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도 부럽지 않다는 '태항지존' 왕망령
[오마이뉴스 글:유혜준, 편집:박혜경]
▲ 왕망령 |
ⓒ 유혜준 |
그때만 해도 태항산은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단계라 한국에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가 갔던 왕망령을 포함한 남태항 일대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곳곳에서 공사현장과 마주쳤던 것이다.
왕망령 초대소에서 자던 날 밤, 우리 일행은 뜻밖의 방문을 받았다. 왕망령 초대소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는데 양복을 입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정보 사찰을 하는 공안인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 관광객에 불과한 우리를 왜 찾아온 거지?
그는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으로 왕망령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왕망령 일대를 둘러본 소감을 물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올 것 같으냐는 질문도 했다. 그는 한국인 관광객인 우리를 상대로 일종의 여론조사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왕망령 중턱에 있는 와룡산장에서 잤다. 왕망령은 물이 귀한 곳이라 산 아래에서 파이프를 연결해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린다고 한다. 호텔은 난방이 되지 않아, 침대마다 전기요를 깔아 놨다. 밤이 이슥해지자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엄하면서도 숙연해지는 왕망령 일출
▲ 일출 직전의 왕망령 |
ⓒ 유혜준 |
우리 일정에는 해돋이 보기가 있었다. 오전 3시 반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날이면 날마다 뜨는 해를 보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툴툴거리면서 따뜻한 잠자리의 유혹을 떨친 보람이 있었다. 운 좋게 일출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안개와 구름에 잠겨 있는 산봉우리들 너머에서 붉은 기운이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왕망령 일대는 운해가 가득했다. 산봉우리들이 바닷물에 푹 잠긴 것 같다. 우리는 산꼭대기가 아니라 바다로 일출을 보러 온 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지평선도 아니요, 수평선도 아닌 곳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거대한 태항산맥 속에서 보고 있기 때문일까? 왜 산 위에서 보는 일출은 평소와 다른 것처럼 느껴질까? 장엄하면서도 숙연해지는 느낌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왕망령 |
ⓒ 유혜준 |
왕망령은 중국 산서성 진성시 릉천현에 있으며, 50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이 일대를 왕망령 풍경구라 부른다. 왕망령 역시 중국 국가 4A급 관광지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가장 높은 곳은 1700m 가까이 되며, 낮은 봉우리도 800m를 훌쩍 넘어선다. 왕망령까지는 도로가 뚫려 있어 버스로 이동이 가능, 접근성이 좋다. 새벽에 일출을 보려고 와룡산장에서 왕망령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왕망령 풍경구는 왕망령, 석애구, 곤산, 유수성의 4개의 관광지로 이뤄져 있으며, 산서성의 지역자원개발 회사인 란화그룹이 2003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특히 왕망령은 '남태항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면서 '태항지존(太行至尊)'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태산이 부럽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태항산맥에서 으뜸으로 꼽힌다는 의미가 되겠다.
▲ 왕망령 |
ⓒ 유혜준 |
▲ 조훈현 9단이 중국의 진조덕 9단이 대국을 했다는 방지애에는 안내판이 남아 그 때를 알리고 있다. |
ⓒ 유혜준 |
왕망령에는 의미 있는 장소가 하나 있는데 방지애(方知崖)다. 2004년 4월 5일, 이곳에서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조훈현 9단과 중국의 진조덕 9단이 대국을 했다는 것이다. 태항산 대협곡을 내려다보면서 바둑을 두었다니,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신선놀음'을 한 것이 분명하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신선들은 산꼭대기에서 바둑을 두면서 유유자적 하지 않나. 그때의 현장 사진이 담긴 표지판을 보니 조훈현 9단은 신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출을 보고 우리가 간 곳은 만선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비나리길. 이 길의 이름 유래 또한 재미있다. 비나리여행사에서 가장 먼저 안내를 했다고 해서 '비나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나.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부를 마땅한 이름이 없어 "비나리 여행사에서 갔던 그 길 있잖아" 이러다가 비나리길이 되었다는 거다.
이곳에 세워진 안내판에 따르면 이 길의 이름은 곤산괘벽공로(昆山?壁公路)였다. 그 이름보다 비나리길이 더 정감있다. 하긴 아무려면 어떤가. 이름이야 부르기 쉽고 기억하지 쉬우면 그만인 거지.
천계산 입구에서 막걸리를?
▲ 비나리길로 불리는 곤산괘벽공로. 사람이 정과 망치로 절벽에 구멍을 뚫어 길을 냈다. |
ⓒ 유혜준 |
그렇게 해서 3km 정도의 길을 만들었고, 바로 그 길이 비나리길이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 길은 안에 들어가 걸을 때보다 밖으로 나와 멀리서 볼 때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인공 동굴에 창문처럼 환기구를 냈는데, 저걸 죄다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는 거야? 하면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길 아래는 당연히 깎아지른 절벽. 이 길을 빵차라고 불리는 소형 승합차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달린다. 이 길, 걷는 건 전혀 무섭지 않은데 빵차를 타고 지나가면 무서울 것 같다.
▲ 이 전동차를 타고 천계산 관광을 한다. |
ⓒ 유혜준 |
▲ 천계산 |
ⓒ 유혜준 |
하늘과 산의 경계라는 천계산 역시 한국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찾는 관광지인 것 같다. 천계산 표지석에 한글이 들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7개 전망대에 있는 안내판에도 대부분 한글 설명이 들어가 있다. 또 천계산 입구에 카페가 있는데, 막걸리를 판다. 이동막걸리 2병을 주문하면 파전 하나는 서비스로 준단다. 메뉴판은 당연히 한글이다. 이곳에는 한식당도 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아 전동차를 타려고 오래 기다렸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중국인들이 관광에 나서면서 중국은 관광지마다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단다. 그래서 내국인만으로도 관광지 수요를 충분히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 우대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솔솔 나온단다. 하긴 중국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기는 많더라.
▲ 천계산에서 나는 살구, 호두 등을 파는 노점 |
ⓒ 유혜준 |
▲ 천계산 |
ⓒ 유혜준 |
태산에서 시작된 중국여행 4박 5일 일정은 천계산에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천계산에서 숙소인 요성의 치평호텔까지 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이 가까이 펼쳐지는 밀밭을 보면서 이동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제남공항까지 가는 과정이 남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중국에서 5~6시간 이동하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고, 몇 시간씩 넓은 밀밭이 펼쳐지는 광경 또한 새삼스러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으므로.
일출을 본다고 꼭두새벽에 일어난 탓에 버스에서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다가 창밖을 보면 여전히 밀밭인 것을 보면서 대륙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기는 했다.
중국여행기를 마칩니다.
[중국여행 1] 산동성 용강산 지하대열곡과 태산 대묘
[중국여행 2] 오악독존(五岳獨尊) 태산
[중국여행 3] 하남성 안양시에 있는 중국문자박물관
[중국여행 4] 태항산대협곡 팔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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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태항산대협곡 한국사무소, 왕망령한국 사무소에서 마련한 팸투어에 참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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