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는 '평상', 내가 직접 만든 이유

홍광석 2016. 8. 1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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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 매달리는 것은 '그리움'의 표현.. 모깃불 연기 냄새가 맡고 싶다

[오마이뉴스홍광석 기자]

산과 계곡의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화려한 누정이 특권층이 호사를 누리던 공간이었다면, 시골집 마당의 평상은 서민들이 앉거나 드러누워 쉴 수 있도록 만든 야외 가구의 일종이다.

70년대 초만 해도 마당이 있는 도시 집에 평상이 있었다. 평상의 소재는 다양했다. 기본 골격은 목재로 만들고 바닥은 대를 쪼개 엮은 살을 깔거나 송판 등 목재 판재를 깔았는데 남도의 서민들 집에는 값싸고 흔한 대나무살 평상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런 평상은 일차적으로 여름밤 서민들의 여름나기를 위한 기능적인 공간이었다.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좁은 공간에 가족들이 무릎을 맞대고 둘러앉아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며 온 식구가 박장대소했던 소통의 장이었다. 

할머니의 반복된 옛날이야기에도 지루한 줄 몰랐고, 삼촌들의 귀신이야기에 몸을 움츠렸던 어린 시절 추억의 무대였다. 거기에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이나 삶은 옥수수나 감자 한 알은 또 얼마나 반가운 귀물이었던고!

그때는 형제들이 은하수를 보며 밝은 별을 자기 것이라고 우김질도 하나의 놀이였다. 또 나무 그늘 밑의 평상은 여름 손님을 맞이하는 서민들의 사랑방 구실도 했다.

평상은 그렇게 한여름에는 집안의 더위를 피해 마당에 설치한 피서용품이었다면, 가을에는 고추를 말리고, 삶은 고구마 순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는 공간이었다.

말린 식품들은 할머니만 아는 독에 저장했다가 겨울이면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 되거나 제삿날에는 제물로 상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평상은 서민들의 삶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구실도 톡톡히 했던 소중한 살림살이기도 했다.

이제 평상은 도시의 가정집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핵가족화 되면서 마당 대신 소파가 있는 거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대량 보급된 현실에서 단독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부채를 들고 밖에 나갈 일이 없어졌다. 한겨울에 처마 밑 그늘에 세워두고 아꼈던 평상은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마침내 평상이 앉을 자리는 사라진 것이다.

은하수를 볼 수 없는 도시 환경, 미세 먼지를 걱정하는 현실에서 소중하고 유용했던 평상을 이야기 하면 시대에 뒤진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골집에서도 찾기 힘든 평상! 유원지에나 가면 무려 '땀이 끈적이는 비닐을 깐' 평상 하나에 비싼 자릿세를 물고 앉아볼 수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나무살 평상을 직접 만들다
▲ 평상만들기  대나무살의 길이를 맞추고 다듬는 것이 일의 시작이다. 기본 틀에 갯수는 맞는지 휘어진 살은 없는지 검토하는 단계이다.
ⓒ 홍광석
10일(수), 무더운 날의 오후에 평상을 만들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철제 골조에 대나무를 쪼갠 살을 이어 '살평상'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이다.

10년 전 숙지원 자두나무 그늘에 설치하여 그동안 쉼터 삼았고, 완두콩과 강낭콩의 꼬투리를 따는 작업장도 되었던 평상이었는데, 너무 오래 비바람에 방치했더니 대나무살이 삭아 힘을 주어 앉기만 해도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평상의 골조가 '쇠'라서 버리기 아깝다는 점, 그리고 전천후 야외작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걸 창고 안으로 옮기고 새로 대나무살을 바꾸겠다니 아내는 '그러다 말겠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평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합판이나 방부목을 깔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대나무살을 엮은 평상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예전 평상을 구입했던 가게는 문 닫은 지 오래라고 했다. 여기저기 평상을 제작하는 곳을 찾았지만 대나무살을 구할 수 없었다.

