현물출자를 인정하고 있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73호 (2016.08.31~09.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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