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북한에서 만난 '친일' 이광수 묘
[오마이뉴스 글·사진:신은미, 편집:김지현]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월북? 납북? 남과 북은 다르게 말하겠지
오늘(2015년 7월 1일)은 '재북인사묘'라는 곳을 방문한다. 원래 '재북인사묘' 방문은 동행한 박세희(가명) 교수의 일정이다. 박 교수가 함께 가기를 원해 그러자고 했다. '재북인사묘'로 출발하기 전 박 교수는 호텔의 회의실에서 북한의 사회과학원 역사학 교수들과 학술좌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남편이 사회과학원 교수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며 좌담회 시작 전 그분들을 잠깐 만나봐도 되겠느냐고 박 교수에게 부탁한다. 박 교수는 흔쾌히 동의해준다. 박 교수와 남편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 북한 사회과학원의 역사학 교수들. |
ⓒ 신은미 |
좌담회가 시작되자 남편은 회의실에서 나왔다. 남편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함께하고 싶었지만 박 교수의 연구 활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함께 앉아 있게 해달라는 부탁조차 하지 않았단다. 좌담회를 마친 박 교수와 우리는 '재북인사묘'로 향했다.
'재북인사묘'는 월북한(납북된?) 인사들을 모시는 묘지다. 남한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 임시정부 요인, 사회단체 대표, 유명 문인, 학자들이 이곳에 안장돼 있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분들 중 내 눈길을 끈 두 분의 묘비가 있다. 위당 정인보 선생님과 소설가 춘원 이광수.
▲ 평양 '재북인사묘'에 있는 위당 정인보 선생 묘비. |
ⓒ 신은미 |
묘비를 발견한 순간, '왜 이분께서 이곳에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돌아가신 날짜는 1950년 9월 7일.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다. 월북? 납북? 민족주의 한학자께서 사회주의 정권을 따라 북으로 갈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친일파들이 집권한 남쪽이 싫어 월북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남쪽에서는 납북이라고 가르칠 테고 북쪽에서는 월북이라고 가르치겠지.
▲ 평양 '재북인사묘'의 춘원 이광수 묘비. |
ⓒ 신은미 |
이광수는 월북한 걸까, 납북된 걸까. 친일부역자를 납북해서 무슨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과거 행적을 회개하고 사회주의 조국의 품에 안겼다는 정치 선전을 위해? 아니면 월북일까.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를 찾아서? 이 또한 분단이 계속되는 한 남쪽에서는 납북이라고 주장할 테고, 북쪽에서는 월북이라고 주장하겠지. 어느 것이 진실일까. 이제 나는 강요되지 않은 내 자신의 생각만을 믿을 뿐이다.
박바가지와 찐감자 속 온정
▲ 재북인사 묘역을 내려오면서. |
ⓒ 신은미 |
▲ '재북인사묘' 관리인 부부가 대접해 준 낙도주와 토종감자. |
ⓒ 신은미 |
집에 붙어 있는 과수원에서 키우는 복숭아로 담근 '낙도주'라는 술이다. 떨어질 '낙(落)', 복숭아 '도(桃)', 술 '주(酒)', 즉 나무에서 떨어진 복숭아로 담근 술이란 뜻이다. 저절로 나무에서 떨어진 어린 복숭아와 나무를 발로 차 떨어진 복숭아를 주워 담근 술이라고 한다. 와인보다는 쎄고 소주보다는 약하다. 복숭아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번엔 부인이 뭔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나온다. 살구와 찐 감자. 감자는 어렸을 적 먹어봤던 토종 감자다. 작은 것은 살구보다 조금 크고 기껏 해봐야 계란만 하다. 이것들이 박바가지 안에 담겨있다. 우리 할머니들이 깨지면 실로 꿰매 쓰던 바로 그 바가지. 쟁반 위에 함께 있는 소금은 엷은 회색빛이다. 처음엔 후춧가루를 뿌린 소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염전 소금이란다.
