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고 답답했던 나, 우리는 각자의 AT필드를 전개했다
[오마이뉴스 글:강현호, 편집:곽우신]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나의 인생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렸던 시절의 내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다. |
ⓒ 가이낙스 |
1996년에도 국제관계는 여전히 복잡했지만, 지금처럼 테러로 몸살을 앓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때도 젊은이들에게 전통과 규칙을 강요하던 대한민국이었지만, 청년이 세상을 경험하겠다면 격려를 아끼지 않던 시대이기도 했다. 내가 떠나려고만 했다면 응원하고 지원해줄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내가 즐겨 했던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빠끔빠끔 줄담배를 태우며 자취방 컴퓨터 모니터를 끌어안는 일이었다. 마치 '콩벌레(쥐며느리)'처럼 안으로 움츠러들어 어둠을 찾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기를 소원했다.
후 불면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갈 수 있었을 홀가분함 그 자체인 시절에 왜? 내 개인의 소심한 성정과 습속이 가장 큰 이유였겠으나 그때의 나는 밀린 숙제가 급했다.
1980·1990년대 청소년에게 인생 선택지란 모범생과 인생 낙오 두 가지뿐이었다. 아니 그것뿐인 줄 알고 자랐다. 그랬으니 개돼지처럼 맞고도 가해자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부모는 그런 자식을 대신해 가해자에게 또 한 번 비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아마도 지금 부모가 된 그 세대들이 학교폭력이라면 눈에 쌍심지의 켜는 까닭은 묵인되고 권장된 폭행의 피해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여유와 자유는 찾을 수 없고 유사 군대 조직에서 명령과 수행을 반복하며 십수 년을 살아남는 데 급급했다. 개인 생활이나 진지한 인생 모색이라는 걸 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대학에 도달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기에 시작했어야 할 많은 일을 제때 하지 못했다. 그 중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 찾기다. 거기에 몰두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혼자만의 동굴로 어기적어기적 들어가기 일쑤였다.
나와 닮은 것 같았던 주인공
▲ 다른 만화 속 주인공과 달리,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는 나약했다. 항상 흔들리고 방황하는 그를 보며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됐다. |
ⓒ 가이낙스 |
<에반게리온>은 그때까지 접했던 국산 만화영화에 비하면 작화와 연출 수준이 너무 뛰어났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준 건 그런 세련됨이나 멋짐 때문이 아니다. 그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볼 수 없던 '남주'였다. 그리도 흔들리고 그리도 나약하며 그리도 무력한 주인공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당시 유행했던 <북두신권>의 주인공은 물론이거니와 로봇물의 어느 주인공과 비교해도 결정 장애였다. 거기에 나밖에 모르는 애송이이기도 했다. 뚜벅뚜벅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툭하면 주저앉았다.
어른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렸고 영웅이 돼야 하는 매우 급한 순간인데 난데없이 도망쳐 쭈그려 앉아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남자가, 주인공이, 젊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이카리 신지(남자 주인공)는 그랬고 나도 그랬다. 학교에서 풀려나 밝고 넓은 세상에 놓였고 자유를 얻었으며 무엇을 해도 박수받을 참인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오래 혼자가 되고 싶었고 사람들을 피해 골방으로 도망가고만 싶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궁금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이카리 신지가 못나 보이면서도 반가웠고 짠했다. 그렇게 동질감에 휩싸여 나는 <에반게리온>을 찾아다녔다. 말 그대로다. 학교 여기저기, 일본 애니메이션 입수 루트가 있는 친구의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당시에는 그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보통의 방법이기도 했다. 아직 디지털과 인터넷이 세상 빛을 못 보던 시절이라 일제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한 VHS 테이프가 귀한 물건이었던 시대였다. 그야말로 아날로그의 시대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마지막화까지 보긴 봤는데 솔직히 좀 난감했다. 좋게 말해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결말이라지만 이건 뭐 사도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래서 '남주'는 누구와 맺어졌다는 건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으니 갑갑했다.
AT 필드를 깨고 싶지 않았다
▲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각자의 AT 필드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깨지지 않기를 바람과 동시에 깨고 관계 맺기를 소망한다. |
ⓒ 가이낙스 |
AT 필드란 방어막이다. 사도(적)와 에반게리온 모두 상대의 AT 필드를 뚫고 들어가야 싸움이 끝이 난다. 그래서 AT 필드는 나를 지키는 것이고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 즉 정체성이다. 인간의 독립성과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무언가를 추구하고 갈망할 때 발현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배제하고 거부할 때 역시 나타난다. 정체성과 개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다.
역설적으로 사람 사이의 거리감, 이 방어막이 상대 때문에 훼손당하고 변형되면서 내 정체성이 된다. 당연히 나도 관계를 맺으려면 누군가의 방어막을 뚫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어막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나는 우리로 편입되지 않는다. 사도와 에반게리온의 AT 필드 깨기는 사람 사귐의 어려움과 그것을 통해 구체화 되는 '나'의 정체성 확장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당시 나는 사람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뒤늦은 정체성 찾기의 후과로 얻은 혼란에다가 내성적인 성격이 보태져 무리에서 겉돌았으며 만사 까칠했다. 상대의 AT 필드를 깨고 싶지 않았고 내 AT 필드를 건드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면서 외로운 건 또 싫어서 답답해했다. 그 답답함의 원인이 눈앞에서 시정되었고 이해되고 있으니 내가 <에반게리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건 당연했다.
폭압의 시대에 밀린 숙제를 하느라 괴로웠던 회색 청춘의 날, 맑은 5월의 하늘 아래서 홀로 음습한 지하방을 갈구하던 모순된 나날, 나를 위로해주는 건 쓰디쓴 소주 한 잔과 <에반게리온>이었으니 수 세월 지나서도 <에반게리온>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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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내가 사랑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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