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천에 아이디어 담은 청년, 창신동 봉제 골목 살린다

김나한.김준영.최정동 2016. 6. 1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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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000간' 운영 신윤예씨공장 사장님들의 기술에 반해 입주첫 협력 작품 '기리빠시 쿠션' 히트'노 웨이스트 셔츠'는 백화점 입점도
신윤예(31)씨가 지난 12일 서울 창신동 ‘공공공간(000간)’ 사무실 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사회적 기업인 ‘공공공간’은 주변 봉제공장들과 협력해 개성있는 제품들을 만들어 판다. [사진 최정동 기자]

‘하청 구합니다. 여성복 상의, 바지(고무줄). 010-○○○-○○○○’ 이런 광고 문구가 적혀 있는 A4 용지가 담벼락에 곳곳에 붙어 있다. 봉제공장 스팀다리미가 골목으로 수증기를 내뿜고 오토바이는 뒷자리에 옷을 잔뜩 싣고 달린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창신동에는 봉제공장 1000여 개가 있다. 각 공장에서 만들어진 의류 완제품은 오토바이에 실려 1~2㎞ 떨어진 동대문 의류상가로 간다. 1970년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청계천 주변의 열악한 다락방 공장들이 철거되자 상당수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단골 상점으로 거래선이 정해져 있다 보니 상호나 간판이 없는 곳도 많다.

불황을 모르던 창신동은 해외 중저가 브랜드 상품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동남아 등지로 일감이 분산되면서 침체되기 시작했다. 30년간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한 박민규(54)씨는 “10년 전만 해도 옷 실어갈 오토바이 서른 대가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하루에 한 대 올까말까 한다”고 했다.

최근 이곳에선 공장 주인들과 함께 동네 재생을 고민하는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신윤예(31)씨는 친구인 홍성재(33)씨와 2012년부터 이 곳에서 ‘공공공간(000간)’이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을 운영해왔다.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공장의 기술력을 합해 옷·생활용품 등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한다. “미대를 졸업하고 개인 작업을 했어요. 우연히 이 동네에 왔다가 활기에 마음이 끌렸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여기서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신씨의 설명이다.

‘기리빠시(폐자재의 일본식 속어) 쿠션’이 공공공간과 봉제공장들의 첫 합작(컬래버레이션) 작품이었다. 창신동에선 하루에 22t, 연간 8000t의 자투리 천이 버려진다. 신씨는 이 천들을 반투명 폴리우레탄 봉지에 가득 채워 쿠션을 만들었다. 색색의 자투리천이 그대로 보이는 쿠션은 큰 인기를 얻었다. 한 번에 300개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쓰레기를 누가 사냐”며 성공을 의심했던 봉제공장들도 공공공간을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투리 천만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제품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노 웨이스트(쓰레기 없는) 셔츠’다. 옷을 만들 때 원단의 20% 정도가 버려지는 게 보통이지만 공공공간은 이를 5%로 줄이는 디자인을 개발했다. “베테랑 사장님들의 기술력이 없으면 못 만드는 옷들이에요. 첫 패턴을 그려서 공장에 가져가면 사장님들이 ‘여길 이만큼 늘리고, 여기는 접어 꿰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조언해줍니다. 저희는 그대로 디자인을 고쳐요. 그렇게 너댓 번 왔다갔다 하면 자투리 천이 안 남는 디자인이 나오죠.” 이 곳에서 만든 노 웨이스트 셔츠는 현대백화점 부산점에서도 팔린다.

자신들 손길이 닿은 옷들이 잘 팔린다는 소식에 함께 일한 공장주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봉제의 품격’ ‘속도의 달인’ 등의 새 이름을 간판에 달고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 “유럽 명품들은 디자인뿐 아니라 장인들의 솜씨 때문에 오래 사랑받잖아요. 한국 의류산업을 책임졌던 창신동이 장인들의 마을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열심히 해보려고요” 신씨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글=김나한·김준영 기자 kim.naha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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