얼른 작은 감자 하나를 집어 들고서 거칠어 보이는 소금을 찍어 냉큼 베어 물어 본다. 흙냄새와 어우러진 구수한 감자맛이 나를 반세기 이전으로 되돌린다. 어린 시절 외가 향취가 물씬 풍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온다.
▲ 선물로 받은 찐감자와 살구를 들고. |
ⓒ 신은미 |
"신 선생님, 가지고 다니면서 드시라요."
"어머나, 고맙습니다. 이 바가지를 미국에 가져갈게요. 예전 할머니들은 이 바가지가 깨지면 실로 꿰매 쓰곤 하셨어요."
"기럼요. 깨진 곳을 따라 양쪽에 구멍을 촘촘히 내서라니 실로 꿰매곤 했습니다, 하하. 긴데 이 바가지를 정말 미국까지 가져갈랍니까? 기럼 더 드릴까요?"
"아녜요, 이 두 개면 충분해요. 한 바가지에는 풋고추와 쑥갓을, 다른 한 바가지에는 부루(상추의 북한말)를 담아 밥상 위에 놓을 거예요."
▲ '재북인사묘'를 떠나며 차 안에서 본 우마차. |
ⓒ 신은미 |
독하다, 평양소주
'낙도주'를 따라주는 대로 받아마신 남편은 오후 내내 얼굴이 벌겋다. 그런데도 저녁식사때 육회, 해삼냉채, 순대를 안주삼아 '평양주'를 또 마구 마셔댄다. '평양주'는 일종의 소주인 것 같은데 남편은 예전 소주를 마시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40년 전 한국의 소주는 알코올 도수도 높았고 달지도 않았단다. 남편은 요즘 한국 소주맛은 밋밋하고 달짝지근하다며 불평이었다. 그런 남편이 북한 소주맛이 예전의 한국 소주맛과 비슷하다며 줄곧 들이킨다.
▲ 평양식 육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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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삼냉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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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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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코올 도수가 높은 평양주. |
ⓒ 신은미 |
'평원 고속도로'를 달리다
▲ 비 내리는 평원(평양-원산) 고속도로. |
ⓒ 신은미 |
▲ 차 안에서 바라본 야산의 뙈기밭. |
ⓒ 신은미 |
▲ 차 안에서 바라본 야산의 뙈기밭. |
ⓒ 신은미 |
"식량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앞으로 저 동산에는 나무를 심어야 해요."
"그라문요. 아니 고난의 행군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뙈기밭입니까. 이자 저거 다 없어집니다. 지금 나무 정말 많이 심고 있습니다. 아마 목표가 억만 그루 넘을 겁니다."
식량문제뿐 아니라 연료 문제도 해결돼야 저 동산이 푸르고 울창하게 변할 것이다.
▲ 타이어를 교체하는 리용호 운전기사. |
ⓒ 신은미 |
안내원 김혜영 선생이 우산을 꺼내 펼치면서 쭈리고 앉아 작업하고 있는 운전기사에게 다가간다. 내게는 비 맞지 말고 차 안으로 어서 들어가란다. 나도 함께 비를 맞겠다며 버티고 서 있다. 한 방울 한 방울 빗물이 옷 속에 스며들어 살갗에 와 닿는다. 빗물도, 풀내음도, 우리의 지금 이 상황도, 내게는 모두 정겹기만 하다.
▲ 평원(평양-원산) 고속도로 풍경. 비가 내리자 사람들이 나타나 밭을 일군다. |
ⓒ 신은미 |
▲ 평원(평양-원산) 고속도로 길가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 군사 목적으로 보인다. |
ⓒ 신은미 |
▲ 평원(평양-원산) 고속도로 길가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 군사 목적으로 보인다. |
ⓒ 신은미 |
▲ 평원(평양-원산) 고속도로 길가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 군사 목적으로 보인다. |
ⓒ 신은미 |
가슴이 아파온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조국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보기에도 고통스러운 저 남과 북의 콘크리트 흉물들도 함께 사라지겠지.
차는 어느덧 원산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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