대그릇의 고장이라는 담양 군청에 전화하고 또 전화 받은 곳에서 다시 몇 군데를 거쳐서야 대나무만 쪼개어 파는 곳을 알아내어 주문을 했다.

그런 나를 보는 아내는 여전히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공간만 차지하여 효용성이 떨어지는 물건에 집착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대나무살 엮기  크기를 맞추어 자르고 다음은 대는 일곱가닥의 철사로 엮기 시작한다. 이때 어느 한 쪽으로 넓은것이 치우침이 없도록 잘 골라야 한다.
ⓒ 홍광석
10일 오후, 점심을 먹은 후, 우선 기본 철골조의 길이에 맞추어 대나무를 자르고, 낫으로 엉성한 부분을 다듬었다. 그리고 철사와 펜치며 망치 낫 손칼 등을 챙겨 대나무살을 엮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고 덤빈 일은 요령이 없으니 늦은 저녁을 먹기 전에 끝나지 않았다.

뒤늦게 대나무살의 폭이 각기 다른데 한쪽으로만 넓은 면을 깔면 바닥의 균형이 깨진다는 점을 알고 다시 뜯어내기도 했다. 일곱 가닥의 철사 줄은 걸핏하면 헝클어지고 더러는 얼굴을 스치곤 했다.

가까스로 일을 끝내니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대는 먼지가 묻어도 금방 털어지는 장점이 있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색상도 보기 좋은 노란색이 된다. 누우면 아래서 올라오는 바람에 시원하고, 땀을 흘려도 흡수하는 효과도 크다.

비록 엉덩이가 고이는 흠은 있어도 지압을 한다고 여기면 좋지 않을까? 이제 밤하늘의 은하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은 먼 곳에 있으니 덩그러니 부부가 밤에 평상에 앉아 부채질하거나 낮에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에 웃음 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매달려 가족 간에도 눈길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다는 현실도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던 곳, 각종 저장 먹거리를 만들어 가족의 미래를 만들었던 작은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절을 그립게 기억한다. 내가 평상에 매달렸던 일도 그리움의 표현일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서민들이 민화와 전설이 구전되던 곳. 수줍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칭찬에 노래하고 춤추었던 무대.

경치 좋고 시원한 곳의 누정이 행세하는 양반들의 문화 공간이었다면, 평상은 백성들의 애환을 담은 그야말로 토속적인 문화공간이었다.
▲ 완성된 평상  서툰 솜시가 보이지만 앉아서 쉬거나 일을 하는데는 불편이 없다. 그늘에 있으니 비를 맞을 염려도 없어 수명도 길어지고, 또 비오는 날에도 갖가지 겨울나기 저정식품을 말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 홍광석
만들어진 평상을 모니 서툰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넓고 좁은 부분을 역으로 엮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끝을 보니 한쪽이 조금 빈다. 48개의 대나무살이 모두가 폭이 같거나 두께도 일정하지 않으니 바닥은 울퉁불퉁이다.

휘어진 대나무들이 섞여 있어 애를 먹었는데 사이의 간격이 일정치 않다 보니 어떤 곳은 틈이 크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만든 평상이 한 여름밤 꿈을 키우거나 가족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앞뒤가 툭 트이고 전망 좋은 곳에 파라솔 그늘이 있는 현대식 야외 테이블이 있으니, 평상 만드는 일은 요즘 흔히 말하는 '가성비'와는 전혀 어긋난 헛수고인지 모른다.

겨우 소나기를 만나면 말리던 가지와 고추가 비를 피하는 곳이 되고, 더러는 그곳에 앉아 마늘을 까고, 옥수수 껍질을 벗기거나 완두콩 깍지를 벗기는 일이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상을 보니 비록 옛날을 헤매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하루의 수고가 억울하지 않다. 

이제 모깃불 연기 냄새가 맡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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